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배우는 법

사랑학개론. 10화

by Simon de Cyrene

사랑은 본래 가정에서 배워야 한다. 부모가 그 자녀를 사랑해주고, 그 자녀는 부모에게서 경험적으로 배운 것을 사랑이라 인식하고 다른 사람을 찾게 된다.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 시대에 진정한 사랑을 찾기가 힘들어지는 것은 그만큼 가정에서 사랑을 제대로 배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모든 면이 그렇다. 아이를 자신의 도구로 여기고, 아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특히 연인과의 관계에서는 상대를 자신의 욕심,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여기게 된다. 스킨십도 마찬가지. 부모와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고, 그 과정에서 사랑받는 느낌을 충족받으면서 자란 아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스킨십을 한다. 이 시리즈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스킨십에 대해 극한의 거부감을 갖거나 놀이 정도로 여기며 자신의 욕구와 욕정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한 것은 유교적인 문화 때문에 어렸을 때 스킨십을 사랑으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할 때 상대의 가정과 성장환경을 보라는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도 부모와 성장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지금 당장은 상대가 그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해도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이 다양한 환경에 처하다 보면 그 사람 안에 있는 가정과 성장환경의 영향이 드러나게 되어있다. 사람들은 그럴 때면 상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런 모습들은 상대 안에 항상 있던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할 때는 상대의 가정과 성장환경을 이성적으로 면밀히 살펴보고 그에 대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돈이 많고 적음이나 사회적 평판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돈이 엄청나게 많고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이 오히려 더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그런 가정들 중에 돈과 사회적 평판을 자녀보다 중요하게 여겨서 아이들을 억압하는 부모들도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가정과 성장환경을 봐야 한다는 건 그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에서 사랑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봐야 한단 것이다. 정말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어도 부모님에게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를 할 때도 상대의 성장과정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상대가 경험한 사랑을 알아갈 필요가 있다.


결혼은 그렇다고 쳐도 왜 연애까지 그래야 하냐고? 우리는 모두 과거의 연애의 영향을 받아 다음 연애와 결혼에 대한 결정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첫 연애에서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들은 연애를 하기 힘들어지는 것을 넘어 남성이나 여성을 하나의 집단으로 여기고 그에 대한 분노하게 되기도 하고, 상대를 신뢰하기 힘들어지기도 하며, 그 연애의 영향을 받아 이상한 사람들과 반복적으로 연애하게 되기도 한다. 연애나 이성에 대해 시니컬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과거 연애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누구도 과거의 연애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 상대보다도 성장환경이 중요한 것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들은 그런 경험도 이겨내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힘든 연애를 했어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 자아가 건강하고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그 안에서 힘든 연애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한다. 그 힘은 사랑받으며 자란, 자신을 조건이나 상황, 환경과 무관하게 소중하게 여기고 아낌 받은 경험을 한 사람들만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강압적인 부모님을 뒀거나 힘든 성장환경에서 자란 사람과는 절대 만나면 안 된다'라는 것은 니다. 이는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도 옆에 좋은 친구, 선생님이나 연인이 있어 그 관계에서 사랑을 경험했다면 진짜 사랑을 할 줄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차적으로 상대가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관계를 형성하며 자랐는지를 봐야 하고, 만약 힘든 성장환경과 시기를 거쳤다면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 과정이 힘들었지만 내면의 상처가 어느 정도는 치유되어 분노가 없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용납이나 용서는 안되더라도 이해는 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그 경험을 넘어선 사람이라면 오히려 어렸을 때부터 사랑만 많이 받은 사람보다 더 성숙한 사랑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그 사람은 자신이 아픔과 상처를 경험했기 상대의 아픔과 상처에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신의 힘들었던 성장환경과 가정형편을 부정하거나 마냥 회피하려는 사람은 본인이 그 배경을 모두 품어주고 그 사람을 온전하게 사랑해 줄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면 만나지 않는 것이 낫다. 물론,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상호 간에 신뢰가 형성이 되지 않았을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난 지 어느 정도 이상 기간이 지나고 신뢰가 생겼다고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야기를 회피를 하거나 부정하는 사람이라면 그 경험으로 인한 상처가 안에 여전히 남아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과거의 경험과 아픔과 상처를 넘어서지 못한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은 상대의 그 부분들까지 품어주고 감당해주면서 옆을 지켜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각오가 없다면 본인은 물론이고 상대를 위해서도 그 만남은 정리하는 게 낫다.


만약 본인이 그런 상처나 아픔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본인의 잘못이 아니고, 자신에게 상처나 아픔을 준 사람 또한 다른 사람에게 그런 상처와 아픔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실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양가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시고 명문고를 졸업하셨지만 원하시는 대학에 가지 못하셨고, 양가가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던 시점에 만나 2개월 만에 도망치듯 결혼을 하셨다. 그런 부모님의 아들로 살아가는 건 솔직히 쉽지 않았다. 성적도 항상 잘 받아야 했고, 행동도 바라야 했는데 그 기준이 높다 보니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모님께 칭찬을 받은 적이 없다. 좋은 성과를 내도 내겐 다음 과제와 채찍질이 있을 뿐이었고, 스킨십은 당연히 없고 체벌만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항상 내게 키가 크지 않다고, 살이 쪘다며 자신들은 모르지만 내겐 상처가 되는 말들을 어렸을 때부터 하셨다. 거기다 7살 어린 동생이 있는 장남이다 보니 나는 항상 어른스럽기를 강요받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그 상처들은 곪고 곪다 30대 초반에 내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터져 나왔다. 내 안에 압력이 너무 강해지다 보니 나도 몰랐던 상처들까지 다 터져 나오더라. 그 시작점에서 나는 모든 것을 부모님 탓으로 돌렸고, 중간 어딘가에서 부모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신 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두 분도 항상 잘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며 외롭게 살다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니 감정이 폭발하여 결혼까지 하셨다는 것을 그때야 이해하게 되었다. 그걸 알게 되고 나서도 내 안의 상처들이 회복되고 부모님을 용서하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은 여전히 모든 것을 내 탓과 의지로 돌리려 하셨지만 나는 그 시도에 완강하게 저항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건 내가 오롯이 나만을 오랫동안 바라 봐준 사랑을 20대에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의 미숙함과 이기심으로 인해 그 만남 자체는 길지 못했지만 나는 20대에 나의 외형과 조건 없이 나를 오랫동안 조용히 지켜보며 좋아해 줬던 사랑을 경험했고, 그 친구와의 만남은 내가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어줬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나는 힘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사랑받을만한 사람이야'라고 되뇌었었다. 그렇다 보니 그 후에도 몇 번의 연애와 이별을 했지만 그 친구와의 만남이 여전히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남아있다. 여기에 더해서 소소하지만 꾸준히 내 옆을 지켜주고 보호해줬던 고마운 친구, 선후배와 어른들 덕분에 나는 그나마 과거보다는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사랑을 경험해야 할 줄 알게 된다. 사랑은 경험하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인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어려운 것은 세상에는 사랑의 탈을 쓴 사랑 아닌 욕망, 욕정, 욕구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받은 상처는 우리 안에 깊은 상흔을 남기고 우리의 아직 오지 않은 사랑들에도 영향을 준다. 그럴 때 우리는 꼭 사랑이 아니어도 주위의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와 관계 속에서 회복해 나가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상대를 도구로 여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랑에 대해 시니컬하고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


왜 그런 노력까지 하면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냐고? 인간은 모두 어떤 행태로든 사랑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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