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가족에의 이유. 6편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 어느 나라 사람은 이렇다. 어느 지방 사람은 이렇다는 식의 얘기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그런 식으로 하나의 '집단'을 설정해서 획일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싫어한단 것이다. 이는 그 집단에 속해 있음으로 인해 갖게 되는 특징이나 경향은 있지만 개인은 어디까지나 개인으로써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특징이나 경향도 정도의 차이가 있고, 그런 배경을 갖고 있어도 그 특징을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00는 000해'라는 말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사고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고, 그런 말들은 사람들을 패거리 짓게 만듦으로써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들을 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그런 표현만큼 사회악적인 것도 드물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사람을 집단으로 규정지어버리면 그 후에는 '소속감'을 중심으로 한 패싸움이 벌어지면서 이성적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과 관련된 문제에서 '남자들은 죄다 000해'라거나 '여자들은 죄다 00'이라는 식의 말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그런 말을 들으면 적극적으로 반박하려 들기도 했지만, 수 차례 그렇게 해 본 결과 위에서 설명했듯이 이건 이성의 싸움으로 될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이젠 그런 얘기를 들으면 그 자리를 슬며시 피해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들이 성역할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고정관념을 갖고 있단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문제는 그 고정관념 자체가 아니라 그 고정관념이 '개인'이 중요시되는 근대적인 흐름과 맞물리면서 이상하게 조합되어 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되어 남자와 여자 모두 이상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남자들 중에서는 남녀평등, 남녀평등할 거면 집도 남자가 가져오는 게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결혼과 관련된 모든 부담을 절반씩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혼하고 나면 '여자가 남자한테 어디!'라거나 '남자가 어떻게 그런 걸 하냐' 또는 '남자가 집안의 가장인데!'라는 식의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닌 걸 보면 그런 사람들은 꽤나 많은 느낌이다.
여자들은 그런 게 없을까? 아니다. 여자들 중에는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면서 집안일은 모두 절반씩 나눠서 해야 한다고, 내가 왜 시댁 제사를 드리고 시부모님께 주기적으로 인사드려야 하냐고, 내 부모님은 친정부모님이라고 하면서 집은 남자가 해오는 게 맞고, 남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경제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게 어떻게 남녀평등적인 사고방식인가? 남자를 호구로 삼겠다는 생각이지.
이러한 이상한 사고방식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보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과거의 결혼으로 돌아가 봐야 한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남성 우월적인 문화가 지배했던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건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남자들은 밖에 나가서 먹을 것을 가져왔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물리적인 폭력과 위협이 상시 존재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그렇다 보니 남자의 존재는 가정의 유지와 안전과 풍요의 절대적인 요소였던 반면, 여자들의 롤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수 있었다. 집안일을 챙기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는 게 절대 작은 일은 아니지만 당시 남자의 역할과 비교했을 때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다 보니 안 그래도 단순하고 과격한 남자들은 여자들을 도구로 여기기 시작했고, 그게 관습과 제도에 그대로 반영되면서 남녀 간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회와 국가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고구려와 고려시대에는 일방적으로 특정 성별이 더 우위에 있다고 해도 힘들었다. 데릴사위제가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었고, 결혼을 하면 남자가 여자의 집안에 들어가 살면서 일을 했던 문화가 이를 보여준다. 이런 문화는 조선 초기까지도 유지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의 이런 문화를 놓고 '고려시대에 남녀는 평등했다'라거나 여성이 우위에 있었다는 식으로 단순화시키는 주장들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다. 고려시대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는 사실 '남자의 노동력'에 가치가 부여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데릴사위 제도'로 분류될 수 있는 혼인 방식은 솔서, 예서, 서양자, 서류부가, 췌서 등이 있는 이 제도들은 기본적으로 남자의 노동력을 여자의 집안에서 혼인의 대가로 받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고려와 고구려에 이런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두 국가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중앙집권적인 근대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를 [국가]라고 부르지만 그 국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형태의 국가라기보다는 오늘날 EU와 같은 여러 부족의 연합체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가족 또는 부족 간 혼인을 할 때는 가족과 부족이 대등한 위치에서 혼인을 시키다 보니 '여자를 보내기 전에' 남자의 노동력을 그 대가로 받는 형태의 데릴사위 제도가 운영되었던 것이다.
