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TC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on de Cyrene Mar 04. 2022

상대와 연애를 시작해도 되는 시점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도 글을 쓴 지 5년이 되었다 보니 그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때와 지금의 생각이 다르단 것이다. 


언제부터 상대와 '연인'이 될지는 꽤나 어려운 문제다.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들은 그나마 지인이나 친구로 있다가 자주 연락하게 되고, 몇 번의 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감정이 흘러가면서 만나게 될 수도 있지만 소개팅으로 만난 사이에서 이 문제는 꽤나 큰 문제다. 아니, 사실 지인이나 친구로 있었다고 해도 몇 번의 만남과 감정적인 설레임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연인이 되어도 될지가 고민되는 것이 현실이다. 


소개팅에서는 일종의 '세 번의 법칙'이 제시되고는 한다. 세 번 정도 만나고도 서로 호감이 있다면 연애를 시작해도 된다는 공식.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만난 당일부터 뜨겁게 타오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보통 세 번 정도 만나고도 호감이 있으면 '일단은' 만나봐도 된다는 것이 이 법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얘기다. 


아주 일리가 없는 주장은 아니다. 실제로 소개팅을 해서 누군가를 만나 보면 두 번 정도까지는 대화할 내용이 적지 않기도 하고, 또 사실 두 번 만났을 때까지는 어느 정도 이상 긴장한 상태로 만나게 되는 반면 세 번째부터는 조금 더 익숙하고 편해지거나 대화할 소재가 떨어지기도 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세 번째 만남이 보통 일종의 분기점이 되어 편해지면서 호감이 가기 시작하거나 어색해지는 시점이 되는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이다. 


나도 세 번 정도 만나면 연인이 되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세 번 이상 만난 후에도 연인이 안 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냐고, 그 정도 이상 만나다 보면 '우린 아닌 것 같아요'라고 갈라서기도 애매해지기도 하고 서로를 더 빠르게 알아갈 수 있는 건 연인이라는 틀 안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머뭇거리는 상대를 그렇게 설득해서 연애를 시작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나는 남성호르몬 작용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졌고, 세 번 정도 만날 때쯤이면 내 안의 본능적인 욕구와 욕망이 가득해서 상대를 어떻게든 가지고 싶단 마음이 컸다. 그렇다 보니 때로는 상대와 연애를 시작함과 동시에 대화를 하고 서로를 알아가기보다는 스킨십에 대한 생각만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을 때도 있었고, 실제로 연애에 스킨십 외에 다른 것이 없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은 다르다. 지금은 연애를 서두를 유일한 이유는 스킨십을 하기 위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여성이 먼저 상대를 좋아한 게 아니라면 보통은 남자들이 연애를 서두르고, 때로는 조르기도 하는데 그럴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스킨십 밖에 없다. 


연애의 핵심은 '신뢰'다. 그런데 세 번 만난 사람과 얼마나 신뢰가 형성되어 있을 수 있을까? 신뢰는 말보다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하는데 세 번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말 외에 다른 것으로 신뢰를 증명할 게 없다. 두 사람 사이에 보일 '행동'이 있을 시간이 없기 때문에. 호르몬 작용은 본능적으로 상대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게 곧 신뢰가 존재한다는 것은 아니다. 신뢰는 필연적으로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썸을,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오래 갖는 것이 좋다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여서 어느 정도의 감정선이 올라온 상태로 두 사람의 관계에 진전이 없으면 호르몬 작용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지치게 되어 있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는데 2-3달이 지나도 내 실력이 늘거나 몸이 달라지는 게 느껴지지 않으면 그 운동을 하고 싶어지지 않는 것처럼, 관계도 진전이 없으면 지치기 시작한다. 내 지인은 상대가 무려 6개월 동안 '우린 연애하는 것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상대와 알아갔는데 결국 연인이 되긴 했지만 감정이 다시 올라오지 않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지더라. 


연인이 되는 시점을 잡는 건 그래서 어렵다. 알던 사람과 연애를 시작할 때도 '지인'으로서의 상대와 '연인'으로서의 상대는 다르기 때문에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해서 '지인으로 알고 지내던 사이니까 문제가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소개팅을 하다 보면 지인은 분명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내 앞에서는 엉망인 사람을 종종 보게 되는데, 지인도 연인 모드가 되면 그렇게 변하는 사람들이 있단 것이다. 나한테는 항상 깍듯하게 잘하는 착한 동생이었던 아이가 내가 주선한 소개팅 자리에는 나온다, 나온다고 하면서 2시간을 늦고, 나와서는 말도 잘 안 했다는 얘기에 상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수 십 번은 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르는 건 왜일까...


