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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an 27. 2022

사랑도 실수를 통해 배운다.

40까지 연애하며 알게 된 것들. 1화

우리나라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경쟁이 심하다. 어렸을 때부터 '성공'을 획일적으로 정의하고, 같은 방향으로 사람들을 몰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의 가장 큰 단점은 실패나 실수가 쉽게 용납되지 않는단 것이다. 그런 면은 스포츠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실 스포츠에서 이기고 지는 건 현실에서 큰 문제가 아니다. 스포츠는 엔터테인먼트이니까. 그리고 구조적으로 승자가 극소수밖에 없게 되어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가대표 선발과정이나 국제대회에서, 아니면 본인들이 응원하는 팀에서 나오는 실수나 실패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욕을 하고, 계란을 던지고, 심할 때는 선수 개인에게 직접 가해를 하기도 한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한두 번의 실수도 너그러이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반복되는 실수는 실수가 아니고 습관이며, 자신이 실수라고 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경우에는 용서하거나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가지 않는다면 실수한 것에 대해서 용서하고 넘어갈 줄도 알아야 한다. 이는 평생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데, 실수한 것을 용서하고 넘어가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거기에서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실수를 이겨내고, 극복하고 더 단단해지고 실력을 차곡차곡 쌓기 위해서는 실수를 용서하고 넘어가 주는 게 필요하고, 중요하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평생 단 한 번의 실수도, 아니 평생을 기준으로 하면 최소한 수 백, 수 천 번 이상의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를 장담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처음'하는 것에서 실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장인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 당신이 떠올리는 무엇인가에 가장 능수능란한 사람들도 그 일과 관련해서 수 백, 수 천 번 이상의 실수와 실패를 경험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능수능란한 사람도 어느 정도의 실수와 실패는 지금도 할 것이다. 다만 그 빈도가 줄어들고, 크기가 작아질 뿐이다. 


연애와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연애와 사랑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개인적으로 연애와 사랑에 대해서 만큼은 '실패'라는 말을 쓰지는 않는데 이는 연애와 사랑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한 개인과의 연애와 사랑은 실패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실패한 연애나 사랑이 있다면 실패하지 않은 연애와 사랑의 결말은 무엇인가? 결혼? 어떤 실패하지 않은 결혼은 무엇인가? 아니, 그 이전에 결혼을 해야만 연애와 사랑이 성공한 건가? 그건 아니지 않나? 결혼생활도 마찬가지. 이혼하지 않고 살면 성공한 결혼인가? 부부싸움을 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은 것인가? 부부싸움과 갈등이 전혀 없는 결혼생활이라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결혼 전까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결혼한 후에도 대부분 부부는 공유하는 삶보다는 개인으로 사는 영역이 큰데 어떻게 갈등이나 부딪히는 지점이 아예 없겠나? 그런 결혼생활은 존재하지 않는다. 갈등을 큰소리 내지 않고 대화로 잘 풀어내는 부부는 있어도 갈등이 아예 없는, 100% 모든 것이 다 맞는 부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와 사랑에는 실수는 있어도 실패는 없다. 그 실수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다. 내가 애초에 맞춰가기 힘들 정도로 다른 사람을 선택해서 연애를 했을 수도 있고, 고백을 잘못했을 수도 있으며, 연애하는 중에 나의 감정과 상황으로 인해 이기적으로 굴어 상대에게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마흔이 될 때까지 연애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연애와 사랑도 그런 실수를 통해 배우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단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연애의 기술'이 늘어간단 것이냐라고 묻는다. 물론, 그런 부분들도 있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소개팅을 딱 한 번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나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취직해서 회사에 다니면서 소개팅을 할 때도 마찬가지. 처음 만난 이성과 대화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애프터는 어디로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든 게 혼란스럽고 어렵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소개팅도 계속하다 보니 상대의 호감을 사는 건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주선자의 욕을 먹이지 않는 건 가능해지더라. 그렇게 소개팅에 익숙해지면서 처음 연락하는 멘트, 약속을 잡는 패턴, 처음 만나서 대화를 끌어가는 흐름이 거의 기계적으로 됐던 시절이 있었다. 소개팅을 정말 자주 하던 시기에는 서울 각 지역별로 가는 식당들이 정해져 있어서 같은 식당을 다른 분과 갔던 적도 있다. 그 장소에서 만나도록 대화를 끌어가는 것도, 대화하면서 상대를 파악해서 최소한 욕은 먹지 않고 그 자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도 몸에 기술처럼 익혀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패턴을 오래 유지하지는 않았다. 이는 그렇게 습관적으로, 기술적으로 사람을 대하다 보면 상대에 대한 나의 마음을 잘 모르게 되기도 했거니와 상대가 보는 내 모습도 진짜 내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상대에게 산 호감은 나에 대한 진짜 호감이나 감정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외적으로 상대의 이상형이 아니어도 상대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겠다 싶을 때도 있었는데, 내 입과 행동을 차마 그렇게는 하지 못하겠더라.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연애의 기술'이란 말도 좋아하지 않고, 상대와의 관계를 그렇게 접근하는 것에 반대하는 편이다. 그렇게 하는 건 상대뿐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연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랑까지 가는 건 힘들다고 나는 생각한다. 