혼인을 하는 과정에서 남자의 노동력을 받고 여자를 내주었다는 것은 오히려 남자의 가치를 더 높이 쳐주고 있단 것을 보여주고, 이는 당시의 환경과 생활방식을 고려하면 그럴 수밖에 없는 면이 있었다. 그건 남자가 절대적으로 잘나거나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원시시대에 그랬듯이 '물리적인 힘'이 절대적인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고, [개인]이라는 관념조차 없었던 시대를 두고 남녀평등을 논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발견되고,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남녀평등의 문제가 대부분 국가에서 여전히 작지 않은 문제인 것은 그만큼 남녀 간의 성역할에 기반한 불평등의 역사가 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평등의 문제와 그로 인한 갈등이 유독 심각해 보이는 건 왜일까? 그건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제도적으로 남녀차별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조선시대도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란 것을 기억해야 한다.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남자가 살림을 하고, 요리를 했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다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나라가 하루아침에 바뀌어도 현실에 그 변화가 스며드는 데는 시간이 걸리다 보니 16세기까지만 해도 고려의 문화가 남아있어서 남녀의 성역할이 그렇게 분명히 구분되지 않았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성리학이 정착되면서 남녀의 역할과 지위를 구분하는 '내외법'이 제정되었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그러한 문화는 완전히 고착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무의식에 뿌리 깊게 박힌 남녀의 성역할은 일제의 잔재라고도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결혼을 하면 여자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일에 집중하고, 남자들이 돈을 벌어오는 문화가 생각보다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단 것이 이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나와 같이 중,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일본 친구는 일본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후 빅 3으로 꼽히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 입사해서 일을 잘하다가 결혼을 한 후에는 곧바로 직장을 그만두더라. 그런데 그 친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학교를 다녔던 일본 친구들은 대부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성역할을 명확히 하고 '현모양처'가 되는 것에 대한 관념은 일제의 식민지 교육의 잔재에 해당하고, 조선의 문화도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신사임당'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 데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조선시대 자체가 남녀를 구조적으로 차별하는 사회였다면 신사임당을 비롯한 여성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왕이 어리면 왕비가 섭정을 했다는 사실도 조선시대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존재가 폄하되지는 않았단 것을 보여준다. 추측하기로는, 일본이 제국주의로 가는 길목에서 '전쟁'이 강조되었고 전쟁은 아무래도 생물학적으로 더 강한 남자들이 주축이 될 수밖에 없다 보니 일본에서 여자를 도구 또는 부품으로 여기게 되는 문화가 생긴 게 아닐까 싶다. 종군위안부와 같은 시설이 합법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여성에 대한 일제의 그러한 시선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부장제'도 '전통'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선시대의 가부장제는 오늘날 마초적인 남성들이 생각하는 남성우월주의가 아니라 남성은 여성을 보호해주고, 가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여성은 남자가 해결하지 못하는 빈 부분들을 채워주는 개념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집안의 머리'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아니, 남자가 머리라고 치자. 그런데 몸 없는 머리가 무슨 의미가 있나? 머리가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몸이 존재해야 한다. 생각만 하고 움직이고, 행동하지 못하면 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육체적인 힘'이 갖는 중요성이 현저히 낮아진 우리 시대에는 '남자는 집안의 머리'라는 생각조차도 버려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사실 조금 더 섬세한 면이 많은 여자들이 오히려 돈을 잘 벌 수 있는 영역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사실 조선시대에도, 평민들의 생활사를 들여다보면 집안의 경제적인 부분을 여성이 책임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우리가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것은 공교육 제도 하에서의 역사가 양반과 임금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우리가 굳이 성역할을 애써 구분하려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에 대해서 '남자는 건강하고 경쟁력 있는 2세를 갖기 위해 여자의 외모를 보고, 여자는 보호받고 생활력 있는 남자를 고르기 위해 경제능력을 보도록 진화되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여자분들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모든 인간이 다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진화]라는 말에 설득되어 성역할을 구분하고 여자를 도구화시키는 것을 이렇게 교묘하게 포장하는 것에는 왜 사람들이 분노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한 관념은 어렸을 때부터 세뇌된 것이지 당연히 그런 것이 아니다. 가부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은 그 가정을 보면 그런 문화가 있는 것만 봐도 그건 문화와 교육의 결과이지 생물학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성향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남녀 간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의식 중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고소득 여성들도 왠지 본인보다 돈을 더 버는 남자가 아니면 결혼하고 싶지 않은 것은 사실 조금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그건 '남성 우월적인 사고방식'과 '남녀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남자가 왜 여자보다 수입이 반드시 많아야만 하나? 여자들이 남자보다 돈을 더 잘, 많이 벌 수 있는 영역이 많아진 세상에서 그런 사고방식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남자는 왜 집안일을 하면 안 되나? 조선시대에도 주방일을 하는 남자들은 많았는데? 이와는 또 반대로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생각에 상대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성별을 불문하고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건 본인이 얼마나 가부장적인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임을 알 필요가 있다.