두 사람이 호감이 생겼다는 것이 두 사람 간에 신뢰가 생겼단 것은 아니다. 만약 상대가 호감이 넘치는 호르몬 작용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그 상태에서 연인이 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이는 호르몬 작용이 그렇게 넘치는 상태에서는 다른 감각들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르몬 작용을 어느 정도 제어하고 통제하는 것 또한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닌가? 그게 통제,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은 연애할 때 상대의 마음과 몸 상태가 스킨십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강요할 수 있는 위험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연인이 되기 전에 상대가 그런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서로를 더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 그 기준점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를 꽤나 오래 고민했는데 그건 아마도 '두 사람이 일상을 편하게 공유하고, 상대의 일상이 궁금해질 때'가 아닐까 싶다. 


연인이 일상을 서로 공유하는 것은 관계에 있어서 꽤나 중요한 요소다. 이는 두 사람이 일상을 공유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대화가 끊어지지 않고, 서로를 더 잘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때로는 한 달에 한두 번만 보더라도 두 사람이 전화나 카톡, 문자로 일상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 공백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생각해보면 두 사람이 가까워지고 서로를 잘 알아가기 위해서는 일상의 소소한 부분들을 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일상을 공유하는 건 일종의 '간접경험'을 하는 거니까. 그렇게 일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는 상대의 성향, 생각들을 간접적으로 알게 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이해와 신뢰가 형성되거나 깨지게 된다. 


혹자는 '신뢰가 생겨야 일상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 신뢰는 무엇을 통해서 형성될 수 있을까? 본인은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일상과 생각은 공유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일상과 생각만 수집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폭력은 아닐까? 그 과정에 지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에게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내면에 있는 것들도 공유해야 그 관계가 깊어지면서 상호 간에 신뢰가 형성된다.


문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삶의 어느 순간에선가 받은 상처로 인해 사람에 대한 그런 신뢰를 갖기를 힘들어한다는 데 있다. 그 상처가 꼭 연인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친구, 스승,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와 신뢰에 대한 배신으로 인해 누구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아무리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이 분명한 사람에게도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공유하기를 힘들어한다. 만약 그 상처가 사랑했던 이성에게서 받은 것이라면 이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연애 초기에 이성에게서 상처를 받는다. 상대가 스킨십을 강요하거나 자신을 이용했다고 느껴짐으로 인해 받은 상처는, 특히 연애 경험이 많지 않은 시점에 받은 그런 상처들은 그 사람의 다음 만남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또 그렇게 상처를 준 사람들 중에는 정말 나쁜 사람이어서 그런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남녀관계에 미숙해서, 사랑을 할 줄 몰라서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다는 게 남녀관계에서의 딜레마 아닌 딜레마다. 


그래서 연애는 천천히, 신중하게 시작해야 한다. 서로에게 솔직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상대를 '설득'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설득의 탈을 쓴 강요가 남발하는 세상이 아닌가? 그리고 상대에게 본인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말 설득되어 본인의 생각이 달라진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상대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상대가 떠날까 봐 설득된 것처럼 상대에게 반응하는 건 본인에게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너도 그렇다고 말했잖아'라는 말로. 그 정도의 문제로 상대가 당신을 떠난다면, 상대는 당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자신의 도구로 여긴 것이고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본인 중심적으로 그저 지켜만 보고, 지켜만 보고, 지켜만 보는 게 괜찮다는 것도 아니다. 그것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행동이 아닌가. 그렇게 지켜만 보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사실 본인의 마음은 이미 상대에게 열리기 시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받은 상처로 인해 그 문을 굳건하게 닫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기 하기보다는 상대에 대해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 알아가는 노력을 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본인의 마음을 열어봐야 한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과거에 받은 상처와 상대를 신뢰하지 못하는 경향성은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상처는 잘 낫지 않는 것처럼...


연애를 시작해도 되는 '썸'의 기간에 답은 없다. 모든 사람도, 관계도 다르기 때문에. 분명한 것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감정적으로, 욕구와 욕망으로 가득 차서 끌리는 시점보다는 그 시기를 조금 넘어서 서로의 일상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공유할 수 있고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시점에 연인이 되는 것이 그렇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패턴을 만들어 주고, 그래야 연애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단 것이다. 경험적으로는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과도 1달 이상에서 2달 정도면 그런 패턴이 만들어지는 듯하긴 한데, 그 역시도 사람마다, 관계마다 다르고 그 다름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기간이 긴 게 무조건 좋단 것도, 그 기간을 기다려 준 사람을 만나는 게 더 바람직하단 것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기다리면서 괜찮다는 사람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을 하거나 뒤에서 다른 짓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감정이 벅차오르는 것을 3-4개월 이상 오래 유지하면서 기다릴 수 있는 시나리오는 그 두 가지밖에 없지 않을까? 6개월 동안 연애는 하지 않고 알아간 지인의 경우는 어땠냐고? 그들은 사실 시작점을 찍지 않고 있었을 뿐이지 이 글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알아가기 시작한 지 2개월이 된 시점에 이미 실질적인 연인처럼 지내고 있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든 생각은, 역시 연애는 쉬지 않다. 하지만 다른 선택들과 마찬가지로 연애도 리스크를 수반하고, 이 표현을 여기에서 쓰는 게 어색하지만... 용감한 자가 결국 사랑을 얻는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2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은 밥을 먹여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