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사과를 못한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외국에 살다 귀국해서 가장 당혹스러운 부분이 이 지점이었다. 학교 복도에서 부딪히고 나면 나는 반사적으로 '미안'이라고 하는데 부딪힌 상대 아이는 내를 째려보고 '아이씨...'라면서 가더라. 나는 그렇게 순식간에 가해자가 되어버렸고, 그 부딪힘은 내 잘못이 되어버렸다.
내가 다녔던 미국인 학교에서는 그렇게 부딪히고 나면 두 사람이 모두 반사적으로 미안하다고 하고, 서로 괜찮은지를 물어봤다. 이는 그렇게 부딪히는 건 쌍방과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가 과실이 조금 더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완벽하게 반응했다면 두 사람은 부딪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쌍방과실이고, 내가 청소년기를 보낸 문화 속에서는 그런 작은 일들에 대한 사과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과를 하지 않는다.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인, 연인, 부부, 가족,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이 사과를 하지 않는다.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고집스럽게도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도 사과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안에는 일관된 패턴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관계를 수직적으로 해석해서 본인이 우위에 있다고 판단되거나 우위를 점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사과를 하지 않는다. 자신이 을이거나 위계에서 아래에 있다고 판단될 때는 사과할 일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때로는 비굴할 정도로 사과를 하는데, 본인이 상대와 수평적인 관계에 있을 때는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자신이 위에 있다고 생각할 때는 사과하는 게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사과를 하지 않는 느낌이다.
그런 경우에는 사과를 할 때도 그 모든 것을 갉아먹는 말을 뒤에 붙인다. 그건 '그런데 너도...'라는 말이다. 물론, 쌍방이 모두 사과할 일이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누군가가 잘못한 것은 다른 사람이 짚어줄 문제가 아니다. 더군다나 그 일에 같이 개입되어 있는 당사자가 할 말은 아니다. 그 사과는 상대가 자발적으로, 본인의 마음에서 우러나와하는 게 정상이다. 그리고 자신이 사과의 의사표시를 한 직후에 상대의 잘못을 짚어내는 건 상대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그런 사과는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게 아니라 관계를 악화시킨다. 상대의 잘못을 캐내고 짚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물론, 그렇게 사과할 줄 모르는 게 그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70-80년대까지 유교적인 배경에 군대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날 50대 이상인 분들은 그런 환경에서 성장했고, 그들이 본 [어른]들은 모든 관계를 수직적으로 해석하고 그에 따라 복종하거나 명령하는데 익숙했다. 그런 어른들을 본 그들이 그런 어른이 된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또 그들을 보고 자란 젊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런 것도 같은 맥락에서 머리로 이해는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머무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학교에서 체벌이 정당화되었다고 해서 오늘날에도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 않나? 과거에는 '군기'를 잡아야 한단 이유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폭력이 정당화되었는데, 그렇다면 그런 문화를 겪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폭력은 무조건 정당화되는 것인가? 그런 논리로 시간을 계속 거슬러가면 노예제도도, 신분제도도 정당화될 수 있고 일부다처제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반대로 데릴사위 제도도 그렇다.
사람은 변해야 한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나이가 들면 사람이 굳어서 쉽게 변하지 않아'라면서 과거의 문화를 답습하는 걸 정당화하려 하시는데, 그건 자랑이 아니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게 힘들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본인이 노력을 하면 바뀔 수 있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요될 수 있다. 더 많은 노력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바뀌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바뀌지 않는 분들에게 뭐라고 할 생각은 없고, 항상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식의 얘기도 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본인에게 '000한 것으로 인해 불편했다'라고 한다면, 그 얘기는 들어주고 그에 대해 생각도 하면서 상대를 배려하기 위한 노력 정도는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아니 그 정도 노력은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수직적인 문화에도 불구하고 그 얘기를 꺼내게 됐을 정도라면?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 대부분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라도 수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자신도 모르게 '야, 그러면 너는 다 옳은 거냐?'라고 묻는다. 물론, 상대도 완벽할 수도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불량배가 수 십, 수 백대를 때려서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터지는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옆에 있는 의자를 들어 불량배의 머리를 때리면 불량배는 피해자가 되나? 아니다. 불량배는 가해자고 피해자의 저항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방위다.
우리나라처럼 수직적인 문화가 강한 사회에서 '윗사람'이 형식적인 사과를 하고 그 뒤에 붙이는 '그런데 너도'는 마치 그 불량배가 '네가 의자로 내 머리 때렸잖아'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물론, 불량배도 아플 것이다. 머리가 깨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본인이 먼저 폭력을 휘두른 것에 대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걸 상대 탓을 해서는 안된다.
이런 식의 얘기를 하면 '그때는 나도 어렸고, 잘 몰랐고'라는 식의 이유를 댈 수 있다. 그런 면도 분명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가 그것까지 배려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고, 과거의 자신도 본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억울한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본인이 안고 가야 하고, 정말 상대에게 미안하다면 미안한 마음만 표현하면 된다.
상대가 계속 관계를 가져갈 만큼 성숙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상대의 그런 배려를 알아볼 것이다. 지금이 아니라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라도. 그리고 그런 배려에 고마워할 것이고, 그런 배려가 두 사람을 더 가깝게 만들어 줄 것이다. 반대로 상대가 그걸 못 알아볼 정도의 인간이라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그냥 그렇게 정리하면 된다. 어차피 살면서 모든 사람들을 안고 갈 수는 없으니 그런 사람은 사과 한 마디 던져주고 관계를 끊으면 된다.
그리고 사과를 하고, 그게 받아들여짐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가 개선되는 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그 관계에서의 상처가 깊고, 오래될수록 더 그렇다. 사과를 하고 그걸 받아들였어도 그 관계에 있는 상처는 하루아침에 낫지 않는단 것이다. 몸에 난 아무리 작은 상처라고 해도 약을 바르는 즉시 치유되는 경우는 없다. 시간이 필요하다. 깊은 상처일수록 회복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은 몸과 마음의 상처에서 모두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사과를 하고 나서도 두 사람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도 그걸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옆에서 기다려주는 게 더 중요하다. 몸에 난 상처를 빨리 낫게 하려고 된장, 고추장, 침을 바르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것처럼 관계에서도 사과를 한 후에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과도한 노력을 하는 건 두 사람의 관계를 완전히 망칠 수도 있다. 그렇게 지켜보다 보면 상처가 조금씩 아물듯이, 마음의 상처도 그곳에 '사과'라는 약을 바르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희석되게 되어있다.
'사과를 꼭 해야 하냐'라고 묻는다면, 해야 한다. 상대를 버리고 다시는 보지 않을 게 아니라면. 이는 사람에 따라 같은 말이나 상황에도 더 많은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그게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며, 진심 어린 사과 외에는 그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와의 관계를 끊을 게 아니라면,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사과를 하고 기다려 줄 줄 알아야 한다. 이는 크게 다친 후에 수술을 한 후에도 재활훈련이 필요한 것처럼, 망가진 관계를 회복하려면 마음과 관계의 재활 기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지 않나.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면, 잠시 기다리면서 그 옆에 있어줘도 되는 것이 아닌가. 지금 당장 억울한 게 있어도 잠시 누르고 있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상대 앞에 내놓으면 상대도 그에 대해 미안하고, 기다려 준 시절에 고마워 할텐데 사람들은 왜 그리도 급하게, 빨리 해결해버리려 드는 걸까. 마음은 하루 아침에 회복되지 않는데...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2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