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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May 09. 2022

사랑의 정의

사랑학개론. 3화

이 글을 읽어 내려가기 전에 잠시 멈춰서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자. 


사랑이란 무엇인가?


진지하게. 한 문장으로. 왜 한 문장이냐고? 이는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이해할 때는 한 문장이나 몇 단어로 그것을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대상에 대한 관점은 물론이고 그 대상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이해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랑'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운동'도 마찬가지. 전문가들은 '걷기는 운동이 안된다'라고 하거나 '빠르게 걷는 건 운동이 되지만 그냥 걷는 건 운동이 안된다'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그건 '운동'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운동을 '심장을 강화시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하면 걷기가 운동이 안 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운동을 '기초대사량 이상의 칼로리를 사용하게 되는 행동'이라고 정의한다면 걷기는 운동이 된다. 


마찬가지로 '사랑'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사람을 대하고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된다. 과학자들은 너무 쉽게 '사랑의 유효기간은 1년'이라고 말하고, 연구결과들은 사랑에 몰입하고 흥분하는 '콩깍지 기간'은 18개월에서 30개월이라는 결론을 내놓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말을 그대로 퍼 나르는데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정말 사랑일까?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호르몬 작용을 기준으로 말하면 '도파민이 분비되는 기간'이다. 새로운 경험을 하면 뇌의 특정 영역의 신경세포가 자극되고, 이 자극이 반복되면 도파민이 다양한 경로로 만들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말하고 정의하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결국 두 사람의 관계에서 '새로움이 느껴지고 그것을 통해 자극과 흥분이 일어나는 기간'을 의미하고,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새로움이 느껴지는 자극과 흥분상태'를 의미한다. 


그게 정말 '사랑'일까? 그게 사랑이라면 우리가 연예인을 보고 느껴지는 흥분과 설레임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진한 러브신, 키스신, 베드신을 보거나 야한 동영상을 봤을 때 느껴지는 자극과 흥분도 사랑이어야 한다. 왜냐고? 그럴 때 우리 몸에서는 실제로 도파민의 분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호르몬 작용만을 기준으로 '사랑'을 적용한다면 남자 친구와 만날 때보다 잘생긴 연예인을 봤을 때 더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처럼 '사랑의 유효기간'을 정하는 것이 갖는 한계를 인지한 과학자들은 사랑을 아드레날린, 도파민, 옥시토신의 단계로 나눠서 정의하기도 한다. 도파민에 지배되는 단계를 지나고 나면 두 사람이 함께 할 때 안정감을 느끼는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정말 이렇게 단계별로 넘어가지는 것일까? 아니다. 물론, 전반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어디에든지 예외가 존재한다면 그게 절대불변의 진리는 아니지 않은가? 결혼한 지 수 십 년이 지나도 상대를 보면 흥분되고 설레는 순간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사랑이 반드시 그렇게 단계별로 넘어가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의 몸을 놓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 우리의 몸은 순서대로 아드레날린만 분비하다 도파민, 그 후에 옥시토신만 분비할까? 아니다. 우리의 몸은 상대를 만날 때 감정의 변화에 따라 이 세 가지 호르몬은 물론이고 다양한 호르몬을 분비할 것이고, 다만 그 비율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오래 만난 커플 사이에서도 도파민은 분비되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관계에서도 옥시토신은 분비된다. 


여기까지 길게 복잡하고 어려우며 생소한 호르몬 얘기를 많이 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사랑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는 호르몬을 동원한 사랑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우리가 사랑을 하고 관계가 형성됨에 따라 나타나는 '생물학적 현상'을 설명해 줄 뿐이지 그런 현상이 어떻게, 왜 나타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설명은 많은 경우 '진화심리학'에 따라 하려는 경우가 많은 데 '진화심리학'의 내용은 앞의 글에서도 설명했듯이 아직은 '믿음'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을 진리로 전제하고 설명하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고, 그런 이론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게 곧 진리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호르몬 작용이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호르몬이 어떤 요소에 의해서 많이 분비되는 지를 알면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랑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도파민은 '새로움'을 접할 때 분비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 설레임과 흥분을 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와 새로움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옥시토신은 '신뢰'가 형성되었을 때 분비된다는 사실은 두 사람이 더 친밀해지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간의 호르몬 작용은 두 사람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함께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서 상호 간에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고, 만난 지 오래된 커플일수록 다양한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 도파민과 옥시토신, 노력과 신뢰를 포괄할 수 있는 '사랑의 정의'는 무엇일까? 


나는 사랑을 '상대를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는 일면 평범해 보이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그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이 정의에서 사랑은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전제된다.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건 뭘까? 그건 스스로 남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마음이 아니다. 이는 그런 마음은 이미 자신과 누군가를 비교하고 있는 것이고, 본인을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여기고 있지 못한 것이다.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도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니다. 이는 자신을 과시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인정을 받으려 하는 것은 이미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여기지는 못하고 있다는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흠결과 부족한 면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알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어떤 조건이나 상황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로 스스로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정당한 비판과 평가는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비난은 흘려들을 줄 안다. 


