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학개론. 18화
아시아 국가들은 전반적으로 스킨십에 보수적인 편이다. 전 세계에서 일본의 섹스리스 부부가 2014년 기준으로 44.6%를 기록했고, 2016년 연구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35%를 기록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전 세계 평균이 20%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그 비율이 굉장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참조자료 링크).
이러한 상황이 바람직하지도 않긴 하지만 그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논의들도 그다지 건강하지는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워낙 섹스는 물론이고 스킨십에도 보수적인 편이다 보니 그에 대한 내용들은 현실에 대한 반작용처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을 달고, 그런 내용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 내용들은 횟수, 크기, 시간처럼 '정량화'될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말장난을 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 그런 내용의 콘텐츠들은 사실 콘텐츠를 접한 사람들이 섹스 자체를 단순히 오락이나 유희와 쾌락을 위한 도구처럼 여기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건강한 섹스와 스킨십을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성의학이나 부부관계 전문가들이 만드는 콘텐츠나 내용들은 그래도 조금 나은 편이다. 그런 콘텐츠들의 경우 의학적인 지식과 함께 이야기가 이뤄지기 때문에 덜 장난스럽고 섹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고 현실적인 조언도 해준다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런 콘텐츠들의 경우에도 '섹스'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는 측면에서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나라에 섹스리스 부부가 많은 이면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킨십 자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섹스에 대한 문제에 접근할 때 섹스를 하나의 독립된 행위로 구분해서 볼 것이 아니라 '스킨십'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일상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인사를 할 때 다른 사람과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그렇다 보니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소소한 스킨십들을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태에서 연인과의 관계 또는 성적 매력이 느껴지는 이성을 보면 급발진을 하다 보니 중간단계는 건너뛰고 섹스로 직행하는 폭력적인 패턴이 자주 일어나게 된다.
섹스는 철저히 '스킨십의 연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섹스는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두 사람이 스킨십으로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다가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두 사람이 모두 그 섹스를 '사랑의 표현'으로 느낄 수 있다. 실제로 남녀의 성적 만족도에 대한 연구들은 성적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성기 크기, 굵기, 피스톤 운동 시간 같은 요소들 보다도 전희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들 중에서는 5분 전희 그룹과 20분 전희 그룹을 비교했을 때 만족도가 3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드러난 경우도 있고, 전문가들은 보통 전희 시간을 20분 정도로 추천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50대의 경우 거의 90%가 전희를 10분도 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고, 20대들의 경우 55% 정도가 전희를 7분에서 20분 정도 하는 비율이 55% 정도가 되었지만 20분 이상 하는 경우는 8.2% 정도에 그쳤다. 스킨십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20분 정도 스킨십을 하는 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 50대들은 섹스를 전혀 스킨십의 연장선에서 생각하지 않고 있고, 20대들은 조금 낫긴 하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섹스리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두 사람이 평소에 작은 스킨십을 많이 해야 한다. 걸을 때 손을 잡고, 처음 만났을 때 가벼운 포옹이나 뽀뽀 정도를 하는 게 일상화되어있다면, TV를 보거나 데이트를 할 때도 소소한 스킨십들을 익숙하게 한다면 사실 섹스리스 문제의 상당 부분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자. 평소에 키스는커녕 뽀뽀나 포옹도 하지 않다가, 아니 걸을 때 손조차 잡지 않던 두 사람이 어떻게 스킨십으로 마음을, 사랑을 상대에게 표현을 할 수 있겠나? 그건 마치 스키를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사람이 고급자 코스에서 슬로프를 완벽하게 타고 내려오기를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달리기 위해서는 걸음마부터 해야 하듯이, 어떤 공부나 운동도 기초와 기본이 되어 있어야 더 높은 수준에 이를 수 있듯이 스킨십도 소소하고 작은, 개방된 공간에서도 할 수 있는 수준의 스킨십을 자주 해야 그 이상의 스킨십들도 자연스럽게, 사랑의 표현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
'섹스'만 분리해서 다루는 콘텐츠들, 그중에서도 특히 그것을 엔터테인먼트적으로 다루는 콘텐츠들이 위험한 것은 그 콘텐츠들은 섹스나 스킨십을 '자극' 중심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물론, 섹스와 스킨십은 유희적이고 쾌락적인 측면이 있다. 그런데 그건 섹스와 스킨십하는 것이 편하고 익숙한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스키를 탈 때 고급자 코스를 이미 어느 정도 타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속도감도 더 느끼고 재미있게 탈 수 있는 지를 가르쳐 주는 건 의미가 있지만 초급자 코스도 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줘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그런 이야기는 섹스와 스킨십이 불편하거나 싫은 사람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콘텐츠들은 도움이 안 되는 것을 넘어서 상대를 유희와 쾌락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섹스와 스킨십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이것 봐, 네가 이상한 거야'라고 주장하며 섹스와 스킨십을 강요할 수 있는 근거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고, 바람직하지 않다.