연애와 사랑도 실수를 통해 배우면서 나아질 수 있단 것은 실수를 하고, 싸우고, 헤어지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고, 그에 따라 상대와 어디에서 왜 부딪혔는지를 알게 되며, 그 과정에서 나의 미숙했던 것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실수했을 때는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 줄 알게 된단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상대를 고르는 과정에서도 실수를 덜 하게 되고, 상대의 마음을 조금 더 배려할 줄 알게 되며, 무엇보다 상대에게 나를 어느 정도는 맞출 줄 알게 된다. 


물론,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맞는 사람이 내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고, 틀림은 아니지만 다름의 폭이 너무 커서 지속적으로 맞추기 힘들 때도 있기 때문에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게 있어도 맞출 수 없는 사람과 영역은 존재한다. 연애와 사랑을 배우면서 나아지는 것에는 그걸 알게 되는 것도 포함된다. 


나도 그랬다. 나는 20대까지 연애도, 사랑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성에 대한 눈은 빨리 뜬 편이고,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어렸을 때부터 했지만 나는 정작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좋은 연인이 되는 것에는 잼뱅이였다. 애정 표현을 잘하지 않고, 칭찬보다는 채찍질에 익숙한 가정에서 자라다 보니 나는 이성과의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도 서툴렀다. 그리고 외적인 측면에서도 170 중반의 키에 살집이 있는 편이다 보니 자존감도 낮아서 이성에게 다가가는 것도 힘들었다. 여기에 더해서 주위에 친한 이성은 굉장히 많은 편이었지만 같은 모임, 동아리, 교회 안에서 만났다 헤어지게 되면 직면하게 될 후폭풍이 두려워 호감이 생겨도 잘 다가가지 못했고, 20대 초반에 연인과 헤어진 후에 경험했던 아픔과 고통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서 결혼이 뭔지도 모르면서 '다음에 만나는 사람과는 결혼할 거야'라고 생각했다 보니 나의 20대의 연애는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었다. 


이 시리즈에는 그렇게 실수투성이였던 사람이 조금씩 연애와 사랑에 대해 알아가게 된 과정을 돌아보면서 정리한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의 기술이나 남자/여자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식의 내용보다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는, 그때 알았으면 조금 더 좋았을 내용을 나의 경험을 녹여서 설명하고자 한다. 


생각해보면 마흔까지 연애를 했던 것이 자랑은 아니다. 그전에 결혼을 했다면 연애는 20대나 30대에 멈췄을 테니까. 그런데 마흔까지 연애를 했기 때문에, 그리고 사랑을 꿈꾸기 때문에 보이고 알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 그건 아마도 항상 연애와 사랑하고 싶었고, 가정을 꾸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길, 굳이 갈 필요 없다. 아니, 가지 않는 게 낫다. 나도 이런 길을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다. 이 시리즈에 담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나와 같은 길을 가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1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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