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관심 있는 것에 시선이 간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에 따라 관심이 달라지게 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에 구속되고, 경험한 범위 내에서만 세상을 볼 줄 알고, 경험에 따라 같은 상황과 공간 속에서도 다른 것을 본다.
그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책이나 이야기(유튜브, 드라마, 소설 등등)를 통해 간접경험을 하는 것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는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간접'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스윽 읽거나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읽고, 보고, 들은 것들을 곱씹고 질문하며 고민해야 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러는데 시간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자신이 편하고 익숙한, 아는 책과 이야기를 주로 접한다. 불편해도, 이해되지 않아도 고민의 소재로 삼을만한, 또 다른 형태의 경험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곱씹어야 하며 내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인내하며 시간을 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모든 것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 중시되는 요즘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편협해지는 것은 그렇게 고민하고, 곱씹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제 갓 앞자리가 4가 된 나도 만약 일과 환경이 나를 강제하지 않는다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을 것이란 확신이 있다. 글을 써야 먹고살고, 생각하는 게 일이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시선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 힘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나와 다른 삶을 산,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운동과 식사를 잘해야 체력이 유지되는 게 느껴지기 때문에.
극소수 창작자들만이 나이가 들어서도 창작을 하는 것은, 대부분 창작자들은 전성기를 빨리 맞이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하고, 간접경험을 통해 뭔가를 습득하는 데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드는데 생물학적인 노화가 찾아오면 그리 하는 게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왕성하게 창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운동하는 루틴이나 패턴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창작]이란 거창한 표현을 썼지만 사실 우리가 간접 경험하는 것도 모두, 하나하나가 다 창작에 해당한다. 직접 겪지 않는 것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 안에 정리하는 것이니 그것도 창작이 아닌가?
사람의 크기는, 배포는, 시선의 넓이는 그런 창작 작업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있다. 책, 유튜브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접해도 그것을 놓고 이해하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그건 마치 음식을 입에 넣은 후 위장을 거치지 않고 배출하는 것과 같다. 음식이 입에 들어가 상당한 시간 동안 소화기관에서 머물러야 그 영양소가 흡수되듯이, 이야기나 콘텐츠가 나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놓고 고민하고 곱씹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책은 읽어도 읽은 것이 아니고, 이야기도 들어도 들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얼마나 고민하고 곱씹었느냐에 따라 우리의 시선도 달라지게 되어있다.
누군가가 책을 많이 읽고, 뉴스나 콘텐츠, 이야기를 많이 보는데도 불구하고 시선이, 생각이, 말이 편협하다면 그건 그가 그걸 소화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기 때문이다.
기회가 되어 SK가스 유튜브 채널의 '트럭 타고'라는 시리즈의 진행을 하고 있다(링크-클릭!). 다양한 경험도 하고, 나름 고민하며 이야기들을 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1톤 트럭을 가지고 일하는 분들을 만나며 내가 몰랐던 세상을 만난다. 이 콘텐츠에서 내가 하는 일 자체가 '잘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이다 보니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놓고 고민하고 곱씹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 그분들과 공감할 수 있고, 그래야 그분들이 편하게 본인 이야기를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이제 4번 촬영을 했는데, 트럭을 겨우 4번 탔을 뿐인데 길에서 의식하지 않았던 1톤 트럭들이 눈에 들어온다. 따릉이를 타기 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특히 따릉이를 타는 지를 몰랐던 것처럼 내가 얼마나 주위에 1톤 트럭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는지를 이 시리즈를 촬영하면서 깨닫는다. 그렇게, 나의 시선이 또 한 번의 전환기를 맞이함을 느끼면서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하게 된다. 하루 6-7시간 촬영해서 10분짜리 영상 두 개를 뽑아내다 보니 나만 아는 이야기들이 많고, 나의 시선이 그 영향을 받는 것을 느낀다.
꽤나 많이 바쁜데, 내가 하는 일들이 모두 이런 종류라 감사할 따름이다.
ps. 이상 근황 토크, 또는 글을 많이 쓰지 못하고 있는 핑계 글이었습니다. 조금 더 자주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정말 일이 너무 많네요... 숨 막힐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