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5화
누구나 한 번쯤은 첫사랑과 결혼하는 것을 꿈꾼다. 하지만 첫사랑은 대부분 실패한다. 모두 그런 것도 아니고, 첫사랑과 결혼까지 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현실에 존재하지만 첫사랑은 대부분 실패한다는 것은 거의 공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명제다. 그 이유도 꽤나 분명하고, 명확하다. 대부분 사람들이 첫사랑에 실패하는 건, 대부분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처음'에 미숙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라 해도 처음 이성에게 느끼는 감정은 통제하기도,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는 같은 사랑이라 하더라도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 남매간의 사랑과 에로스적인 사랑이 가미된 사랑은 다르기 때문이다. 어제 그런 감정을 처음 느꼈는지는 이제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가 무엇인가를 처음 할 때 미숙하고, 어설프며, 실수를 많이 하듯 우린 대부분 첫사랑에게도 실수하고, 어설프며 미숙하게 대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잘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첫사랑은 모두 실패한다는 말을 좋아하지도, 그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제 와서?). 이는 첫사랑과 연인이 되어 오래, 오래 함께하지 못한다는 면에서 첫사랑은 실패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린 첫사랑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사랑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첫사랑에서 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 이후 찾아오는 사랑들에 최선을 다하고, 조금 더 많이, 잘 사랑하기 위한 방법들을 배워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은 사실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내 안에 경험으로 남아있고, 그렇다면 내가 첫사랑에서 실수를 한 적이 있을 수는 있어도 첫사랑 자체가 실패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첫사랑에서 실수를 한 덕분에 다음에 찾아온 사랑은 조금 더 성숙하게, 잘하게 될 수 있으니까.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첫사랑에서 한 실수를 다음 사랑에서도 똑같이 반복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첫사랑에서 본인이 한 실수는 생각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상대의 탓으로 돌리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쁜 남자를 만나서 힘들어했던 분들이 또 나쁜 남자를 만나고, 꽃뱀 같은 여자를 만났던 남자가 반복해서 그런 여자를 만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사람들이 그런 실수를 반복하는 건 '사랑'을 '감정의 끌림'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감정적 끌림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면 나쁜 남자와 꽃뱀 같은 여자에게 끌리는 건 오히려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는 나쁜 남자는 사람들이 말하는 '남성성'을 가진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꽃뱀 같은 여자도 여리여리한 여성성을 가진 사람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두 부류의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긴 하지만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뿜어내는 건 사실이 아닌가?
그러한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우린 사랑이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관계'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알아야 한다. 만약 사랑이 단순히 '감정'이라면 TV에 나오는 연예인이나 몸매가 좋은 남녀를 볼 때 느껴지는 호르몬 작용도 다 사랑일 텐데, 우린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지 않나? 우리가 나쁜 남자나 꽃뱀 같은 여자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감정은 사실 TV에 나오는 매력적인 연예인이나 외모가 탁월한 남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우리와 접점이 없는 반면 후자는 접점이 있고 그들이 그 접점을 이용하기 위해 당신에게 접근했다는 것뿐이다.
'감정'이 곧 사랑이라고 믿는다면, 사랑은 절대로 영원한 것일 수 없다. 이는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에 쉽게 익숙해지고, 항상 새로운 것에 매력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처음 본 여자가 이상형' 같은 말은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사랑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드러난다. 처음에는 1억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1억을 가진 후엔 10억, 10억을 가진 후엔 100억을 갖고 싶은 것도, 정말 갖고 싶던 가방이나 옷을 막상 사고 난 후에는 얼마 입지 않게 되는 것도 그러한 인간 본성이 발현된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어떤 이들은 '그러한 인간 본성에 충실해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그러한 본성에만 충실한 삶은 절대 완벽하게 행복해질 수 없다. 이는 그런 삶은 끊임없는 자극이 있지만 안정적이지는 않고, 인간의 모순되고 또 모순된 면은 인간은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동시에 안정을 원한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을 소유하고 싶은 것도,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것도 사실은 금전적인 걱정 없이 안정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영역에서 [안정]을 바라는지를 생각해보면, 인간에게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다.
물론, 에로스적인 감정이 가미된(?) 사랑은 감정에서 시작된다. 다만, 앞의 글에서 설명했듯이 우린 그 감정이 욕구, 욕망, 욕정인지, 아니면 사랑과 같은 선상에 있는 감정인지를 구분하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한 이성적 노력도 기울여야 하는데, 그 감정은 상대가 나를 이용해서 본인의 필요나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는지, 아니면 나를 나로서 존중하고 궁금해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상대가 본인을 욕구, 욕망, 욕정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시도인 반면, 후자는 본인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나오는 반응이다.
