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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ug 01. 2022

[Intro.] 돈의 원리

이 시리즈는 브런치북에 응모하기 위해 급하게 원고를 썼다 보니 부족한 지점들도, 허술한 부분들도 있습니다. 뼈대만 남기고 전면적으로 수정 및 보완을 통해 출판될 예정입니다. 이점 참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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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의 법제도에 대한 이야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쨌든 법학박사니 까요. 원래는 [돈이 벌어지는 원리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시리즈를 기획했었는데 생각들이 조금 바뀌어서 제목을 더 심플하게 '돈의 원리'로 바꿨습니다.


이 시리즈를 몇 달 전에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돈에 대한 글과 책은 많지만 누구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을 설명해주지는 않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려면, 본인이 왜 돈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벌고 있는지, 어떤 이들은 왜 돈을 말도 안 되게 많이 버는 지를 알려면 자본주의는 물론이고 사회주의, 더 근본적으로는 국가시스템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제공하는 읽기 쉬운 책은 없는 듯해서 이 시리즈를 기획했었습니다.


사실 '이런 내용까지 써야 할까?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기획까지 해놓고도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유튜브에서 몇몇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 출연하면서 누군가는 어디엔가 이런 내용을 정리해 놓으면 누군가에게 언젠가 도움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돈에 대한 글이나 책은 대부분 근본적인 원리나 뿌리가 아니라 돈을 버는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런 기술은 지속가능하지도, 확장 가능하지도 않은 것 같았거든요.


그런 마음을 담아, 이 시리즈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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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 글에 댓글이 달렸다. 내 글이 전반적으로 부정확한 개념 정의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기반하고 있다는 게 핵심적인 요지였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고, 기분이 살짝 안 좋았지만 머리로 이해하고 그 기분을 삭였다. '내가 그걸 모르고 이렇게 글을 쓴다고 생각하나?'라는 생각에 살짝 기분이 나빴다가 '상대는 너를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알겠냐'는 생각이 들어 그 기분을 삭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건 그 여파가 오늘 아침까지 있기 때문이다.


브런치에서 내가 쓰는 글들, 특히나 '돈의 원리' 시리즈는 더더욱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돈의 원리'는 쓸지 여부를 놓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시리즈다.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수준으로 쓰려면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데, 그런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쓰면 정말 극소수의 사람들만 읽을 듯해서 '쓰겠다!'라고 선포를 하고 매거진을 만들어 놓고도 꽤 오랫동안 고민을 했었다. 내가 찾은 타협점은 '내가 원하는 디테일들을 최대한 생략하고 줄기만 남기자'였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순간순간 부끄러움이 일기도 했고,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제발 학계 선배들이 이 글을 읽지 않기를, 읽어도 내가 쓴 것인지를 모르기를 바랐다. 그 댓글을 쓰신 분이 말씀하신 부정확한 개념 정의와 성급하게 일반화시킨 지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 사실은 조금씩 포인트로 정리해뒀던 글들을 어제 몰아서 정리하고 시리즈를 마무리한 것도 그 시리즈는 쓸 때마다 그런 고민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리즈를 쓰고, 마무리한 것은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시리즈에서 나는 큰 틀은 내가 법을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가지고 있는 프레임에 내가 회사에 다니고, 프리랜서로 일하며, 사업하는 지인들의 일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고민했던 것들을 맞춰 넣었다. 그렇다 보니 그 시리즈는 어떤 곳은 깊고 어떤 곳은 얕으며, 그로 인해 조화롭지 못한 부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것을 한 땀, 한 땀 고민하며 맞춰서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아니 못한 것은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게 아주, 매우, 현실적으로는 돈이 되지도 않고 내 이력이나 경력이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여전히 대중서에 속한 글들은 어떻게 써야 균형이 잡힐지를 실험하고 훈련하는 과정에 있다 보니 그 균형점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서 사실 그 시리즈를 '브런치 북 프로젝트' 전에 일단 초고라도 완성시켜야겠단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측면도 분명히 있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는 것은 나는 '책을 내고 싶어서' 브런치 프로젝트'에 당선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이름으로 책이 나오는 것에 대한 큰 욕심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책이 나오는 그 자체보다 '대중서적'을 기획하는 기획자와 함께 일하면서 어느 정도 균형점을 잡아서 글을 써야 할지를 경험하고, 배우고 싶어서, 그 기회가 주어졌으면 해서 좋은 출판사와 좋은 기획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설민석 씨의 방송 복귀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에서도 한 얘기지만 난 소위 말하는 '학자'들이 조금 더 대중과 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이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은 한 사람의 사고를 극단으로 몰아가면서 훈련시키다 보니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학계에 있는 사람들은 개념을 명확히 하고, 논리적으로 치밀함을 갖추는 게 습관이 되어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글을 읽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이 대중과 소통을 하려면 일반 대중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소통할 줄 알아야 하는데 학문적 글쓰기에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에게 그게 쉽지는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다른 차원의 훈련이 필요한데, 박사들도 본인이 먹고사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그 과정에 투자를 하기가 쉽지는 않다.


