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결혼의 전제조건

결혼과 가족에의 이유. 9편

by Simon de Cyrene

지금까지 교묘하게 쿨한 척, 아닌 척하면서도 은근슬쩍 대놓고(?) '인간은 현실적으로 결혼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안정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해왔다. 반박당하기 쉬운, 많이 반박당할 수 있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 조금은 비겁하게 [그런데]를 붙이려고 한다.


결혼을 한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다. 무조건 안정감을 누리게 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불행해질 수도 있다. 힘들어질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도 그런 케이스를 워낙 많이 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해서 행복하고, 안정감을 누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돈?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아니,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사실 금전적인 부분은 기본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로 찌들지 않는 이상 생각보다 행복과 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수많은 연구들이 인간은 돈을 일정 수준 이상을 벌면 돈에서 행복과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는, 돈의 효용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유럽에서 이런 연구들은 넘쳐난다.


그렇기 때문에 금전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게 절대적인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것저것 따져봤는데 우리나라에서, 서울. 경기권을 기준으로 하면 두 사람이 합쳐서 연 5천만 원 이상을 번다면 사실 두 사람이 같이 사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경제적 빈곤감을 느끼지는 않을 수 있겠더라. 개인적인 경험으로 월세와 일상 생활비를 합쳐서 넉넉하지도 않지만 부족함도 없다고 느꼈던 월 수입이 200만 원 정도였는데, 이를 감안하면 월 400만 원 정도의 수입이면 월세가 100만 원 나간다고 쳐도 300만 원이 남고 두 사람이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아껴지는 부분까지 감안하면 남는 건 없어도 살 수는 있다. (지금의 여러 부동산 정책 등은 일단 미뤄두고 생각하자... 그건 변수이지 상수가 아니긴 하니까... 하...)


물론, 이 지점에서 '평생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돈은 안 모을 거냐?!'라면서 분노하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맞다. 사실 2인 가구가 살기에 월 400만 원이 많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결혼을 했을 때 더 중요한 건 현재가 아니라 미래이기 때문에 미래의 수입은 두 사람의 현재 수입이 아니라 두 사람의 '미래 기대수익'이고, 그건 사실 물질적인 부분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상대에 달려있다.


이건 '스펙'이나 현재의 경제적 능력과도 다른 얘기다. 이는 상대가 스펙이 좋다고 해서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고, 아무리 지금 부자라고 해도 성향에 따라 그 돈을 모두 날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담하는데, 스펙이 좋아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 난 엄청나게 잘 먹고살아야 한다. 그게 아니란 건 사실 내 삶이 증명하고 있기도 하고,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다.


안정적인 회사에 다닌다고? 우리는 대기업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그 기업이 망하지 않아도 언제, 어떻게 잘려나갈지 모르는 세상에 산다. 공무원 연금도 바뀌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안정적인 직장'은 3-5년은 보장해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평생'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지금처럼 집값이 미친 듯이 오른 상황에서는 대기업 임원을 10년 이상 하지 않는 이상 월급만으로는 노후까지 보장이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투자를 많이 하는 것도 안정적인 건 아니다. 투자를 한 돈은 언제든지 잃을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니까. 또 지금 금전적인 여유가 많다고 해도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거나 신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돈은 벌기는 힘들지만 쓰기도, 잃기도 쉽단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결혼을 결정하는 것의 핵심은 '현재'가 아니라 '상대의 미래'에 있다. 지금 아무리 잘해줘도 결혼하면 등을 돌리고, 폭력적으로 변할 사람이라면 그 사람과 결혼을 할 사람이 있을까? 결혼은 전적으로 미래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고,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떤 패턴을 보일 사람인지를 바탕으로 해서 결혼을 해야 가정에서 행복과 안정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런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온갖 기준을 다 들이댄다. 학력, 현재 직장, 수입 등은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기준으로 많이 활용되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많은 케이스들이 그게 큰 의미는 없단 것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그게 맞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한단 말도 마찬가지도. 비슷한 면이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단 장점도 있지만 서로의 단점도 비슷하다는 한계가 있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서로를 보완해 줄 수도 있지만 그 다름이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결국엔 비슷해야 할 게 비슷해야 하고, 다른 게 달라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비슷함과 다름이 어떤 지점인지에 따라 그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관계를 무너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왜 그럴까? 우리는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가면 '많은 장소'를 보는 게 목표인 반면 어떤 사람은 쉬고, 가보지 않은 곳들을 천천히 걷는 것을 좋아한다. 둘 중에 '옳은' 것이 있을까? 아니다. 두 여행법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정답일 수 있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고, 우리가 어떤 사람과 가정을 꾸렸을 때 행복할지 여부도 상대가 아니라 나에게 달려있다. 당신의 배우자가 많은 장소를 보는 게 목표인 사람이고, 당신은 휴양지에 가는 걸 좋아한다고 치자. 두 사람의 휴가는 반드시 불행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가 틀린 것은 아니다. 상대와 그런 면이 잘 맞는 사람에겐 상대가 최고의 여행 동반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한다. 이건 이미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의 이유들'에서 장황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깊게 들어가지 않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쉬고, 어떤 상황에 불편하며,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가져야 평안할 수 있는 등을 알지 못하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맛을 모르면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닐 수 없는 것처럼. 그런데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교육과 부모들은 다양한 경험보다는 입시로 사람들을 내몰고, 그 이후에도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강요한다. 우리의 불행은 사실 거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일단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았다고 치자. 그렇다면 상대의 이런 저러한 자잘한 면들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상대와 내가 모두 갖춰야만 하는 덕목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첫 번째 덕목은 '신뢰를 주는 사람'이다. 이건 정직한 것과 관련이 되어있는데, 어떤 이유에서든 신뢰를 주지 못하는 사람과는 결혼을 하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 '신뢰'는 사람마다 느끼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디테일한 것까지 정하기는 힘들지만 두 사람 간에는 최소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며, 상대의 마음을 위해 줄줄 아는 사람이라는 신뢰는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이걸 조금 더 간결하게 표현하면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진심을 담아서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걸 말해야 아냐'라고 하기도 하는데, 말해야 안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해도 그걸 표현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 그럼에도 그런 말을 하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그게 그렇게 힘드냐?'라고 묻고 싶다. 시간이나 돈이 드는 문제도 아니지 않나.


