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조기교육이 필요해

사랑학개론. 9화

by Simon de Cyrene

앞의 글에서도 설명했듯이 우리가 누구에게 매력을 느끼고, 어떤 방식으로 호감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지, 심지어 그런 마음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 지도 결국은 '나'에게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나'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꽤나 자유롭게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안에 있는 많은 것들은 우리가 의식을 갖거나 이성적인 사고체계를 갖추기 전에 결정된다. 그중에 사랑과 연관된 가장 큰 요소는 영유아기에 맺은 애착관계다. 영유아기에 맺은 애착관계는 아동기를 넘어서 성인이 된 후에도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가장 큰 영향, 어쩌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부모님을 중심으로 한 나의 영유아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로 인해 부모와 자녀가 '올바른 애착관계'가 형성된 경우가 매우, 극히 드물다. 지금이야 아들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며 아들보다 딸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80-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남아선호 사상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여자아이들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온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남자아이들은 달랐을까?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남성성을 모든 남자들에게 강요하는 문화가 있어서 남자아이들에게는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는 식의 표현으로 무조건 강할 것을 요구한다. 남자아이는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체벌을 심하게 하는 부모도 얼마나 많았나?


영유아기에 올바른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데는 답이 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어른들에게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 항상 칭찬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야단을 칠 때는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자신이 왜 혼나는 지를 알 수 있게 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아이가 자신이 존중받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표현은 말과 행동, 스킨십을 통해서 입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왜곡된 유교사상과 일제강점기의 군대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은 우리나라에서 부모들은 아이를 '아랫사람'으로, 심한 경우에는 본인의 소유물로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다. 아이가 자신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이의 말을 들어보려고 하거나 아이를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너는 도대체 왜 말을 안 들어 먹니?!'라고 소리 지르는 모습은 지금도 길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고, 자신이 부모라는 이유로 집에서 아이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부모들은 누가 봐도 좋은 부모가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겉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좋은 부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우리 사회에 엄청나게 많다. 아이를 위한다면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영어유치원과 학원을 보내고 조기교육을 시킨다며 그 나이대에 감당하기 힘든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들은 그것으로 '다 아이를 위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아이가 먼저 그것을 원했다면 그건 아이에 대한 사랑이 맞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경우보다는 본인이 아이를 특정한 방식으로 만들고 싶어서, 아이를 본인의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본인이 생각하는 인생의 정답을 아이에게 투영시키기 위해서, 본인이 가지 못한 길을 아이를 통해 대리 만족하고 싶어서 그러는 부모들이 더 많다.


그렇다면 그런 부모들은 모두 이기적이고 괴물 같은 사람들일까? 아니다. 사실은 그들도 사랑보다 획일화된 사고방식, 성공과 경쟁이 지상목표이고 절대적인 선함인 것처럼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의 피해자들이다. 아이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요하는 대부분 부모들은 실제로 그것이 자녀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그걸 억지로라도 아이에게 시키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지금은 아이들이 힘들어해도 길게 보면 그게 정말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그들도 믿는다.


왜 그럴까? 그건 그들도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부모는 그 부모에게서, 또 그 부모는 그 부모에게서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생존과 경쟁이 가장 중요했던 시기를 보냈다. 일제 치하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차별을 경험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목표일 수밖에 없었고, 한국전쟁 이후에 폐허가 된 한반도에서도 생존이 가장 중요하고, 아이들이 생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곧 사랑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랑이 왜곡되어 있는 건 우리의 부모의 부모의 부모들이 그러한 시절을 살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 초기단계이긴 하지만 이미 실시간 통역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영유아인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영어를 편하게 하는 게 엄청나게 큰 무기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게 무조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공식도 깨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특정한 교육과 길을 강요하려는 부모는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님이 그렇게 강요를 하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자신이 그것을 경험하여 도달한 현재에 만족하는지, 만족하지 못한다면 왜 만족하지 못하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그 기억을 돌이켜 본다면 그 부모는 아이에게 특정한 미래를 강요하진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방향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싶다면 그렇게 아이를 키운 미래를 생각해보자. 아이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든 부모는 아이가 성인이 된 이후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힘과 노력을 쏟은 것은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그 부모는 아이가 성인이 된 후에도 아이의 현재를 자신의 것이라 여기고 아이에게 집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올가미'란 영화에 나온 시어머니의 모습도, 아이가 취업을 한 후에 직장상사에게 전화를 거는 부모의 모습도 모두 사실은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그런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면 어렸을 때부터 아이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강요하지 않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영어유치원이나 조기학습이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아껴주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그 아이가 정말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부모님의 말을 존중하고 들을 것이다. 아이에게 조기학습을 시키고 싶다면 아이를 강제로 그 틀에 넣을 것이 아니라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아이를 설득하고, 아이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 아이는 그 과정에서 부모가 자신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아껴주고 있다는,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안다.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조기교육은 '사랑'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사랑을 배우고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는 거의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 백지와 같은 상태인 영유아기에 받은 영향에서 자유로워지는 건 생각보다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랑이, 아이가 성인이 된 후의 사랑, 연애와 결혼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 결혼하라고 닥달하거나 왜 그런 애랑 연애 또는 결혼을 하냐고 분노할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온전히 사랑해줌으로서 아이가 좋은 사람을 알아보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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