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의 풍경 7화
'사별한 사람이랑은 몰라도 이혼한 사람이랑은 결혼하는 거 아니야'
20대까지 꽤나 많이 들었던 말이다. 주구장창. 나도 사람인지라 그런 말을 반복적으로 들으면 그 말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이혼하는 얘기를 뉴스나 지인을 통해 들으면 '뭔가 이상이 있겠지. 어떻게 일방의 문제겠어'라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들고는 했다. 그때까지는 사실 내가 이혼한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단 생각이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았기 때문에 그 문제는 그때 잠깐 스쳐가는 문제였다.
그러던 내 주위에서도 20대 후반부터 이혼하는 지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꽤나 많이. 그 지인들은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대부분 회사 사람들이나 많이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혼 소식을 굳이 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 나도 이혼한 지인을 대하는 건 처음이라 그 말이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인들의 말을 들으며 내가 그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그 말이 너무 이해가 되더라.
이혼한 게 죄는 아니지만, 좋은 소식이 아닌 것을 굳이 내 입으로 먼저 알리고 다닐 필요는 없지 않나? 더군다나 우리나라 같은 분위기에서는 그 후에 어떤 말이 돌지 뻔한데. 주위에서 '이혼했어?'라고 먼저 묻는 사람은 없을 테니, 그냥 입을 다물고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위에 말하지 않는 게 될 것이다. 누군가 아내나 남편 얘기를 물어보면, 그때야 비로소 사실 이혼했다고 하겠지. 그런데 사람들이 상대 배우자에 대한 질문은 잘 안 하니까, 사람들에게 이혼한 얘기는 잘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이혼한 사실을 굳이 알리지 않고 괜찮은 척,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사는 삶을 상상해 봤다. 끔찍했다. 난 연애를 해도 주위에서 만나는 사람 없냐고 물어보지 않는 이상 굳이 알리지도 않고, SNS에도 올리지 않는 편인데, 그 상황에서 내가 싱글인 걸 전제로 사람들이 대화를 하는 틈에 있으면 그것도 불편하던데, 이혼한 후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루, 하루를 사는 삶은 어떨까? 이혼은커녕 결혼도 해보지 않은 난 그 느낌과 감정을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알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그건 엄청난 고통일 것이라는 것뿐이다. 이혼한 후에 비로소 그럴까? 아니다. 그건 아마 이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건,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함부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
그렇게 주위에서 이혼한 지인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놀란 것은 내 지인들 중 너무 멀쩡하고 괜찮은 사람들이 이혼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들이 남편 또는 아내가 되었을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절대 그렇지 않을, 꽤나 오래 알아왔고 너무나도 괜찮은 사람임이 분명한 사람들도 이혼을 하더라. 지금 생각하면 그걸 놀라워했던 나 자신이 놀랍지만, 그때는 그게 굉장한 충격이었다. 어른들은 항상 이혼하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 이혼한 사람의 재혼 파트너가 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너무나도 괜찮은 사람들도 이혼을 하더라.
그 사람들 중에는 누가 봐도 상대가 너무나도 이상한 사람이었던 케이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케이스들도 많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아니, 두 사람 모두 괜찮은 사람들인데 왜 이혼을 한단 말인가? 심지어 이혼을 하고 나서도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닌데, 나는 도저히 같이 못 살겠더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혼은, 괴물들이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걸, 30대 초반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무의식 중에 이혼을 마치 괴물들이 하는 것처럼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혼한 사람들이 다시 연애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본인의 기준에서 나름 심사숙고해서, 상대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고 결혼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었다 보니 연애할 때 상대에게 가졌던 신뢰가 붕괴되면서 사람, 특히 이성을 믿는 게 예전보다 어려워지고 지기 때문이다. 이혼 과정에서의 아픔과 상처가 큰 사람일수록 이는 더하다. 한 번의 이혼이 이렇게 힘들었는데, 이런 걸 다시 한번 겪게 될지 모르는 틀 안으로 들어가라고? 그게 쉬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직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혼한 사람과 재혼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이혼한 사람들도 이혼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과 만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혼 과정을 겪는 게 얼마나 큰 일인데, 그 아픔을 이해하고 온전히 품어줄 수 있어야 연애를 할 텐데, 이혼은 커녕 결혼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그 과정을 겪으면서 경험한 것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겠나? 아무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 간에 공감되는 것이 많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혼한 사람이 결혼을 해보지 않은 사람과 연애를 하는 건, 미혼자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이혼을 경험한 사람이 불편해서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30대 후반이 되니 주위에서는 '이 나이 때까지 결혼 못한 사람보다는 한 번 갔다 온 사람이 낫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말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우선, 모든 것은 케바케로 판단되어야 한다. 물론, 30대 후반에서 40대까지 싱글인 사람 중에 정말 독특하거나 이상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30대 후반에서 40대까지 싱글이 된 과정에 사연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30대 초중반에 결혼을 생각하며 연애를 하다 그 연애가 틀어진 사람들은 1-2년 힘들어하고, 본인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30대 후반에서 40대가 되어 있더라. 그리고 이혼을 하는 과정을 잘 견뎌 낸 사람들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돌이키기 힘든 상처를 입은 사람들도 있다.
30대 후반의 싱글이 되면서 고민이 시작되었었다. '내가 이혼한 사람과 연애, 그리고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고민에 직면하게 되더라. 그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내 결론은 만나 봐야 알고, 사람에 따라 그건 다를 수 있단 것이다. 이혼과 연인 간의 결별은 분명 다르고,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감정이나 상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겠지만, 상대를 만나는 사람의 입장에선 [결혼]이라는 제도적 틀만 빼고 보면 이혼도 그저 두 사람이 만났다 헤어진 과정일 수 있다. 연인과의 이별의 후유증을 몇 년씩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경우 결혼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혼한 사람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혼한 사람은 절대 그렇게 생각되지 않을 수밖에 없지만, 싱글의 입장에서는 상대를 만나서 연애를 시작할지를 고민할 때는 내가 상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가 그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지금의 모습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의 지금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사람과 연애를 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게 되기 힘들다면 연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는 상대가 이혼을 했는지와 상관없이, 우리가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할 때 하게 되는 고민들이다. 이혼은 분명 엄청나게 큰 일이지만, 우리 인생에 아픔을 주는 큰 일들은 굉장히 다양하다. 공부를 잘한 사람들 중에는 공부에만 매몰되어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고,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성장해서 큰 상처가 있는 사람들도 있고, 학교에서 친구관계에서 왕따를 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혼은 그런 여러 일들 중 하나이고, 같은 경험을 해도 그걸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특정한 경험이 그 사람을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혼 후의 연애도, 그저 또 연애일 뿐이다. 이혼은커녕 결혼도 못해본 나는 그 과정에서 어떤 아픔, 고통과 어려움이 있을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나의 다른 매우 어렵고 힘들었던 경험들에 비춰봤을 때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들은 이겨낼 수 있는 성격의 것들일 것이고, 그것을 이겨냈을 때 그 사람은 더 좋은, 큰 사람이 될 수 있더라. 그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 더 현명해지고, 지혜로워지고, 본인을 더 잘 알게 되면, 그만큼 더 많이, 잘 사랑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연애는, 연애일 뿐이다. 다음 선택에서 같은 실수만 반복하지 않을 수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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