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종착지'가 아닌 '과정'

결혼과 가족에의 이유. 8편

by Simon de Cyrene

어떤 사람들은 결혼을 '끝'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래서 해야만 한다고도 생각한다. 숙제하듯, 일단 다 해서 제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이러한 사고방식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은 사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결혼생활은 인생이라는 기나긴 항해에서 거쳐지나가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앞의 글에서 장황하게 설명했듯이 인간은 '현실적으로' 자기편이 필요하기 때문에 함께 옆에서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꾸리고 길을 걸어갈 사람이 있는 게 행복하고, 평안함을 누릴 수 있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을 뿐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이성적으로만 설명하자면 결혼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이 글의 제목을 그렇게 잡았었는데 '수단'이라는 표현이 마치 결혼을 너무 폄하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 느낌을 조금 완화하려고 이 글의 제목을 바꾸기도 했는데, 정말 이성적으로만 설명하자면 결혼은 개인과 개인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서로 안식처가 필요할 때 상대를 안식처로 삼는 수단이다. 결혼이 도구라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나의 수단이 된다는 것은 나도 상대의 수단이 된단 것이기 때문에 결혼을 한다고 해서 상대를 도구처럼 이용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려면 본인도 상대에게 도구처럼 이용될 수 있어야 평등한 게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게 그렇게까지 삭막한 얘기는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중요한 건, 결혼은 연애의 끝이나 인생의 과업을 해내듯 해서는 안된단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결혼을 하면 사람들은 결혼한 후에 상대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발산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거나, 심할 경우에는 다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이성적 호감에 이끌려 외도를 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결혼을 연애의 끝으로 여기니 결혼한 후에 다른 사람과 연애할 수도 있다는 희한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혼은 연애의 끝이 아니라 연애의 연장선에서 '가정'이 추가되는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가족끼리 왜 이래'란 말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기도 한다. 가족끼리 그래야지(?) 그러면 가족 아닌 사람과 그래야 한단 말인가? 가족이 뭐길래? 가족은 생활공동체의 단위일 뿐이고, 그 안에서 개인들은 개인으로 존재해야 한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해서 개인이 아닌 것은 아닌 것처럼, 회사에 다녀도 회사의 부속품은 아닌 것처럼 결혼을 해서 가족이 되어도 그 안에서 '개인'은 존중되고 공존해야 한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나서도 부부간에는 상호 간에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상대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혼은 '앞으로' 상대와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꾸려서 잘 살겠다는 약속이지 연애의 결과물 또는 열매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결혼을 하기 위해서' 또는 '결혼하기 전에' 상대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줬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와 미래는 또 현재와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지 여부는 과거에 있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그런 맥락에서 결혼 후에 아내나 남편과의 연애는 결혼 전의 연애와 더 깊어지고, 더 노력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서로가 익숙해지기 쉽고, 접점이 많아지면서 부딪히는 지점들도 많아질 테니까. 분명한 건 연애는 결혼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는 형, 누나들이 연애는 결혼한 후에 해도 된다면서 어느 정도 이상 잘 맞는다면 일단 결혼해도 된단 얘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을 보면 연애기간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담보해주는 건 아니더라. 서로가 생각하는 평생의 동반자로서 중요한 점 몇 가지를 확인한 후에 짧게 연애하고 결혼한 사람들은 두 사람 모두 상대를 잘 모른단 생각에 조심하면서 알콩달콩 연애를 하듯 서로를 알아가는 반면, 오래 연애했던 사람들은 서로를 알만큼 안단 착각을 했다가 결혼한 후에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상대의 모습에 당황하고 실망해서 자주 다투거나 심지어 이혼하는 사람들도 본 적이 있다.


