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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Feb 28. 2022

사랑은 밥을 먹여준다

40까지 연애하며 알게 된 것들. 2화

이 시리즈를 읽는 사람들 중에는 사랑을 강조하고, 연애와 결혼과 사랑에 대한 글을 쓰는 나를 보고 '뭘 그렇게 사랑타령을 해대냐? 사랑이 밥을 먹여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라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 않나?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사랑은 밥을 먹여준단 것이다. 


나는 일이 꽤나 중요했던, 지금도 중요하지 않지는 않은 사람이다. 나는 의미와 가치가 부여되는 일을 해야 살아있단 느낌을 받는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고, 남들이 부러워하고 선호하는 직장 5위를 10년 넘게 지키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게 된 이유도 의미와 가치가 부여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내가 잘하면 그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그렇다 보니 나를 애매하게 아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이상 아는 사람들도 나를 '일이 항상 우선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모습에서는 그런 면들이 많으니까. 


돌이켜보면 나는 실제로 그런 사람이었다. 대학생 때는 후배들이 진지하게 '저 형은 왜 멀쩡한데 연애를 못할까?'에 대한 토론을 한 후 '연애하고 싶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연애보다 우선인 게 많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고,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보니 실제로 그랬더라. 내가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보니 항상 사랑하기 위해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보다는 일에 쏟는 시간이 많았다. 그때는 누군가와의 불확실한 사랑보다 내가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았나 싶다. 


그 생각은 역설적으로 또래들 사이에서는 꽤나 성공적인 성과를 이룬 후에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회사에 취업해서 금수저가 아닌 사람들 중에는 꽤나 안정적이고 높은 금전적 보상을 받았지만 그게 내게 주는 행복과 기쁨은 제한적이었다. 없진 않았지만 제한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보상을 받기 위해 내가 치러야 하는 대가와 그런 대가를 지속적으로 치른 끝에 있는 결과를 선배들의 모습을 통해 알게 되면서 '이렇게 일해야 하는 걸까?'란 생각이 들더라.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회사를 2년 만에 그만둘 수 있었던 것은 그 과정이, 그리고 그 끝에 있는 한계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만둘 때도 내 기준은 사실 '일'이었다. 더 의미 있고 가치가 부여되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런 일을 하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서 금전적인 보상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보였다. 상상만 해도 좋지 않나? 가치와 의미가 부여되는 일에 금전적 보상도 더 많이 받다니! 그런 가능성이 보였기에 회사를 그만뒀고, 그 후에도 그런 기준으로 선택들을 해 왔으며, 지금은 금전적 보상적인 측면에서는 부족함을 느끼지만 의미와 가치가 부여되는 측면에서는 내가 생각했던 위치에 있다. 이 길 위에서 이력을 쌓으면 상당한 수준의 금전적인 보상도 몇 년 안에는 주어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하지만 그 위치에 도달한 순간 또 다시 허무해졌다. 내가 가치와 의미가 부여되는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이 현실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것을, 내가 내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거의 없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경험과 가슴과 현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금전적 보상만을 보고 일을 하게 되지도 않았다. 이는 금전적인 보상이 최우선 순위가 되는 순간 평생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지금 당장 1억이 생긴다면 조금은 더 행복하지만 그 행복이 얼마나 갈까? 10억이 없어서 불행해질 것이다. 10억이 주어지면 그 행복감은 조금 더 가겠지만, 집을 사고 먹고사는 문제를 생각하면 금방 불행해질 것이다. 100억이 주어진다면? 그 행복감은 최소 몇 달은 가겠지만 그 후에는 1,000억을 가진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게 보일 것이다. 그 패턴은 빌 게이츠나 중동의 거부들, 우리나라에서는 이재용 회장 수준의 부를 이루기 전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이는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에는 쉽게 적응하고,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계속 탐내게 되어있는데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재벌 회장들이 대선에 나간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권력과 명예를 갖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그런 일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은 인간의 욕구와 욕망은 끝이 없으며 그것으로 채울 수 있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각이 이 지점에 이르자 일을 할 동력과 유인이 사라졌다. 뭔가를 소유함으로써 느끼고 누릴 수 있는 행복과 기쁨의 한계가 보이자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해야 하지?' 싶더라. 물질적인 필요가 없다는 것도,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줄 수 있는 행복과 기쁨이 없단 것도 아니다. 그게 주된 목표로 설정되었을 때 그 끝에는 공허함이 있을 것이란 게 보였단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일종의 허무주의에 빠지게 됐다. 왜, 무엇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지의 문제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대로 '지금 나의 물질적인 공백이 왜 나를 힘들 게 하는 지'를 돌아봤다. 그 중심에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회사에 다닐 때 부모님은 회사의 콘도 회원권을 사용해서 여행을 갔을 때 가장 행복해하셨고, 입금된 보너스 금액을 듣고 부담 없이 조금 비용이 나가는 음식을 마음 편히 드시는 모습을 보고도 보람을 느꼈었다. 그런 시간들을 돌아보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좋은 것을 주고, 그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줄 수 있는 정도의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더라. 그런 생각이 들자 일해야겠단 마음이, 유인이 생겼다.


사람들은 우리 사회는 무엇인가를 더 소유할수록 더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무엇인가를 더 소유함으로써 느껴지는 행복도 있다. 그걸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유함에서 비롯되는 행복은 지속 가능하지 않고, 그런 행복을 위해서는 계속 무엇인가를 더 많이 가져야 하며 그런 소유욕에는 끝이 없으며, 소유함으로 인해 생기는 행복도 지속 가능하진 않다. 


더 지속 가능한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을 때 찾아온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을 때, 내가 가진 것을 공유하고 함께 누릴 사람들이 있을 때 우리는 지속 가능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그걸 아는 사람들은 그런 행복을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 일할 수 있게 된다. 그것 자체가 일을 더 열심히, 잘할 유인이 된단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준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일을 더 하는 것이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망가뜨린다고 판단될 때는 브레이크를 잡을 수 있다. 물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크고 지속 가능한 행복을 선물해 준단 것을 알기 때문에.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것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일하는 사람은 단순히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욕구에 브레이크를 걸 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누리며 충전한 사람들은 충전받은 힘으로 다시 일을 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 일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그런 유인 없이 오롯이 성취와 물질적인 풍요로움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지쳐서 일하는 데 쓸 에너지가 고갈될 수밖에 없다. 이는 사람은 누구나 정서적 필요가 있고,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마음부터 시작해서 몸까지 망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밥을 먹여준다. 일할 유인을 주기도 하고,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연애하고 결혼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냐고? 그건 그 사람들이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상대를 소유하려 하거나 연애와 결혼이라는 형식만 갖춘 상태로 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자신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고 상호 간에 희생을 할 줄 아는 진짜 사랑을 경험하는 사람은 그 사랑이 일할 유인과 에너지가 되어준다. 


당신은 지금 연애를, 결혼생활을 사랑으로 하고 있나? 아니면 상대를 나의 욕망,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 하고 있나? 상대는 어떤가?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이건 먹고사는 것의 문제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1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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