내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나는 내 브런치에 담긴 글들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개인적으로 내 어떤 글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기 때문에 한 번씩 그렇게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 '최소한 나쁜 글은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브런치에서 내가 쓰는 글들에 대해서 특히 더 그런 것은 내 기준에서는 모든 글에 항상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더 세밀하게 설명하고 싶은 유혹이 굉장히 강한데, 그럴 때면 '너무 딱딱해서 아무도 읽지 않고 도움도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브런치에서는 내려놓는 연습을 하면서 글을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런 글을 쓰는 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인사이트가 있을 수도 있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브런치 초기에 쓴 글들의 경우 삭제하고 싶은 유혹이 엄청나게 들 정도로 민망하고 부끄러움에도 상당수를 남겨 놓은 것은 내 기준에서는 엉망인 글들이지만 그 글들이 힘이 되거나 도움이 됐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좋은 글'인지는 평가하고 판단하기가 힘들다. 이는 기준과 잣대에 따라 같은 글이 좋은 글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는 함재봉 교수님의 '한국 사람 만들기'는 한국 사람들이 모두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좋은 시리즈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한국 사람들이 그 책을 소화하기는커녕 읽기도 힘들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다면 그 책은 '좋은 글'인가? '나쁜 글'인가? 방대한 자료를 소화해서 분류하고 인사이트를 담았다는 면에서 그 시리즈는 좋은 글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접근할 엄두도 내기 힘든 방식으로 쓰여 있다는 점에서 그 시리즈는 나쁜 글일 수도 있다.


모든 글은 타깃이 다르고, 의도가 다르다. 그리고 글은 실리는 매체에서 글을 접하는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달라져야 하고, 특정한 글이 좋은 글인지 여부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고 '그 매체에서 글을 읽는 사람들이 공감하고 그 글에서 가져가는 게 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맞을 것이다.


브런치에서 내 글의 딜레마는 전문서적이나 학문적 글쓰기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형편 없어 보일 수 있는 반면 브런치에서는 딱딱하고 읽기 쉬운 편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런데 내가 다루는 주제들을 또 브런치에서 많이 읽히고 좋아요를 많이 받는 글들처럼 말랑말랑하고 편하게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브런치에서 계속 이 두 지점 사이를 오가며 고민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렵고 복잡한 글, 개념을 명확히 잡고 논리 정연하게 쓴 글들을 읽고 볼 여유가 없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 학자들, 소위 말하는 '엘리트'들은 그런 일반 대중들을 알게 모르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그러한 경향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일어난다. 일반 대중들에게 투표권을 주면 안 된다는 식의 주장들을 대놓고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 건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우월의식이 있는 지를 보여주는데, 그건 그들이 자신이 얼마나 특혜 받은 사람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과 말들이다. 물론, 그렇게 공부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가 그들을 현실의 치열함과 고단함으로부터 보호해줬기 때문인데, 그들 중 일부는 종종 그 사실을 망각한 체 현실에서 치열하고 고단하게 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던 사람들을 무시하곤 하고, 나는 학계에서 그런 모습들을 접할 때마다 분노하게 된다. 그런 생각과 시선이야 말로 천박하지 않은가.


현실의 치열함과 고단함에 시달리며 하루, 하루를 사는 사람들은 개념을 잡고 논리 정연하게 쓴 글들을 따라가며 읽을 힘도, 여유도 없다. 브런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글을 한 땀, 한 땀 붙잡고 읽지 않는다. 아니, 그럴 힘도, 여유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브런치에서 사람들에게 무엇이라도 하나 남기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포인트가 명확해야 하고, 논지는 단순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의 머리에 그 얘기가 남기 때문에. 그런데 그렇게 글을 쓰면 개념을 명확히 잡고 그에 기반해서 논리 정연하게 쓰기가 매우, 매우 힘들다. 어느 정도는 일반화시키고, 어느 정도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접근을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소화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브런치에서의 글쓰기는 타협의 연속이다. 내가 브런치에서 쓴 글을 그대로 책으로 출판할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안다. 이는 책은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사 보기 때문에 브런치에서 글을 읽는 것보다 더 꼼꼼하게, 고민하면서 볼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감사하게도 내가 쓴 글들을 기반으로 책을 낼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실질적으로 처음부터 쓰는 것처럼 글을 다시 써야 할 것이다.


글을 쓰는 건 이래서 어렵고 고단하다. 내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어떤 고민을 하며 쓰는 지를 누구도 알아줄 수도 없는데 글을 읽는 사람들은 본인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받아들이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로써 하는 글쓰기에다 내게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 브런치에서도 계속 글을 쓰는 것을 보며 이제는 그저 '내가 그래야 하는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글을 쓴다.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조금은 더 나아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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