섹스는 물론이고 작은 스킨십들도 가능하면 상대의 명시적인, 최소한 묵시적인 동의가 있을 때 이뤄져야 한다. 이는 스킨십은 철저히 '남의 몸'에 나의 몸을 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 한 번이라도 동의가 없이 불편함을 느끼는 형태의 스킨십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트라우마에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시달릴 수 있다는 사실은 스킨십을 강요하는 건 상대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스킨십과 관련해서는 지금까지도 미안함이 남아있는 경험이 있다. 연애를 시작하고 가벼운 스킨십을 했을 때 그 친구가 목석 같이 굳어있는 것을 느끼고 왜 그런지를 물어봤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는 과거에 스킨십과 관련해서 좋지 않은 경험과 기억들이 있었더라. 거기까지는 이해가 됐다. 그런데 내가 혼란스러웠던 것은 그 친구가 본인은 스킨십을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그 과정을 즐기지도 못하면서 '남자들은 이런 거 좋아하잖아'라면서 나에게는 공개된 공간에서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는 스킨십을 시도하려 했단 것이다. 나도 당시에 굉장히 힘든 상황에 있었다 보니 그 친구의 아픔과 상처가 회복되기를 기다려주지 못하겠어서 결국 이별을 했는데, 헤어진 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에게는 미안함이 있고 그 친구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온다.
성추행이나 성폭행 같은 행위는, 아니 그렇게 강제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상대가 싫다는 것을 집요하게 설득에 설득을 해서 하게 되는 스킨십은 가해자는 '별 것 아니다'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상대는 그로 인해 평생 감당하기도, 회복하기도 힘든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이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의 몸을 대할 때는 상대의 마음을 대한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첫 성경험의 연령대가 20대는 21살일 정도로 낮아졌다고 하는데, 첫 경험이 그보다 늦은 사람들도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수는 청소년기에 첫 경험을 본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수치가 우려되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은 여전히 일상에서 가벼운 스킨십을 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첫 경험이 빨라진다는 것은 그만큼 섹스를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과 통로로 사용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자극을 통해 오로지 쾌락과 유희의 도구로만 경험하는 경우가 많아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성적으로 개방적이다'라고 여기는 국가들에서는 '누구와도 쉽게 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성적으로 개방적인 국가의 사람들은 스킨십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더 편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뿐이지 오로지 쾌락적이고 유희적인 스킨십을 자주, 많이 하는 것은 아니다. 성적으로 억압되고 보수적인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 건 그만큼 그 사람들이 스킨십과 사람에 대한 이해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물론, 스킨십의 유희적이고 쾌락적인 면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스킨십에서 그런 부분은 당장 감각적으로 와닿는 측면이라는 점에서 음식으로 따지면 '맛'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은 최대한 맛있는 게 좋듯이 스킨십도 유희적이고 쾌락적인 면을 느끼고 즐기는 건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이 모두 몸에 좋지는 않듯이, 지금 당장 본인이 쾌락을 즐긴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장기적으로 본인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해진 사람은 자극적인 양념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의 맛은 느낄 수 없듯이 자극적인 스킨십에 익숙해진 사람은 소소하고 약한 자극의 스킨십이 줄 수 있는 선물들을 느낄 수가 없다.
