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 꽃길만 걸을 순 없다

결혼과 가족에의 이유. 11편

by Simon de Cyrene

항상 서른 살에 결혼하고 싶었던 내게 '결혼을 안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30대 초반에 들었다. 신혼생활을 하는 지인들의 영향이었다. 얼핏 생각하기에 신혼에는 모든 게 좋고 핑크빛이어야만 할 것 같은데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충동적으로 결정한 것도 아니고 나름 본인의 상황과 감정을 충분히 심사숙고해서 결혼을 결정한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넌 결혼하지 마'라고 말하면서 부부관계의 문제와 힘듬을 토로하는 것을 보면서 결혼을 안 하는 게 답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들이 가정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생각이 다시 바뀌었다. 신혼에는 미친 듯이 싸우고 상대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인 것 같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서부터 SNS에 배우자와 다정한 사진들을 올리고, 나한테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은근슬쩍 안 하기 시작하더라.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결혼한 지 약 1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갈면서 결혼은 절대 하는 게 아니라는 사람도 있고, 결혼한 지 20년이 넘어가는 형님도 '결혼은 미친 짓이야. 자유를 누려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이 그럴 수 있는 건 자신이 결혼하기 전의 싱글 생활만 기억하기 때문이란 것은 앞에서 길게 설명했으니 넘어가도록 하겠다. 중요한 건 '은근슬쩍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고 배우자와 다정한 사진들을 올리기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무엇이 그들을 바꿨을까? 물론, 그들에게 '이혼하겠다더니, 결혼하지 말라더니 뭐냐?'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정으로 사는 거야 정으로. 다른 사람 만난다고 해서 나아진단 보장도 없고'라는 식이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신혼 초기에는 새로운 환경과 관계 덕분에 알콩달콩한 면들도 많지만,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살고 경제적, 공간적, 생활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면서 부딪히는 지점들도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다. 그것도 사실은 '새로움'인데, 신혼부부는 긍정적인 새로움에는 알콩달콩함을 즐기지만 불편한 새로움에는 예민하게 반응해서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신혼부부는 대부분 짧으면 수개월에서 길면 1-2년 정도까지는 마냥 행복하고, 즐겁고, 행복해하는 경우들이 많다. 왜 그럴까? 그건 두 사람이 아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서 상대의 눈치를 보며 서로 맞추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긴장감을 평생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니, 사실 1-2년 정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누구나 1년 중에 안 좋은 일이나 우울하게 만드는 일은 몇 번은 생기게 되어있고, 두 사람의 저기압 모드가 겹치면 그때부터는 갈등이 폭발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신혼에 그런 갈등은 다른 어느 시기보다 크게 터질 수밖에 없다. 상대에 대한 신뢰와 기대는 최고조에 이른 상태에서 자신이 모르던 상대의 반응을 접하기 때문에. 1층에서 뛰어내리는 것보다 20층에서 떨어지는 충격이 훨씬 큰 것처럼, 상대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높은 상태에서 느끼는 실망감과 배신감은 그만큼 더 클 수밖에 없다.


아무리 연애를 오래 했어도, 심지어 동거를 1-2년 정도 했어도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면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갈등은 신혼 초기에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니, 서로가 서로를 다 아는 상태에서 결혼을 한다고 해도,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 갈등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두 사람이 아무리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어도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따로 보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최대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결혼생활을 만들고 두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지를 따져보자. 아침 6시에 일어나서 같이 운동을 하고, 아침식사를 같이 하고, 같은 직장으로 출근을 한다고 치자 (사실 이 전제 자체가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적지 않은 부부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같이 하지도 못하고 각자 다른 직장으로 출근하거나 한 사람만 출근한다.), 아니 둘 다 집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이라 치자. 두 사람은 일을 할 때만큼은 어쨌든 상대와 접점 없이 지내게 된다.