남녀의 이와 같은 성역할에 대한 구분을 갖게 된 것은 물질만능주의적인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돈이면 다 되는다는 생각, 물질적 풍요로움만 있으면 된다는 사고방식 말이다. 이전 글들에서도 말했지만, 난 돈을 좋아하기도 하고 많이 벌고 싶기도 하며 돈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앞의 글에서도 장황하게 설명했듯이 사람에게는 돈 보다 더 중요한 게 한두 가지 정도는 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뉴스와 광고와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몰입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돈과 물질이 지상 최고의 가치라고 여기게 되면서 사람도 그런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은 평등한 두 사람이 함께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인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가정에서는 두 사람이 50대 50에 가까운 책임과 역할을 지면 된다. 한 사람이 돈을 버느라 집안일에 신경 쓸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다면 다른 사람이 그 부분을 보충해주면 된다. 그 역할은 성별과 무관하게 상황과 각자가 갖고 있는 능력이 허락하는 사람이 담당하면 된다. 식량을 사냥해서 조달하는 게 아니라 유통시스템을 통해 구하고, 가정의 안전은 국가와 사회가 갖고 있는 각종 안전장치들이 담당하는 사회에서 예전만큼의 성역할의 구분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남녀 간의 차이가 아예 없단 것은 아니다. 개인에 따른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남녀를 유심히 관찰하면 성별에 따른 전반적인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그 차이를 매우 단순화해서 설명하자면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보통 다양한 가능성과 변수를 더 많이 계산하고 볼 줄 아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서 '전반적으로'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우며 섬세하다. 그런데 그런 성향은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에 결정을 내리기 힘들게 만든단 단점이 있다. 반대로 남자들은 섬세하지도 않고, 단순하며 한 번에 여러 가지를 잘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러한 성향은 결정을 내리고, 결정한 방향으로 무엇인가를 끌고 나갈 때는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특성은 우열을 가릴 성격의 것이 아니고, 그러한 다름은 사실 두 사람이 서로를 존중한다면 오히려 좋은 가정을 꾸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여자분들이 변수들을 고려해서 리스크를 계산해 내고, 선택지들의 장단점을 파악하면 남자들은 그중에 가장 나은 것으로 보이는 선택을 결정하고 밀고 나가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밀고 나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수와 리스크들은 여자분들이 브레이크를 잡아주면 두 사람은 자동차의 엑셀과 브레이크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그래서 가정의 결정은 남자들이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듯한데, 문제는 남자들이 여자들의 조언과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고, 대화를 많이 한다면 이처럼 다름은 틀림이 아니고 오히려 서로를 보완해주는 기능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마저 절대적이지는 않다. 결정을 잘 내리는 여자도 있고, 섬세하게 변수를 잘 짚어내는 남자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면, 본인이 조금 더 갖고 있는 것은 기꺼이 내어 놓고 상대는 그렇게 내어 놓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고마워할 줄 알면 되는 것이 아닐까? 부족한 것은 조금 부족하게 살면서 말이다. 삶은 그래도 살아진다. 그걸 증명하는 사람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굉장히 많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1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