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TC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on de Cyrene Mar 09. 2022

첫 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

40까지 연애하며 알게 된 것들. 4화

'첫사랑'이 아닌 '첫 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띄어쓰기 하나가 들어갔을 뿐이지만 두 가지는 내게 꽤나 큰 차이가 있다. '첫사랑'은 영어로 따지면 THE LOVE와 같은 느낌이다. 뭔가 정말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되는, 다른 사랑과 다른 사랑 같은 느낌 말이다. 반면에 '첫 사랑'은 우리가 했던 사랑들 중에 첫 번째, 조금 더 담담하게 그저 먼저 겪게 되었던 사랑이란 느낌이어서 '첫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렇다. 첫 사랑은 그저 첫 사랑일 뿐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첫 사랑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때로는 자신의 첫 사랑을 그리워하지만 그때의 사랑을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게 왜 그렇게 특별한 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첫 사랑을 기억한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나의 첫 사랑을 말하라면 누구를 꼽아야 할지가 고민이 되는 측면도 있다. '사랑'의 기준은 어디에 둬야 할까? 두 사람의 감정이 통했어야 할까? 첫 사랑이 짝사랑이 될 수는 없을까? 어떤 감정, 어떤 관계가 사랑이란 말인가? 혹자는 미성년자들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전 글에서 설명했듯이 미성년자들의 사랑이야말로 진짜 사랑일지도 모른다. 


나는 첫 사랑은 짝사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상대의 대한 한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고, 그게 상호적이지 않다고 해서 상대에 대한 한 사람의 마음 자체가 부인될 수는 없지 않나? 그리고 사랑과 마찬가지로 첫 사랑도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마음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상대를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상대를 좋아했다면, 내 모든 것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면 그 마음은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첫 사랑은 연애 여부와 무관하게 그 사람의 마음을 기준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누가 본인의 첫 사랑인지를 꼽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첫 사랑을 꼽으라고 하면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사랑인지, 아니면 그전에 내가 느꼈던 호감이 사랑인지, 나는 지금도 사랑을 알기나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지 않나? 그리고 사람들은 과거의 사랑을 잊지 못했다고 하면 현재의 연인이나 배우자를 섭섭하게 할까 봐 '당신이 나의 첫 사랑'이라며 '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새로워서 그때마다 [아... 이게 사랑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우리는 정말로 첫 사랑을 모를까? 아니다. 호감 이상의 감정이 생긴 사람이 몇 명 이상 된다면 누구나 자신의 첫 사랑을 꼽을 수 있다. 사람들이 첫 사랑을 꼽기를 힘들어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고민도 충분히 하지 않고, 사랑이 뭔지를 잘 모르겠는 상태에서 첫 사랑을 꼽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호감 또는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생겼던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첫 사랑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기억한다. 


첫 사랑이 강렬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감정을 처음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가 본 여행지에서 느꼈던 감정을, 처음 먹어본 맛에서 느끼는 감동을, 또 처음 겪은 아픔으로 인한 고통을 기억하듯이 첫 사랑은 그것이 처음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반대로 처음 가본 여행지, 처음 먹은 음식의 맛, 처음 겪은 아픔에서 오는 고통을 몇 번 이상 경험하면 조금씩은 그 느낌과 감정이 무뎌지듯이 사랑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그 느낌이 무뎌진다. 첫 사랑이 기억에 가장 깊게 남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의 첫 사랑을 꼽으라면 초등학교 4학년 때 호감을 가졌던 친구를 꼽겠다. '야 초등학생이 무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을 알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그때를 첫 사랑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때의 감정이, 마음이 가장 또렷하게 기억나기 때문이다. 그 친구와 나는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 살았고 그 친구 집주소를 알았는데, 나는 어머니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꼭 그 친구가 사는 동에서 그 친구 방에 불이 켜졌는지를 확인하고 돌아가기도 했고,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에 현상한 필름에는 온통 그 친구 사진만 하나 가득 있었다. 


물론, 그 친구 전에도 호감을 느꼈던 이성친구도 있고 이름도 기억이 난다. 또 그 후에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좋아했던 상대가 있었지만 10년도 더 지난 지금은 그때의 감정과 기억이 선명하게 나지는 않는다. 그다음 기억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걸쳐서 나는데 그 감정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내가 느꼈던 감정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할 수는 없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4학년 때 좋아했던 그 친구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가 궁금해서 SNS에서 찾아보려 했을 정도로 기억이 명확하다 보니 나는 그때를 첫 사랑으로 꼽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가 아쉽거나 그립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 친구를 잘 알지도 못했고, 상호 간에 교감이 없었을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나와 분명히 성향이 다른 친구였다는 것을 알기에 그때로 돌아가고 싶거나 한 감정은 없다. 첫 사랑은 말 그대로 처음이었기 때문에 기억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일 뿐이고, 그 마음이 특별한 것은 맞지만 그 상대까지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사랑은 중요하다. 이는 모든 '첫' 것들이 그렇듯이 첫 사랑은 그 이후의 사랑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첫 사랑에게서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 후에 사랑을 시작하기를 힘들어하고, 첫 사랑에게서 신뢰가 깨진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에게 신뢰를 쉽게 가지지 못한다. 


처음 경험하는 모든 것이 그렇다. 우리가 어렸을 때 먹은 음식이 입맛을, 들었던 음악이 음악적 취향을 결정하듯이 우리가 경험한 사랑이 우리의 사랑을 결정하게 된다. 내 동생은 같은 부모 밑에서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태국에 산 적이 없었다 보니 두리안은 냄새도 맡기 싫어하는데 나는 두리안이 없어서 먹지 못하고, 나는 나이가 들어서 좋아하게 된 가수들의 음악은 좋아하지만 음악을 따라 부르지는 못하는데 청소년기에 항상 귀에 꼽고 다니던 음악은 몇 년 만에 다시 들어도 노래를 그대로 따라 부르고 있더라.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첫 사랑은 우리의 다음 사랑들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사랑, 첫 경험에 대한 부분을 어떤 이들은 '정복욕'을 투여해서 그저 너의 첫 사람이고 싶다는 욕망을 투여하거나, '내가 걔 첫 사람이래'라며 뿌듯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누군가의 첫 사랑, 첫 경험인 것은 그 사람에게 오래 기억될 것이라는 점에서 좋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첫 사랑, 첫 경험인 것은 그만큼 자신이 상대의 다음 사랑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단 의미이기도 하다. 


혹자는 '겨우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의 세상이다. 그 사람의 첫 사랑, 첫 경험을 망치는 것은 결국 하나의 세상을 망치는 것과 같은 짓이다. 아니, 그 '겨우 한 사람'에게 미친 영향은 그 사람이 그 후에 만나게 될 수많은 세상인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첫 사랑이, 첫 경험이 중요한 것은 이처럼 그 한 번의 경험이 엄청난 후폭풍을 오랜 시간에 거쳐서 일으키기 때문이다. 첫 기억의 흔적은 생각보다 잘 사라지지 않는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1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대와 연애를 시작해도 되는 시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