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가족에의 이유. 10편
개인적으로 동거에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결혼은 하지 않은 동거하는 사람들에 대한 세제혜택 등과 같은 법령이 만들어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법령을 제정한 국가들이 실제로 있으니 그게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형태의 동거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난 '결혼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지만 함께 살고 싶으니 동거하자'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동거하는 것에는 찬성한다. 다만 '결혼하기 전에 서로가 맞는지를 확인해 보기 위한 동거'에는 반대한다.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은 동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걸 합리화시키기 위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기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다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반박하자면, 사람들은 '결혼하기 전 단계로서의 동거'를 하게 되면 100%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하기 때문에 동거할 때 알게 되는 상대의 모습들이 평생 유지될 수가 없다. 아니, 결혼을 하더라도 신혼 때의 모습과 결혼 후 10년, 20년이 지난 후의 모습은 다르지 않나? 동거를 10년, 20년 한 후에 결혼할 게 아니라면 어차피 상대의 모습을 100% 알고 결혼할 수는 없다.
동거가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국가를 예시로 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결혼 전의 동거'를 하는 걸 인정해 줘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게 있다. 그건 그 국가에서의 동거는 결혼의 '대체재'인 경우가 많지 '결혼 전 단계'로서의 성격을 갖는 경우는 많지 않단 것이다. 물론, 그런 국가들에서도 동거를 하다 혼인신고를 하거나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대체재'로서의 동거는 절대 가볍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도 될 정도의 신뢰가 있는 상태에서 살림을 합치는 것이고, 동거를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동거와 결혼이 그 본질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굳이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럴 수 있는 것은 많은 경우 해당 국가에서 동거인에게 적용되는 법제도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해 보기 전에 상대를 알아보기 위한 동거'는 일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이는 결국에는 리스크와 자신이 맞추려는 노력은 최소화하면서 결혼은 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모순적인, 어쩌면 이기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내세우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10년, 20년을 함께 산 부부도 서로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하는데, 1, 2년 동거를 한다고 상대를 알게 될까?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렇다면 왜 동거한 후에 결혼한 사람들이 동거를 추천하냐고? 그 질문에 다시 역으로 질문을 해보자. 그 사람들이 동거를 하지 않고 결혼했다면 불행하거나 이혼했을까? 그 사람들은 동거를 하면서 한 번도 싸우지 않았을까? 동거 후에 결혼을 한 후에는 결혼을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을까? 아닐 것이다. 내 주위에서 동거하고 있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도 신혼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싸우고, 부딪히고 지지고 볶는다. 그 사람들도 그 과정을 겪으면서 맞춰져 간 것이지, 동거를 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다.
결혼의 '대체재'로서의 동거에는 찬성하지만 결혼의 '실험실'로서의 동거에는 반대하는 나는 사실 동거와 결혼이 그 본질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동거와 결혼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살림을 합치고 같이 사는 것이 아닌가? 동거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가 아닌 것도 아니다.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게 그게 공동체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다만, '결혼'은 사회적으로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입니다'라고 공표함과 동시에 국가에 정식으로 '공동체로서 등록'을 한다는 면에서 사회적이고 법적인 성격을 갖는 반면 동거는 외부로 의사표시를 하거나 공식적인 약속을 한 것은 아니라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혼인제도'라는 걸 갖고 있을까?' 아니 그전에, 결혼은 언제부터 '제도화'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제도로서의 결혼'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법'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근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든지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사회관습적으로 두 사람이 부부가 된다고 선언하는 경우는 굉장히 많았지만 그러한 결혼도 오늘날처럼 '법적으로 구속되는' 혼인관계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애정행각을 벌이는 건 '관습적으로' 비판을 받을 수는 있어도 법적으로 문제를 삼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러한 '관습'도 여러 면에서 비판을 받았다는 데 있다. 19세기 이후에는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결혼은 여성을 구속하고, 남성에 복속시키는 제도라는 비판이 있었고, 남자들 역시 '누구 자식인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여자와 아이를 부양할 의무와 책임을 지게 만든다'는 이유로 결혼제도에 대해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처럼 혼인'제도'와 '관습'을 둘러싼 논란은 항상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국가들이 오늘날에는 결혼에 대한 법제도를 마련하고 있는 건 왜일까? 국가에서 강제적으로 관리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근대국가에서는 사회의 많은 부분을 법으로 규율하고 통제하는 '법치주의'가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았고, 그런 상황에서는 사회의 기초라고 하는 결혼과 가정공동체에 대한 내용도 법적으로 규율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관습이었던 것이 이제는 법제도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조금 더 깊게 들어가야 한다. 법은 왜 만들어질까? 법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무슨 말이냐고? 생각해 보자,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면 법으로 원칙과 기준을 정하거나 공권력을 동원해서 사람들을 처벌하는 내용을 왜 사전에 정해두겠나? 법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그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혼인제도는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의 안정을 위해서 가정의 기본적인 질서를 법으로 규율하는 법제도다. 혼인제도가 없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 사회에서는 아마도 지금보다 친자확인검사가 훨씬 더 많이, 자주 이뤄지지 않을까? 친자가 확인이 되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혼인제도가 없는 사회에서는 무엇을 근거로 아이에 대해서 그 부모가 책임을 지도록 할 것인가? 바람을 피운 사람의 배우자가 받은 피해와 상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혼인제도가 없는 사회는 이러한 틀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문제는 다 발생하면서 카오스로 치달을 것이다. 아니, 혼인제도와 그 제도에 반하는 행위를 한 자들을 처벌하고 책임을 부과하는 사회에서도 가정을 파국으로 이끄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나? 법제도가 없다면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을까?