다만, '미안하다'에 대해서는 조금 짚고 넘어갈 지점이 있다. 사람들은 미안하다고 하면 '뭐가 미안한데?'라고 되묻기도 하는데, 사실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은 일단 상대의 마음이 자신으로 인해 불편하고 힘든 게 미안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자신을 그렇게 힘들고 아프게 했는지는 본인이 설명해 줘야 상대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미안하다는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따지고, 상대를 후벼 파는 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상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은 없고, 상대가 표현을 했으면 그걸 존중해주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신뢰'는 사실 특정한 요건이나 조건을 따진다고 해서 생기거나 사라지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신뢰는 상대의 여러 모습들을 보고 종합적으로 드는 '마음의 작용'이기 때문에 상대의 실제 행동과 직접 연관성은 없을 수 있다. 우리는 때때로 상대의 작은 면을 보고도 상대를 신뢰하고, 때로는 상대가 약속을 어긴 적이 없어도 왠지 신뢰를 하지 못하기도 하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가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신뢰가 생기는 건 많은 장벽을 넘어서게 해 주기 때문이다. 결혼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경제적 능력'에 대한 부분도 사실 상대가 계획이 있고, 성실하며, 그걸 지금까지 삶을 통해서 알 수 있다면 넘어가질 수도 있다.


신뢰는 상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의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에게 온전한 신뢰가 생긴단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약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신뢰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있어야 하고,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막연한 말이나 다짐이 아니라 상대가 살아온 길, 인간관계, 상대에 대한 지인들의 평판, 가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이성적인 신뢰'도 가질 수 있을 때 결혼하는 게 맞을 것이다. 연애기간이 짧다고 해도 그런 지점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많다.


두 번째 덕목은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상대를 아무리 신뢰하고, 아무리 알아봤어도 두 사람은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건 누군가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 후에 두 사람이 겪는 건 두 사람 모두 처음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때 두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대화'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대화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엄연히 말해서 '말하는 것'이지 '대화'가 아니다. 대화는 나도 말을 하지만 상대도 말을 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는 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말을 상대도 듣고, 나도 상대의 말을 들어야 한단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화를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상대의 마음과 생각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쉽지는 않다. 더군다나 나의 이해관계도 얽혀있는 가족 간의 일에서 그러기는 정말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면서 상대를 더 알아가기 위해서는 감정을 추스르고 상대의 말을 듣기 위한 노력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대화를 할 줄 아는 것이, 상대의 말을 들어줄 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렇게 대화할 줄 아는 사람들은 보통 상대와 자신의 생각 간의 간극을 해소하기 위한 타협점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우리에게 안정감을 줄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부딪히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똑같이 부딪혀도 그걸 해결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고, 그걸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해결하려는 사람과 타협하는 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사는 건 다를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덕목은 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상대를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내용은 [결혼은 '종착지'가 아닌 '과정']에서 설명했으니 이 글에서는 생략하도록 하자.


여기에서 중요한 건, 그런 상대를 만나야 하기도 하지만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결혼한 사람들은 항상 상대의 잘못만 지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기 전에 나는 어땠는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상대에게 얼마나 정직했을까? 나는 상대에게 신뢰를 받지 못할 행동이나 말은 하지 않았나? 나는 상대의 얘기를 얼마나 들었으며 상대의 마음과 생각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나? 그리고 나는 상대를 얼마나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 위한 노력을 했을까? 나는 얼마나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이 정도 질문만 스스로 해봐도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고, 내가 상대에게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좋은 사람에겐 보통 좋은 사람이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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