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이혼은 실패가 아니다.

사람과 사랑에 대하여. 6화

by Simon de Cyrene

이혼한 친구가 '실패'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썼다. 안타까운 것을 넘어서 '실패'란 표현으로 자신을 갉아먹는 게 화가 날 정도로. 세상이, 다른 사람들이 너한테 실패했다고 말한다고 해서 너 자신이 그렇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이혼한 게 실패한 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친구는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진 못했다. '내가 이번 결혼에 실패한 건 사실이잖아'란 친구의 말에 마음이 아파왔다.


표현 하나, 하나에 예민하기 때문인지 난 '사랑에 실패했다'거나 '실패한 결혼'이나 '실패한 연애'와 같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무엇인가가 '실패했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마침표를 찍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혼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앞으로 사랑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이혼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과의 결혼생활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이별이나 이혼은 우리 삶의 과정 중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고, 우리가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이정표가 되어줄 수도 있기 때문에, 난 우리가 죽지 않는 이상 어떤 이별이나 이혼에도 '실패'란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연애를 하고 헤어지면 헤어진 연인의 장점은 갖고 있되 단점은 없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거나, 자신에게 상대의 어떤 면이 중요한지를 알게 됨에 따라 그런 성향의 사람을 찾기도 하고, 과거의 연애에서 본인이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이처럼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XX 같은 놈은 만나지 않을 거야'라는 식의 반면교사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반면교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과거의 연애나 결혼이 가면 안 되는 길을 막아주고 가야 할 길을 조금 더 분명하게 해 준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과거의 연애나 결혼의 끝이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단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서 사실 이별과 이혼은 '실패'의 사전적 정의에도 맞지 않는다. '실패'는 사전에서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으로 정의되는데, 연인이나 부부가 헤어지는 것은 사실 두 사람이 잘 맞지 않기 때문이지 단순히 어느 일방의 잘못 때문은 아니기 때문에 이별과 이혼은 '실패'의 사전적 정의의 전제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바람을 피운 경우는 잘못의 원인제공자가 명확하긴 하지만, 그 사람은 또 어떤 면에서든 상대와 잘 맞지 않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그 관계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선 아래에서 더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이별한 연인이나 이혼한 부부는 그 관계가 뜻한 대로 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뭔가가 '그르쳐졌다'라고 하기도 힘들다. 두 사람이 더 오래 함께 했으면 불행해졌을게 분명했다면 이혼이나 이별이 어떻게 무엇인가를 '그르친 것'이 되는가? 그 사람과 헤어진 덕분에 더 잘 맞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기는 게 아닌가! 또 혼자 사는 게 사실 본인에게 더 잘 맞는 사람에겐 이별이나 이혼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좋은 일일 수도 있다!


이별이나 이혼은 연인 또는 법적 부부가 되었던 '그 상대와의 관계'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우린 그에 가치 판단을 할 필요는 없다. 연인 간의 이별은 애초에 인류 역사상 가치 판단의 대상이 된 적도 없었고, 이혼의 경우 조선시대나 극도로 보수적인 기독교 문화 속에서는 그에 대한 평가나 판단이 이뤄졌지만 현대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혼 자체에 대해서 그렇게 평가나 판단을 할 기준도, 이유도 없단 것이다. 아니, 사실 조선시대에서도 엄청난 양반들 간에나 이혼이 문제 되었지 서민 사회에서 이혼은 흔한 일이었고, 성경에도 이혼을 할 수 있다는 전제로 쓰여진 말씀들도 굉장히 많기 때문에 사실 그런 기준으로 평가나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무지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말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물론, 그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 아이가 있었던 경우는 조금 다를 수는 있다. 이는 사실 연인이나 부부가 헤어지는 데 있어서 두 사람은 어쨌든 그 사이에서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이 있어서 헤어지는 것이지만 아이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헤어짐으로 인해 엄청난 상처를 경험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가 있는 경우에는 이별이나 이혼에도 신중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를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 취해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실 그러한 경우에도 두 사람이 함께 삶으로 인해 아이에게 불행한 모습만 보여줄 것이 분명하다면, 차라리 잘 헤어지고 아이가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는 보완적인 조치를 취해는 게 아이를 위해 더 좋은 일일 수 있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연인이나 부부의 이별이나 이혼도 그렇게 쉽게 평가하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별과 이혼은 별 일이 아니니까 대충 넘겨도 돼'라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이별과 이혼 자체가 실패는 아니지만,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것은 만남에서 헤어짐까지의 과정에서 두 사람 모두 어느 지점에선가 실수를 했기 때문이고,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실수는 본인이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했을 수도 있고, 본인이 상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보지 않고 덜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실수였을 수도 있으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고 상대를 선택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걸 반복하지 않아야 이별이나 이혼이 실패가 되지 않을 수 있단 것이다.


반복되는 이별이나 이혼 속에서도 그런 실수를 반복한다면, 그건 어쩌면 실패로 분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패턴은 실수를 반복하는 잘못으로 인해 생기는 거니까. 내가 이토록 이별과 이혼에 '실패'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이혼과 이별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데 그것을 실패로 여기게 되는 사람은 스스로를 더 갉아먹게 되고, 그 패턴이 반복되면 그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할 수 없게 되어 정말 실패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연애의 끝은 힘들고, 우리는 그 순간 실패했다고 느낄 수 있다. 연인과의 이별도 그러한데 이혼은 오죽할까? 이혼을 해보지 않았기에 이혼이 얼마나 힘든지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누군가와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 연애를 시작하기로 마음먹는 것보다 몇 배에서 몇 십배는 어렵다는 사실에 비춰봤을 때 이혼으로 인해 몰려오는 아픔과 고통의 총합은 연애의 끝보다 적어도 몇 배에서 어쩌면 몇 십배 이상일 것이라는 추론 정도는 할 수 있다. 연인과 헤어지기만 해도 그 빈 공간이 어마어마하게 크게 느껴져서 짧아도 몇 주에서 길면 몇 달에서 몇 년까지 그 후유증을 경험하는데, 이혼의 후폭풍은 그보다 얼마나 더 클까? 이별이나 이혼을 실패로 여기지 않아도 따라오는 아픔과 고통이 그 정도인데, 그것을 실패로 여기기까지 하면 몰려오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자괴감은 얼마나 크겠나? 그러니 굳이 이별도, 이혼도 실패로 여기지 말잔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서.


이별이나 이혼을 단순히 실패라고 규정지어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에서 멈추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춘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실패는 쉼표나 과정이 아니라 마침표고, 사람들은 마침표를 찍으면 그걸 잊어버리지 다음 단계에서는 그 경험을 참조하려 하지 않으니까. 반대로 이별이나 이혼을 인생에서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과정을 다음 과정에 참조함으로써 실수를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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