이는 대부분 부부들은 최소한 오전 9시에서 퇴근시간 정도인 저녁 7시까지 총 10시간 정도는 따로 보낸단 얘기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그 시간 동안 상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퇴근해서 8-9시 정도까지 밥을 먹고, 다음날 아침 6시에 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11시에서 12시 사이에는 잠이 들어야 한다. 그런데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면 사람은 누구나 혼자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퇴근한 후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대화를 하기가 힘들다. 아침에 운동을 같이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그 시간에 두 사람이 떨어져 지내는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서로 공유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주말만 남는데, 주말에는 토요일 오전 정도에는 늘어져서 쉬고, 주말에 잡힌 일정들을 소화하다 보면 주말에 최대치로 대화를 해도 10시간을 넘기긴 힘들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일어난 일들 중에 중요한 부분들만 정리해서 공유해도 10시간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공유되지 않은 서로의 현실은 1주, 2주, 1달, 2달 쌓이다 보면 두 사람은 서로의 삶에서 모르는 영역이 넓어지게 되고, 그런 영역이 넓어지면 상호 간에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사람이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이 되면 이 누적된 오해가 갈등으로 폭발한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최대한 자주 연락하고, 가능하면 하루에 일어났던 중요한 일과 본인의 감정들을 상대와 공유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좋아해서,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그러한 노력은 등한시하고, 결과적으로 그런 노력의 부재가 갈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신혼부부들이 많이 싸우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갈등이 생겼다고 해서 그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때라도 서로 이성을 잡고 상대의 얘기를 듣기 위한 노력을 하면, 그 갈등이 왜 생겼는지를 이해하고, 그런 갈등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놓고 고민하면 두 사람의 관계는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 있다. 그리고 서로가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패턴화 되고, 상대가 노력하는 모습에 고마워하기 시작하면 두 사람은 어느 순간 '완벽하진 않지만 이만한 사람도 잘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럴 수 있는 건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노력하고, 서로 접점을 늘리면서 상호 간에 신뢰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폭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감정적으로. 도저히 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면서 상대의 말은 듣고 흘리는 수준이 아니라 듣지도 않는 사람들.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그래도 그 관계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이 상대의 말을 듣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단 것은 결국 부부관계를 완전히 한 사람 중심으로, 거의 독재정권처럼 유지해야 한단 것인데 그게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관계에서는 두 사람 중 최소한 한 사람은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계속 입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상대와 있는 게 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조금 순화한 표현을 하자면 '자기중심적'이다. 그리고 그게 꼭 그 사람만의 탓은 아니다. 이는 우리는 우리 자신과 항상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고, 경험한 틀 안에서 세상을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본인이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상대의 삶과 생각을 알아가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사람과 자신이 자기중심적이라는 것도 모르고 자신은 이타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상대와 맞춰나갈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솔직히... 답이 없다.


이처럼 인간은 필연적으로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력 없이는 부부생활이 원만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결혼 적령기'에 결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옆에서 신혼생활부터 일어나는 일들을 듣고, 볼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결혼을 한다. 감정적으로 사랑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런데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게 욕망인지, 진짜 사랑인지를 구분하기가 얼마나 어렵나? 더군다나 호르몬 작용이 왕성한 20대에서 30대 초반에. 그렇다 보니 적지 않은 이들은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감정에 홀린 듯이 결혼을 하고, 그 후에는 감정만으로 결혼생활이 유지되지 않는 현실에 당황하면서 '결혼은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혼생활을 오래 했다고 무조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결혼생활을 아무리 오래 했어도 서로 대화를 많이 하지 않는다면, 서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두 사람은 계속 달라질 수밖에 없다. 위에서는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부부를 예로 들었지만, 정말 극단적인 경우 결혼을 해도 함께 깨어있는 상태로 같은 공간에 있는 시간이 주말밖에 없는 사람도 많지 않나? 그런 관계에서 대화와 노력도 하지 않으면 두 사람은 멀어질 수밖에 없고, 그런 상태에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직장동료와 감정선이 맞으면 바람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일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결혼생활은 이처럼 꽃길이 그냥 걸어지지 않는다. 부부관계가 안정되고 사랑이 계속 깊어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노력을 두 사람이 계속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그게 노력이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그들이 그만큼 서로를 알기 위해 하는 노력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운동에 비유하자면 벤치프레스로 100kg를 들 수 있는 사람은 60kg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 수 있듯이 그들 안에 대화하고 노력하는 근육이 생겼기 때문에 그게 자연스럽고 편한 것이지 처음부터 그게 완벽하게 되는 사람은 없다.


이쯤 되면 '그렇게 피곤하고 힘든 결혼을 왜 굳이 해야 하냐?'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시리즈에서 계속 얘기하지만, 맞다.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본인이 좋은, 건강한 몸을 만들고 싶지 않다면 운동을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지 않아도 살 수는 있는 것처럼 결혼을 하지 않아도 살 수는 있다. 그리고 그게 갖는 장점도 있다. 운동을 안 하면 힘들지 않고, 건강에 좋지 않아도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이 맛있을 수 있는 것처럼 결혼하지 않는 것의 장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결혼을 하고, 서로 노력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처음에 10kg짜리 아령을 드는 게 힘들어도 반복하다 보면 12kg는 들어야 운동하는 느낌이 들듯이, 그 노력하는 것이 처음에는 조금 버거워도 습관이 들면 어렵지 않아 지기 때문이다. 운동하는 것도,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꾸준히 그렇게 하면 운동하고 음식을 먹지 않는 시간이 몸이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것처럼 그렇게 노력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지면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힘든 일과 감정들을 맞잡아주는 파트너가 생기고, 그런 파트너와 인생길을 걸어가는 건 혼자 가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행복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런 노력은 해 볼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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