이 두 케이스는 왜 갈렸을까? 전자는 본의 아니게 결혼 후에 연애를 이어가게 되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조심했던 것이고, 후자는 무의식 중에 상대를 알만큼 아니 연애를 끝내고 결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툴 수밖에 없던 것이다. 만약 후자의 경우에도 연애가 지속된다고 생각하면서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새로 알게 되는 상대의 모습을 최대한 수용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전자에 비해서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많기 때문에 오히려 전자보다 더 빨리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두 케이스를 가른 유일한 변수는 '상대와 결혼생활에 대한 관점' 뿐이다.


'결혼은 과정'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생각해야 부부도 서로를 개인으로 존중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 일심동체라는 말, 좋다. 좋은데, 문제는 부부는 한 몸도 아니고 한 마음이 아닐 때가 많다는 데 있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라고 해도 두 사람이 완전히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이 닮아갈 수는 있지만 그때도 두 사람 안에 결혼하기 전에 고착된 습관들은 바뀌기 힘들 것이다. 결혼생활은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존중하면서 살아야지 상대를 나의 도구로 여기면서 상대가 모든 것을 내게 맞출 것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결혼해서 함께 산다고 해도 두 사람이 같이 보내는 시간보다는 따로 지내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아닌가? 그런데 두 사람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나? 아니, 누구도 자신의 배우자와 24시간 붙어있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자신만의 영역과 시간이 필요한 존재다. 그걸 존중하지 않으면 부부생활이 행복할 수가 없다.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사는 '과정'속에서 상대와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고 있을 뿐이란 것을,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호의와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고, 나도 상대를 개인으로서 존중해야 한단 것을 부부는 기억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부부생활은 무조건 이기적인 것이다. 왜 그러냐고? 부부가 어떤 경우에 싸우는 지를 생각해보자. 모든 케이스들이 결국은 '나와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대' 때문이다. 결국은 모든 것을 본인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그게 안되기 때문에 싸운단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조율하고, 협의해서 그 규칙에 따라 살기로 합의하는 것밖에 없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상대를 '개인'이 아니라 '내 가족'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이성적인 절차를 거칠 생각을 못한다. 그런데 그건 '가족'이나 '우리'로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이다.


나는 그래서 사실 부부가 다른 침대를 쓰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부부가 다른 침대를 쓰는 게 왜 문제가 될 수 있는지는 이해하지만 서로 다른 침대를 쓰는 대신 그 관계에 다른 장치를 마련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부가 같은 침대를 쓰는 건 아무래도 바로 옆에서 누워서 자면 살이 닿을 수밖에 없고, 살이 닿다 보면 서로에 대한 감정도 누그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게 효과가 없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의 잠버릇이나 체온의 차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같은 침대에서 잔다고 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럴 때는 서로 침대를 따로 쓰되 아침은 반드시 일정 시간 이상 같이 먹고 대화를 한다던지, 자기 전에는 야근을 하거나 특별한 일이 없다면 티타임을 갖기로 하는 등의 약속을 함으로써 그 공백을 채우면 되지 않을까? 아니, 아침이나 저녁에 반드시 시간일 같이 보내기로 약속하는 게 침대만 같이 쓰고 대화는 하지 않는 부부보다 훨씬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치약 짜는 법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치약을 다르게 짜는 게 거슬린다면 각자의 치약을 쓰면 된다. 빨래하는 법도 마찬가지. 상대가 빨래는 하고 개는 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두 사람의 빨래를 구분해서 각자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활적인 면에서 그런 걸 꼭 같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런 것을 따로 하더라도 서로 대화를 많이 하고 여가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두 사람의 행복지수를 훨씬 더 높이고, 그 덕분에 부부관계가 견고해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모든 건 상대와 내가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사는 '과정'에 있단 것을 인정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하나'가 되어 마치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길을 가는 것처럼만 여기기 때문에, 상대가 다 내게 맞춰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에 다투고 틀어진다.


하지만 결혼은 그런 게 아니다. 결혼은 우리 삶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우리 삶의 과정에 일어나는 하나의 일일 뿐이기도 하다. 결혼생활은 그걸 기억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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