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TC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on de Cyrene May 09. 2022

낮져밤이, 침대 아닌 책상에서

프리랜서로 사는 순간들. 12화

원래 낮에는 뭔가 앉아서 하는 것을 잘 못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회사에 다닐 때도 남들은 몰랐지만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시간을 정해 놓고 15분 정도는 구석에 가서 명동을 내려다보고 있었을까.


타고나기도 낮에는 왕성하게 활동하는 성질로 타고났지만, 내가 프리랜서로 하는 일들이 글을 쓰는 것이다 보니 아무래도 낮보다는 저녁에 더 집중이 잘 되는 편이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그러면 출퇴근하듯이 자신의 집필실에 나가 낮에 글을 쓴 무라카미 하루키는 뭐냐?'라고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패턴일 뿐이다. 창작을 하는 사람들, 특히 예민한 사람일수록 이 세상에 에너지가 넘치지 않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밤과 새벽에 작업이 잘 된다. 오롯이 자신이 하는 창작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수필을 읽어보면 그가 감정의 기복이나 동요가 다른 사람들보다 적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써내는 에세이들을 보면 그는 무엇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하나를 팔 줄 아는, 창작가보다는 사실은 학자에 가까운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패턴을 보면 그는 머리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창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부분의 창작가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마음에서 시작해서 그걸 자신이 창작하는 수단으로 가져간다. 그런데 순수한 창작이 아니라 돈을 받고 하는 창작은 그런 감정과 마음을 눌러가며 돈을 주는 사람의 요구에 맞는 결과물을 내기 위해 자신이 순수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결이 엇나가 있는, 다른 목적을 위해 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렇다 보니 프리랜서의 창작은 순수한 창작보다 더 힘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마음에서 시작된 창작을 하는 스타일의 사람들은 그 과정이 어느 창작 과정보다 고통스럽고 힘들다.


그렇다 보니 그런 창작은 낮보다는 밤에 더 잘 되는 경우가 많더라. 낮에는 신경이 여기에도 쓰였다가, 저것도 보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산만해져서 에너지를 작업을 하는데 오롯이 모으기가 힘들다. 모든 프리랜서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렇다. 그리고 글로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꽤나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 해서 또 낮에 작업이 잘 되는 편집이나 촬영과 같은 동적인 일들을 하고 나면 저녁에는 글을 쓸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서 글 작업을 하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낮에는 일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돈을 받는 일에는 항상 기한이 정해져 있다 보니 사실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물리적으로 글을 쓰고 있지 않더라도 그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를 않는다. 아니 사실은 저녁에 물리적으로 글을 쓸 뿐이지 그 결과물은 하루 종일 고민하고, 생각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가해 보여도 창작을 하는 프리랜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일 모드로 살아간다.


이렇게 말하면 '그냥 딱 집중해서 그 시간에 앉아서 하고, 나와서는 신경을 안 쓰면 되지 않아?'라는 식의 속 편한 얘기를 하는 지인들이 꼭 있는데, 뭔가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게 안된다. 회사원들은 다를까? 아니다. 회사는 개인의 특수한 능력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능력을 '조합'해서 그 회사의 목적을 달성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창작은 '관계'를 통해 일어난다.


그렇다면 회사원에게 창작의 수단은 결국 함께 일하는 회사 사람들이나 마찬가진데, 생각해보자. 회사원들은 퇴근을 딱 하면 꼰대 같은 상사나 말 안 듣는 팀원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하지 않을 수 있나? 그게 안되기 때문에 퇴근 후에 한 잔을 하는 것이고, 그게 안되기 때문에 불금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회사생활이 어려운 건 사실 일 자체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원의 스트레스 중 3-4 정도가 일에서 온다면 나머지 6-7은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퇴근을 해도 그 사람에게서 받은 스트레스가 이어지는 것이다.


프리랜서는 오롯이 자신의 능력으로 일을 하고, 밥벌이를 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가치가 없는 사람은 프리랜서로 먹고살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원에게 '회사 동료'가 프리랜서에게는 '일 자체'가 되고, 회사원들이 퇴근 후에도 자신과 일하는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듯이 프리랜서는 일이 안 되는 시간에도 일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프리랜서들이 여행을 가면 '너희는 마음대로 여행도 가고 좋겠다'라고 하지만, 사실 프리랜서들이 여행을 가는 것은 많은 경우 떠나지 않으면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프리랜서들은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니 일할  있는 기본적인 도구들을 가지고 여행을 가는 경우가 많다. 일을 떠나기는 하지만  켠에는  일을 안고 여행을 가는 것이다.


나는 높은 확률로 오늘도 낮에는 지고 밤에는 그나마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낮에 일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유랑을 하러 다니거나 소설을 읽거나 유튜브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러는 순간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는 과정에서도 결국은 어떻게든 나의 일과 관련된 것으로 그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렇게 일에 붙들려 살면서도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낮보다는, 그나마 결과물을 어떻게든 어느 정도는 만들어 내는 밤이 더 행복하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2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놀기'의 생산성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