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서 감정찾기와 그 필요에 대하여

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4화

by Simon de Cyrene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언젠가부터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연애'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게 중요하다, 저게 중요하다 이렇다 저렇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누군가를 만나거나 만나지 않기로 한 결정을 판단하는 경향도 강해진다. 거절하고, 거절하다 어쩔 수 없이 최근에 어머니 주선으로 한 소개팅 후, 난 더 이상 알아가지 않을 듯하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애 정말 괜찮은데 넌 왜 그렇게 까탈스럽게 구니?'라고 하시더라. 어머니께서 왜 그분을 긍정적으로 보셨는지도 이해는 되지만 내가 그 분과 더 알아갈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성적 호감"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지인들에게 하면, 돌아오는 피드백은 '그 나이 먹고도 감정 타령이냐'라거나 '니가 급하지 않다'나 '너 정말 까다롭다'류의 비판 혹은 핀잔들이 대부분이다. 한 번은 본인이 투자를 잘해서 한강변에 집을 갖고 있는 여자분과 소개팅 후 이성적 호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더 이상 보지 않을 듯하다고 하자 주선자가 '상대는 네가 마음에 드는 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는 네가 어떻게 상대를 까냐'라고 하더라. 그건, 내 마음이 아닐까?


난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 상호 간에 이성적 호감을 느끼는 것은, 최소한 한 때만이라도 느끼는 것이, 가능하면 상호 간에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 '감정 타령'에 불과한 그것은 우리가 그런 '감정 타령'이 생기지 않는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게 만들기 때문이다. 애교가 전혀 없는 사람이 상대에게 애교를 부리고, 짠돌이 중에 짠돌이의 지갑이 열리고, 남에게 신경이라고는 쓰지 않는 사람이 상대의 표정 하나, 하나에 마음이 콩닥거리고 소심 해지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이성적 호감이나 매력을 느끼지 않고는 일들이다. 상대에 대한 이성적 호감은, 그 어려운 걸 해낸다.


문제는 감정이란 놈은 참으로 복잡다단해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느낌이 상대에 대한 이성적 호감인지, 상대를 소유하고 싶은 소유욕인지, 성적 욕구나 욕정 또는 욕망의 발현인지를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과 욕구를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성적 욕구, 욕정 또는 욕망과 소유욕이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그러한 관점이 고착된 사람들은 자신의 그러한 욕구와 욕망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상대에게 특정한 행위나 반응을 강요한다.


우리는 진짜 사랑을 직접 경험해 봐야 그러한 욕구나 욕망과 이성적 호감 또는 사랑과 같은 선상에 있는 감정을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그런 사랑은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부모님이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부모에게서 그러한 사랑을 받으면서 익히고 배워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로 인해 그런 사랑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면서 자라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남자들은 남자다워야 한단 이유로 울면 혼나거나 항상 어깨에 힘을 주고 강한 남자가 되어야 한다고 교육받고, 여자들은 목소리를 높이거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을 것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나 본인의 감정을 배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여자들에 대한 그러한 억압은 조금이나마 약해지고 있지만 남자들은 여전히 '남자다워야 한다'라고 강요받고, 그러한 '남자다움'은 남녀관계와 성적인 측면에서도 여전히 그래야 할 것으로 학습되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의 첫사랑이 서툴고 또 실패하는 것은 이처럼 가족 안에서 제대로 된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정에서 진정한 사랑과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는 법을 익힌 적이 없다 보니 이성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이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자신들이 학습받고 강요받은 여성성이나 남성성이 맞는지, 그러한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잘 모르다 보니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받게 되고, 첫사랑은 대부분 그렇게, 실패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몇 번의 짝사랑이나 연애가 중요한 것은 적지 않은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이나 이성적 호감을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 처음 몇 번의 이성관계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연애'를 해보는 경험은 매우,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건강한 연애'의 기준은 행위가 아니라 '마음'에 있고, 그 마음은 당연히 '이성적 호감'을 구분하고 느낄 줄 아는 마음을 경험해 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마음을 우리의 욕구 또는 욕망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굳이 그 두 가지를 구분하자면 상대에 대해서 사랑과 같은 선상에 있는 이성적 호감이 있는 마음은 내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인 반면, 우리의 욕구와 욕망은 내가 상대 또는 상대의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현실에서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이는 우리는 때때로 무의식 중에 상대에게 무엇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에게 무엇을 해주면서도 그것이 오롯이 상대를 위해 해 줬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아이러니 혹은 딜레마는 우리가 그러한 마음과 욕구, 욕망을 최소한의 수준으로라도 구분하고 싶다면 한 번쯤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연애를 통해서 그러한 복합적인 감정과 마음을 직접 경험하고 혼란스러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란 존재는 그러한 마음이 뒤엉키는 것을 경험하고, 상대와 그러한 마음의 문제들을 놓고 대화하고 갈등도 겪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과정을 겪어야만 자신의 이성적 호감과 욕구와 욕정과 욕망을 어느 정도라도 구분하고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쉽지 않고, 그렇다 보니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노력을 하기보다 상대에게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강요하면서 상대에게 상처주기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감정에 충실한 연애를 해보고, 실수하고 상대에게 미안해하면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과 자신의 감정을 알아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는 그러한 과정 없이 사랑하는 법을 익힐 수 있는 사람은 없고,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만나는 사람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반복해서 상처를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랑은 참으로 번거롭고, 어려우며, 적지 않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과정 또는 감정으로만 보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그로 인해 연애를 포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감정적인 부분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은 그러한 감정은 다른 무엇도 선물해 줄 수 없는 마음, 관계, 경험과 상태를 선물해 주고, 그러한 감정이 연인과 다른 관계를 구분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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