성적으로 굉장히 자유롭게 지냈던 한 지인은 어느 날 술자리에서 갑자기 고해성사하듯이 그러더라. 이제는 누구와 자도 아무런 느낌도 없다고. 그 지인은 본인이 워낙 자유분방하게 살다 보니 성병을 어디에서, 어떻게 걸릴지 몰라서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을 정도로 자유롭게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를 갖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고해성사를 하듯이 말하고 나서 그 지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랫동안 알았던 나이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 그전까지 그 지인이 만났던 사람들이 대부분 10살 이상 차이가 났었기 때문에 모두가 놀랐는데, 그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쾌락과 유희가 줄 수 있는 행복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스킨십은 사랑의 표현이어야 한다. 스킨십은 말로 상대에게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상대를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전할 수 있는 굉장히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며 좋은 창구다. 그렇기 때문에 스킨십은 아름다운 것이고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대전제는 두 사람이 모두 스킨십을 그렇게 표현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단 것이다. 상대가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스킨십을 강요하는 것은 상대를 자신의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혼전'순결'이란 표현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스킨십을 한다고, 섹스를 한다고 누군가가 더러워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결혼 전의 섹스'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분명히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 있다. 결혼 전에는 섹스를 하면 안 된다는 게 아니다. 결혼 전의 섹스의 경우, 극히 낮은 확률이라고 할지라도 임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해야 한다. 피임을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콘돔의 피임 실패율이 2%, 질외사정이 4%인 것은 '제대로 했을 경우'를 전제로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피임도구를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은 대부분의 경우 그보다 높다. 그리고 그 확률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그 확률이 적중을 하면 생명체는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성관계를 가질 때는 그 부분에 대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아이가 생기면 지우면 되잖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생명윤리 등은 복잡한 문제니 일단 그냥 넘긴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낙태를 하는 것이 낙태를 한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낙태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을 정도로 낙태는 낙태를 한 여성의 심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연구들에 의하면 여성들이 낙태한 후에는 죄의식, 수치감, 불안감, 무력감, 슬픔과 양심의 가책, 주체할 수 없는 울음, 분노, 비통함과 증오, 불신감과 배신감, 자신감의 저하, 아기나 어린이 혹은 임신과 관계된 것들을 피하거나 미래의 임신에 대한 두려움, 대체용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열망, 낙태 경험이 자꾸 떠오름, 악몽이나 수면 장애, 우울증, 성적 장애, 식습관 장애, 자기 파괴적인 행동, 가학적 관계 혹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문제, 자살에 대한 생각이나 충동 등의 후유증을 경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낙태를 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한 여성의 인생을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낙태의 합법화'를 논하기 전에 원하지 않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내가 여사친들과의 대화를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원하지 않는 임신에 대한 여성들의 두려움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내 여사친 중에는 결혼을 했고 항상 남편과 피임을 하고 관계를 함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피임을 위해 남편 몰래 피임약을 복용한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들은 이야기들에 의하면 대부분 여성들이 어느 순간엔가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지긴 하지만 첫 경험 후에는 '임신이 되지 않을까' 싶은 두려운 마음을 꽤나 오랫동안 갖고 있게 되더라. 왜 그렇지 않겠나? 아이가 생기면 그 후에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 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두려움이 몰려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남자들이 그런 여성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수치심이나 민망함 때문에 그런 대화를 공개적으로 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독과 약은 한 끗 차이다. 같은 원료도 잘못 쓰면 독이 되지만 제대로 쓰면 질병을 치유하는 약이 될 수 있다. 스킨십 역시 마찬가지다. 스킨십은 잘하면 두 사람이 마음을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통로도 되고, 즐거움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오락도 될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상대의 인생은 물론이고 본인의 인생도 나락으로 보낼 수 있다. 사랑은 스킨십을 통해 전달될 수 있지만, 모든 스킨십이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지는 않다.
이 시리즈에서 앞에서 설명했듯이 사랑은 '상대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상대를 정말 소중하게 여긴다면, 상대의 의사에 반한 스킨십은 절대로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지 강요된 스킨십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랑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