이혼의 이유 2

이혼의 풍경 5화

by Simon de Cyrene

'이혼의 이유'에 대해 길고 거창하게, 복잡하게 생각하면서 글을 마치고 나서 문득 '결국 대화의 부족 때문 아니야?'란 생각이 들었다. 그 글을 그대로 남겨둔 것은 대화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맞추지 못해서 결국 이혼하게 되는 사람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모든 이혼하는 커플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부부간에 제대로 된 대화가 없어서 결국 이혼하게 되는 듯하다.


결혼생활을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난 평생, 말 그대로 평생을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옆에서 봐왔고, 보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지인들의 결혼생활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어왔다. 2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10여 년을 지인들의 결혼생활을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난 정말 행복한 부부도 봤고, 절대로 결혼하지 말라는 사람들도 만나왔다. 그들 중에 처음부터 모든 게 맞았던 부부는 없었다. 예상외로(?) 본인들은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부부는 있었다. 그런데 그 부부의 얘기를 들어보고,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면 두 사람이 정의하는 '싸움'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싸움'과 조금 다르더라. 그리고 그들은 싸우는 방식이 다른 부부들과 많이 달랐다.


그 부부라고 해서 갈등이 없고 서로 맞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부부는 갈등이 있거나 서로 부딪히는 지점이 발생하면 앉아서 진지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다른 부부들의 경우 언성이 높아지고 네가 맞네, 내가 맞네 했을 수준의 문제가 발생했어도 두 사람은 언성을 높이지 않고 차분하게 앉아서 진지한 대화를 나눴고, 서로의 입장과 의견을 확인하고 사이좋게 합의점을 찾아갔다.


그런데 대부분 부부들은 결혼한 후에 '자신'에 대한 대화를 하지 않거나 상대방의 '자신'에 대한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아내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한 친구는 아내와는 아이 얘기 외엔 대화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나 상황에 대해 배우자에게 말했더니 '그러면 지금 어쩌라고, 당신이 가족을 위해 일정 부분은 희생해야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


우린 결혼을 해도 개인으로 존재한다. 결혼하고 나면 자신을 일정 부분 죽이고 숙여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결혼생활에서도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아, 아니 그 이상이 서로에게 보장되어야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행복할 수 있다. 결혼한 후에도 너무 서로에게 의존적이거나 아이에게만 집착하는 삶은 장기적으로는 본인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그리고 그 '개인 영역'에 대한 협의는 부부관계에서 이뤄져야 하고, 그 협의에 의해 내려진 합의는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협의 없는 일방통행을 하거나 합의된 내용을 일방적이고 반복적으로 깨는 것은 두 사람을 위해 건강하지 않다. 그런 과정을 겪지 못하거나 합의된 내용이 지켜지지 못할 경우에는 최소한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그것을 이해해주면 고마운 마음은 가질 줄 알아야 한다.


어디에선가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닌가? 그렇다. 이건 모두 매우 기초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얘기다. 그런데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적지 않은 경우 '가족'임을 핑계로 그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누적되면, 두 사람은 반복해서 부딪히고 서로 힘들게 된다.


그런 것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대화'다. 사실 적지 않은 부분들은 결혼하기 전보다 결혼한 후에 대화를 더 안 하기도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데이트할 때, 통화로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것이 결혼한 후에는 서로가 서로의 일상에 들어오면서 '다 알겠지'라고 전제하거나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것이 귀찮아서 대화가 줄어들다 보면 두 사람은 어느 순간 대화를 하지 않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것은 이 지점에서 엇나가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살지만 서로의 삶에 대해 모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두 사람은 상대가 뭐라고 하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없게 되면서 두 사람은 상대와 대화하는 것이 피곤하다고 느끼게 된다. 본인도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고, 상대도 본인 말을 잘 들어주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러다 두 사람이 자신의 직장생활이나 일상에서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 관계가 불륜으로 이어지게 된다.


파리에 갔을 때 결혼한 지 몇 년이 되었음에도 신혼 같은 친구 부부의 집에서 며칠을 머문 적이 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일상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은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서로의 하루 일과를 나누고 기도제목을 나눴더라. 그들이 그렇게 가깝고 친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매일 서로의 일상이 업데이트되었고, 그렇다 보니 서로가 하는 말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된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작년에 그 친구를 만나서 그 얘기를 하자 '우리 한국에 돌아온 다음에는 그렇게 못하는데 민망하다'라고 했지만, 몇 년을 그렇게 살았던 경험은 두 사람 사이에 대화하는 습관을 만들었을 것이고, 그들이 여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그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다.


결혼한 후에도 그냥 이뤄지는 것은 없다.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산다고 해서 서로를 그냥 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많이 대화하고,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더 친밀하고 가까워질 수 있다. 아이를 가진 후에는 그런 시간을 갖는 게 더 힘들어지겠지만, 그때도 두 사람은 두 사람만의 시간과 대화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은 점점 서로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 전제하고 있는 '대화'는 내가 [대화의 원리]라는 시리즈에서 전제하고 있는 '말하고 듣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던지고 상대의 말이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통보다. 그걸 대화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반복적으로 본인이 입장을 통보만 하면, 두 사람은 결국 갈라서거나 함께 살지 않느니 못한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보자. 두 사람이 경제활동에 대해 함께 대화를 했다면, 투자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대화했다면, 회사 상황이나 사업에 대해 충분히 대화했다면, 아이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충분히 대화했다면, 집안일을 뭐를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지를 충분히 설명했다면, 그리고 그 얘기를 듣고 이해하고 소화했다면. 그리고 그런 부분에 대해 상대방의 상황과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고 함께 의사결정을 했다면, 그래도 사람들은 이혼했을까? 아닐 것이다.


물론, 대화를 한다고 이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 주위에도 부부가 항상 대화를 정말 많이 했음에도 이혼한 지인이 있다. 그런데 그 지인은 신기하게도 이혼한 후에도 생각보다 힘들거나 아프지 않은 듯했다. 그 지인은 심지어(?) 자신의 배우자와 여전히 친구처럼 연락도 한다더라. 그 지인이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두 사람이 서로 맞춰가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했고, 두 사람이 평생 함께 하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함께 내리고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두 사람은 모르고 있었지만 도저히 맞추기 힘든 다름이 두 사람 사이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런 다름은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충분히 대화하고 노력한다면, 두 사람이 결국 헤어지게 되더라도 두 사람이 헤어지는 과정에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많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헤어진다면, 두 사람이 이혼을 해도 두 사람의 아이가 받는 상처는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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