물론, 세상에는 100% 완벽하게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사람들의 평가와 평판을 어렸을 때부터 의식하도록 강요받고,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자라다 보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100%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어느 정도는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평판에 반응하기도 하니까. 우리는 스스로를 어느 정도는 소중하게 여기고, 또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의 평가와 판단에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게이지를 채웠다 비웠다 하기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사랑의 정의에 '소중함'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누군가와의 '신뢰'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상대가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불확실하고 경쟁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나? 이렇게 치열한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신뢰'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상대가 나를 어떤 측면으로든 보호해주고, 소중하게 여겨줘야 한다. '소중함'이 중요하고, 핵심인 것은 그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는 직접적인 경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기 때문이다. 앞의 글에서도 설명했듯이 우리는 간접경험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건 한 단계 필터를 거쳐서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가 소화하고 받아들이는데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것과 달리 직접 경험은 필터 없이 곧바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경험'을 해 봐야 다른 사람도 그렇게 소중하게 여겨줄 줄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유나 경험으로 인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도 누군가가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주는 경험을 하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게 될 수 있다. 내가 부족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누군가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면 우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아가 회복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몰랐던 사람도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게 될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경험 덕분에 자아가 건강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엄격한 부모님에게서 칭찬은 한 번도 듣지 못하고 자란 나는 자아가 건강한 편은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법은 알았어도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위로해 줄 줄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키도 큰 편이 아니고 살집이 있었다 보니 나는 이성 앞에서 항상 작아지는 편이었다. 당시에 나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몰랐던 나는 단 한 번의 사랑으로 자존감도, 자신감도 회복하면서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호감이 있었지만 같은 교회에 다녀서 고백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친구에게 교회를 옮기면서 고백을 했더니 그 친구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사실 나를 3년 간 좋아했다면서 자신과 친한 친구들은 물론이고 부모님도 나의 존재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못했지만 그 말 한마디는 내 마음에 감동으로 남아 '나는 누군가가 무려 3년이나 지켜보고 좋아해 줄 만큼의 장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내 안에 심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와 결국 이별을 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본 적이 없었다 보니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대할 줄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몇 번의 연애를 했지만 내가 유일하게 '놓친 사람'으로 그 친구를 꼽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난 지금까지도 그 친구만큼 나를 소중하게 여겨준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나는 그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평생 가지고 살 수밖에 없다. 이는 그때 그 친구가 뿌려진 사랑의 씨앗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점점 더 소중하게 여길 줄 알게 되었고, 그에 따라 연애를 할 때는 물론이고 일상에서도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짜 사랑을 할 줄 알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이처럼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것을 넘어서 치열하고 경쟁적이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친절을 베풀거나 아무나 소중하게 여겼다가는 우리가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 사랑을 가장하여 상대를 자신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나? 나이가 들고, 경험을 많이 하면 할수록 누군가를 소중하게 여기기가 쉽지 않은 것은 그런 간접경험을 넘어서 직접 경험들이 우리 안에 축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많은 것을 함께 경험하고, 보고 들을수록 두 사람 간에는 신뢰가 견고해질 수 있다. 꼭 직접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이상의 경험치가 생긴 사람들은 상대의 작은 말이나 행동 하나에서도 그 사람의 대략적인 성향을 읽어냄으로써 상대에게 신뢰를 빨리 형성하기도 한다. 우리가 작은 구멍을 통해 상자를 들여다봤을 때 초록색이 보이면 그 상자 안에 초록색이 많다고 추론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작은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채게 될 수도 있단 것이다. 


그런 신뢰가 견고해질수록 우리는 상대에게 내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상대도 그렇게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더 보여준 모습을 상대가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겨준다면 우리는 상대를 더 신뢰할 수 있게 되고 상대도 더 소중하게 여겨주게 된다. 이 사이클이 반복되면 두 사람 간에는 신뢰가 더 강해지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더 소중하게 여겨주게 될 수밖에 없다. 


사랑은 그렇게 신뢰와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행동, 경험과 마음을 반복함으로써 강해지고 커진다. 이는 상대와의 경험, 신뢰와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커질수록 상대는 대체 불가의 존재가 되고 세상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과정 자체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선을 긋고 구분해서 호감, 좋아하는 마음, 사랑을 정의하고 싶어 하지만 크기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모든 감정은 사랑의 범위 안에 들어가 있고 사랑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리즈에서 앞으로 다룰 내용 중 일부 내용은 제 유튜브 채널 (클릭)에서 미리 조금씩 다루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2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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