예를 들면 '연인과 만나면 스킨십 밖에 하지 않고 대화는 없다'라던지 '나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고 본인 말만 쏟아낸다'거나 '나한테 해달라는 건 많은데 본인이 해주는 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첫 번째 부류는 상대를 성적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이고, 두 번째는 상대를 자신의 감정적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사람이며, 세 번째는 상대를 자신의 통장처럼 다루는 사람이다. 상대에게 사랑과 같은 선상에 있는 사람이라면 스킨십을 상대에 대한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자신에 대한 상대의 마음을 느끼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자신의 말을 상대가 들어줬으면 하는 바램 만큼이나 상대가 어떤 마음이고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도 궁금할 것이며, 상대가 받고 싶은 것도 있지만 상대의 필요를 본인이 채워주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런 경우라고 해서 욕구, 욕망, 욕정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지에 따라 그 관계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문제는 우리가 상대에 대한 감정적 호감에 휩싸여 있을 때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가 잘 보이거나 느끼지 않는다는데 있다. 사랑에도 이성의 작용이 필요하고, 우리가 때때로 상대와의 관계를 한 걸음 물러나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건 상대와 붙어있을 때는 그런 마음과 모습들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상대와의 관계에서 내 안에 있는 감정이 사랑과 같은 선상에 있어야 그 관계에서 새로움과 안정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대에 대한 호감이 있고, 그 감정으로 인해 상대가 궁금해진다면 우린 상대를 더 많이, 잘 알아가게 될 것이고, 더 많이, 잘 알아가게 된단 것은 상대에 대한 새로운 면을 발견한단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또 상대에 대해 많이, 잘 알아가게 될수록 우린 상대를 더 신뢰할 수 있게 되고, 그에 따라 상대와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이 선순환이 반복되면, 두 사람의 관계는 한 편으로는 깊어지면서 또 다른 한 편으로는 항상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 때문에 그 감정과 관계가 깊어질 수 있다.
혹자는 '1년 정도 사귀면 알만큼 다 안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왜 30년 넘게 함께 산 부부도 상대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며, 알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일까? 이 시리즈의 첫 글에서도 말했지만, 우린 대부분 우리 자신도 잘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상대를 알만큼 안다는 것은 착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하면 그런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을까? 상대에게서 지속적으로 새로움을 발견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관계가 깊어질 수 있는지 여부는 상대에게 발견되는 새로움을 [다름]으로 존중하고 그것을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많은 연인이나 부부들은 그렇지 못하고 상대의 새로운 모습을 [다름]이 아니라 [틀림]으로 여김으로 인해 헤어진다. 아니, 사실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상대를 그렇게 바라보기만 해도 그 관계에는 금이 가게 되어있다. 이는 한 사람이 상대가 틀렸다고 여기는 순간, 틀린 것으로 지적받은 사람은 대부분 그에 대한 반발로라도 본인이 아니라 상대가 틀렸다고 여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헤어지는 것이 잘못됐단 것이 아니다. 누구나 수용할 수 없는 다름의 지점을 갖고 있고, 상대가 그런 다름을 갖고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면 그 연인은 헤어지는 게 서로를 위해서 나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은 적지 않은 경우 사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수준의 다름을 이유로, 상대가 무조건 나에게 맞춰줬으면 하는 욕구 때문에 헤어진다는데 있다.
사람들이 경미한 수준의 다름으로 인해 헤어지기도 하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름이 어떤 맥락 안에 서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두 사람이 그런 이해가 부족한 것은 많은 경우 서로의 작은 부분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의 부족은 적지 않은 경우 두 사람 사이에서 대화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다툼이나 분쟁의 원인이 되는 다름은 여러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발생하는데, 서로 대화가 없으면 그러한 요소들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게 되고, 그렇다 보니 작은 다름으로도 큰 다툼과 갈등이 발생하고 마는 것이다.
연인과 부부관계에서 대화가 중요한 것은 우리는 연애를 할 때는 물론이고 결혼한 후에도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따로 보내기 때문에 대화가 아니면 상대의 마음과 삶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화는 자녀나 부모에 대한 게 아니라 [본인]에 대한 이야기여야 한다. 이는 본인에게 오늘 어떤 일이 있었고, 본인이 요즘 어떤 고민이 있으며,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떤 감정이었는지를 공유해야만 상대가 나에 대해서, 또 내가 상대에 대해서 가장 업데이트된 사실이나 감정을 알 수 있고, 그에 따라 서로의 필요가 다르며, 그러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법과 수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랑은 감정을 통해 시작되지만, 이러한 노력을 통해 만들어지고, 깊어지며 완성되어 간다. 이는 감정은 사랑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란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할 때야 비로소 '진짜 사랑'을 만들고 가꿔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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