이처럼 법제도로서의 '결혼'은 두 사람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을 강제하는 성격을 갖는다. 그게 나쁜 건가? 아니다. 본인들이 원하면 결혼을 하면 되고, 원하지 않으면 법적으로는 결혼을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 결혼을 하는 것은 가정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책임과 의무를 지고 싶지 않다면 동거만 하고 결혼은 안 하면 된다.
상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지겠다는 공적인 약속. 그게 동거와 결혼을 구분 짓는 유일한 요소다. 결혼은 '자발적으로' 상대에게 구속당하고, 상대와 꾸린 공동체를 어떻게든 유지하겠다고 하는 선언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공적인 약속이 중요할까? 인간은 믿을만한 존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무 심한, 극단적인 표현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어제까지 엄청 기쁘고 좋았다가 오늘은 급격하게 우울해지거나, 반대로 어제는 죽을 것 같이 힘들었는데 오늘은 하늘도, 공기도 맑고 빛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을 우린 얼마나 자주 경험하나?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에 힘들어하며 나도 죽을 것처럼 하다가도 밥을 먹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감정과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그에 따라 생각도 달라진다.
자발적으로 꾸린 공동체 안에서 그런 인간의 변덕스러움, 불안정함을 잡아주는 것. 그게 '상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지겠다는 공적인 약속'의 힘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기억하면서 '이성적으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게 결혼과 동거의 가장 큰 차이다. 동거를 하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어쨌든 상대에 대한 '공적인 약속'까지는 한 것이 아니고, 결혼이란 제도를 피한 것도 사실은 '사람 마음 어찌 될지 모르니'란 전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동거를 하는 건 두 사람을 붙잡아 두는 힘이 결혼보다 느슨하고, 인간은 변덕스럽기 때문에 결혼했을 경우보다 동거관계를 더 쉽게 깰 수 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우리 삶에 있는 큰 차이들은 대부분이 작은 변수로 인해 발생한다. 연애만 놓고 봐도 우린 이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연인'이란 무엇인가? 두 사람은 어떻게 '연인'이 되나? 왜 한 사람은 두세 명의 연인을 가져서는 안 되는가?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다른 목적과 용도로 여러 연인을 갖는 것에 왜 거부감을 가질까? 그건 우리 사회에서, 우리 시대에 연애를 한다는 것은 '너만을 더 진지하고 깊게 알아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와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그 합의와 관습의 존재라는 작은 차이가 사람들이 '연애는 한 사람과 해야 하고, 다른 이성을 동시에 만나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적인 약속의 존재 여부는 상대와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엄청나게 큰 차이를 야기한다. 오래된 연인이 결혼 얘기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거나 결혼하지 않을 거면 헤어지자고 하는 것도 사실 그 이면에는 상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때문이 아닌가? 이와 마찬가지로 공적인 약속을 한 사람과 함께 공동체를 꾸리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 함께 사는 건 그 관계에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거와 결혼은 비슷해 보이지만 매우 다르다. 결혼 얘기를 하는 동거인에게 '왜 굳이 결혼을 해야 하냐?'라고 묻는다면, 그건 서로를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는데 결혼이라는 제도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해야만 신뢰가 형성되냐고 묻는다면, 결혼이라는 공적인 약속을 하는 게 신뢰를 강화하는 데는 더 도움이 된다고 하겠다. 그리고 반대로 묻고 싶다.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면 상대가 바라는 결혼을 왜 굳이 안 해야만 하는 걸까? 뭐가 두렵고 자신이 없어서? 상대와 평생을 함께 할 정도의 신뢰가 상대에게 없는 것은 아닐까? 그 지점이 상대가 결혼 얘기를 계속 꺼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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