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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ug 23. 2022

국가의 개입이 실패하는 이유들

돈의 원리. 3화

아직도 그 존재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비트코인의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의 블록체인에 생성된 첫 블록인 '제네시스 블록'에 자신이 비트코인을 만든 이유를 분명하게 기록해 놨다. 그 블록에는 '“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라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었는데, 2009년에 은행을 위해 두 번째 구제금융을 준비하는 영국 재무장관에 대한 기사의 제목이었다. 그렇다 보니 비트코인은 기존 통화체제에서 인간이 개입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을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의 도입을 통해 해결하고 기존 통화체제를 대체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해석된다.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이기적인 인간이 의사결정을 하는 세상보다 가치중립적인 기술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세상이 낫다고 생각한 것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처음은 아니다. 구글의 창립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기술이 빈부격차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아프리카에 인터넷을 깔고 기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테스트해왔다. 구글이 무인자동차를 개발하려는 것도 무인자동차가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시도들은 실제로 세상을 바꿨을까?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였던 부탄에 인터넷이 보급되고, 그들이 다른 나라들의 경제와 생활수준을 접하게 되면서 행복지수가 급격하게 낮아졌다는 사실인지, 우스갯소리인지 모를 이야기처럼 기술은 사람들을 더 불행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최소한 아직까지는 구글과 사토시 나카모토의 시도는 실패에 가까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놀랍고 대범한 시도들은 왜 실패했을까?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사회주의가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와 똑같다. 사회주의는 인간의 욕구와 욕망이라는 변수를 간과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완벽한 세상을 꿈꿨기 때문에 실패했고, 비트코인 역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간과했으며, 구글은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놓쳤기 때문에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런 시도들이 실패로 돌아갔다. 탁월한 엔지니어였던 그들은 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만 그 적용을 받고 기술을 이용하는 인간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적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것을 넘어서 이기적이다. 그렇다 보니 화폐에 대한 정책은 물론이고 국가의 각종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공동체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고, 그로 인해 대다수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통령 옆에 붙어 사익을 추구한 것이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매 정권마다 보면서도 '나는 예외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가 아닌지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만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은 사실 어쩌면 가장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을 따라 그대로 행동하고 의사 결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은 당선되어야 하고, 공무원들은 리스크를 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에 가장 맞는 의사결정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정치인을, 행정부의 수반을 뽑은 국민들이다. 만약 국민들이 최대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공약들을 분석하고, 그것을 공론화시키고 따진다면 정치인들도 그런 고민을 강제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당선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부분이 그렇게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적지 않은 이들은 특정 정당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며 편 가르기를 하고, 더 많은 이들은 후보 중에 더 꼴 보기 싫은 사람이나 정당을 낙선시키기 위해 투표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각종 서거에 후보로 나서는 이들은 자신의 공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해도 상대를 깎아내리고 흠집을 내면 당선이 될 수 있다. 그런 수준의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만드는 건 결국 우리나라 국민들 중 상당수가 그런 수준이기 때문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는 '전문가'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없다. 전문가들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정책을 비판하거나 나갈 방향을 제시해도 사람들은 그 사람이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면 무조건 절대악으로 만든다. 그리고 자신들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오랫동안 고민하고 분석한 그들에게 너무 쉽게 '당신들이 뭘 알아!'라며 무시한다. 여기에 더해서 정부는 매년 수많은 연구용역 과제를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외부기관에 맡기지만 그 내용을 읽고, 현실에 반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 연구과제들은 정부의 예산 털어내기의 일환일 뿐이다.


국가의 개입이 효율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못한 것은 이처럼 현실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에 합리성과 이성이 끼어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각 의견이 어떤 맥락에서 말이 되고 어떤 맥락에서 허점이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분석해서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오로지 국가적인 이익만을 위해 의사결정을 한다면, 그리고 모든 공무원이 자신의 임기 안에 자신의 이름을 부각하는 것보다 장기적인 국가경제, 사회, 문화의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일한다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엄청나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표심을 보면서 그들에게 친화적인 정책을 입안하기 위해 침소봉대하거나 있는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그런 사람도 자신의 편이거나 자신이 증오하는 사람의 상대라면 눈을 감고 투표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반드시 필요한 국가의 개입이 적시에 적절하게 이뤄지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개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의사결정권자들의 의도와 의사결정 방법과 방향이 문제인 것이다. 


물론, 정말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다양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고 의사결정을 해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인해 국가의 의사결정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이 진실한 사람들이 의사결정권자라면 그들은 빠르게 대응해서 피해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나라는 없다. 인간은 모두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어느 정도 이상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일반 사람들은 자신의 생계가 우선이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에 큰 관심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토론할 줄 알며 전문가들의 견해를 존중하는 문화가 강하고 자리 잡은 국가일수록, 심지어 그러는 척이라도 할 줄 아는 국가들도 국가의 개입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경우가 많단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나라는 공무원 제도 운영되는 방식도 국가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국가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9급과 7급은 물론이고 5급까지도 시험을 봐서 공무원을 채용하는데 이는 사실 우리나라의 70-80년대처럼 대학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각 사회영역이 고도로 발달되지 않은 국가에서만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그런 사회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많다면 그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5급에 채용하고,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은 행정적인 업무나 지원업무를 하는 방향으로 채용하는 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다. 


문제는 우리는 21세기에 그와는 완전히 다른, 모든 영역이 고도로 발전해서 자신이 잘 아는 영역 외에 다른 영역은 알기 힘든 세상에 산단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실 국가가 개입하는 영역에서 실무를 하고, 그 영역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들을 정부에서 스카우트해서 그에 맞는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 영역에서 일하지 않고 처음부터 정부에서만 일했던 사람들은 제너럴리스트이지 스페셜리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영역이 그런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국가의 의사결정은 지금보다는 훨씬 현실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국가의 개입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공무원 제도에서 최소한 고시제도는 폐지하고 민간에서 전문가들을 높은 연봉을 주더라도 데려와서 국가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경제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국가가 개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단 그 이면에 있는 여러 상황들로 인해 효율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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