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학개론. 19화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경제적으로 발전된 국가일수록 출산율이 낮은 편인데 우리나라는 OECD에서도 출산율이 가장 낮은 편이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서 낳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출산은 물론이고 결혼도 잘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작지 않게 작용한다. 결혼의 경우 본인의 일과 사회생활에 더 비중을 두기 때문에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지만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출산의 경우 44.7%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아서'라고 대답할 정도로 경제적인 이유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반대로 얘기하면 사람들은 그만큼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단 것을 의미한다.
이 와중에 '국가를 위해서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전근대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나라 국회에 있다는 것은 엄청난 비극이다. 물론, 인구가 많은 것 자체가 국가의 경쟁력에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개인의 자유를 명시적으로 보장하는, 국가가 개인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국회의원이 할 말은 아니다. 국가가 정말 필요하다면 국가가 개인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현실적인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정치하고,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정말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를 둘 이상 낳은 사람에게는 최소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는 집도 제공하고 고등학교 교육까지 모두 무상으로 시켜줄 것이다. 그건 '복지'가 아니라 '투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매우, 매우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이 힘들다'라는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자. 기성세대들 중에 '우리 떼는...'이라면서 요즘 세대들이 아이를 너무 곱게, 많은 돈을 들여서 키우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다면서 기저귀를 빨아서 쓰고, 아이에게 이유식이 아니라 모유를 수유하고, 학원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이야기는 일단 무시하고 넘어가자. 그 시대에는 그랬을 수 있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시대가 바뀜에 따라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눈높이와 가치관도 바뀌기 때문에 아이를 경제적인 이유로 낳지 않는 것을 과거의 경험을 근거로 비판해서는 안된다.
다만,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과정에 돈을 많이 쓰는 것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앉아서 본인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 본인이 8살 이전에 입었던 옷들 중에 기억나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대부분 사람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의 경우 내가 태어나고 나서 너무 왜소해져서 걱정이 되어 온갖 약을 사다 먹였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기억이 전혀 없다.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2-3살 때 해외지사에 계셨던 아버지께서 한국에 돌아오셨을 때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무서워서 어머니 뒤로 숨은 것인데, 당시는 물론이고 그 후로도 유치원 다닐 때까지 내가 무슨 옷을 입고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에 대한 기억은 인상적인 기억들 몇 가지만 있다.
오늘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해주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본인 만족을 위한 경우가 많다. 본인이 갖지 못했던 것을 아이는 갖게 하기 위해서 주거나, 본인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비싼 것으로 무엇인가를 해주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게 반드시 아이를 위해 좋은 것은 아니다.
영어유치원을 예로 들어보자. 나 같은 경우 아버지께서 해외지사에 나가셔서 해외에서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1학년까지 다녔고, 그 후에도 한 번의 해외생활을 해서 영어는 편하게 하는 편이다. 하지만 난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와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모두 한국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혼란을 겪고 힘들어해야만 한다. 어린 시절에 완전히 다른 문화를 오가며 사는 경험은 아이에게 과부하를 줄 수밖에 없는데, 그걸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모르고 '내가 이렇게 좋은 것을 줬는데'란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다.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 과정을 이겨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과정에는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고, 그중에는 엇나가서 인생이 망가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내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사실 물질적으로 뭔가를 해주고 어떤 프로그램에 아이를 넣는 것보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 중에 유독 선명한 기억들 중에 부모님의 부부 싸움하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오간 이야기들과 부모님이 나를 혼낼 때 했던 말들이 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은 지금도 생생한데, 이는 백지 같은 아이에게 부모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를 잘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게는 사실 '좋은 부모'가 존재하는 것이 돈으로 무엇을 해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가난하게 자랐어도 부모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서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은 아이를 잘 키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는 그런 사람들은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의 무게감과 책임감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무게감을 알고 책임감이 큰 사람은 아이를 잘 기를 것이다. 아이를 절대로 낳아서는 안 되는 사람들은 반대로 '애는 낳아서 키우면 알아서 크겠지'라고 나이브하게 생각하고 준비는 하지 않으면서 아이는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고 돌아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는 돈이 없는 게 힘들 것 같다'라고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아이가 있는 것이 더 열심히 일할 유인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를 예로 들어보자. 나는 잘하면 정말 잘 될 수 있는 카드를 몇 가지 가지고 있다. 내가 미친 듯이 일을 하면, 일하는데 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운이 좋으면 나는 꽤나 많은 돈과 명예를 쥐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과정을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지금 정도 수준으로 사는 게 더 행복하단 것이다. 싱글이고 부모님 소유의 집에서 동생과 둘이 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사실 월 300만 원 정도를 벌면 내 기준에서는 꽤나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일을 더 하고 싶지는 않은데, 문제는 일을 더 하지 않으면 지금 정도의 수입이 유지될 수 없단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는 일을 더 열심히 할 유인이 필요한데, 싱글인 내겐 그런 것이 없다.
만약 내가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면 어떨까? 꽤나 달랐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내가 돈을 벌면 가족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가정이 있는 사람들 중에 '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한다'라면서 마치 본인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일과 일에서 돌아오는 성취가 줄 수 있는 만족감은 매우, 극히 제한적이고 취미 등을 통해 돌아오는 만족과 행복도 지속 가능하지는 않다. 일을 좋아도 하고 못하는 편은 아닌 나도 그렇더라. 그런 사람들은 본인이 가족 '때문에'일한 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족 '덕분에' 일할 유인이 생기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가족은 우리에게 더 열심히 살 이유가 된다. 이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서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켰을 때보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고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에서 오는 만족과 행복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행복하다는 말은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그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그런데 가족은 내가 항상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대상이 되기 때문에 가족이 나를 이용하려 들거나 해를 가하려 들지만 않는다면 나의 행복 통로가 되어줄 수 있다.
그중에 가장 확실한 행복 통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아이들이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어른들은 상대를 이용하려고 들 때도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요즘 아이들이 아무리 '까졌다'라고 해도, 그들이 아무리 세상을 예전 아이들보다 많이 한다고 해도 어른들보다는 순수하고 순진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서 무엇인가에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경향이 훨씬 더 강하다.
결혼도 못했고 아이도 없기 때문에 아이가 부모에게 주는 선물이 어떤 것인지를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그걸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아는 것은 어머니께 큰 소리를 내며 대든 후에 화해하는 과정에서 들었던 어머니의 한 마디 때문이다. 어머니께서는 내게 '네가 나에게 이렇게 대해도 내가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내게 줬던 행복과 기쁨이 훨씬 컸기 때문'이라고 하시더라. 나는 싹싹하거나 어머니께 특별히 잘하는 아들은 아니다. 어머니는 내게 '유별나다'라는 말도 꽤나 자주 하셨을 정도로 나는 주관이 강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머니께 드린 기쁨과 행복이 훨씬 크다니... 그건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세상의 이야기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런 간접경험은 지인들에게서도 똑같이 하게 된다. 내가 이 이야기를 아이가 있는 지인들에게 말하면 그들은 모두 하나 같이 '아이가 아직 어려서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다'라고 하더라. 그리고 내 주위에서 절대로 아이는 갖지 않겠다던 형, 남자애가 태어나면 무조건 강하게만 키우겠다던 형, 아이를 갖기는커녕 결혼도 할 생각이 없었던 형들이 아이를 가진 후에 내게 해주는 말들은 충격적일 정도였다. 그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아이를 갖지 않을 것이라면 결혼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힘들고, 싱글로 살 때가 그립긴 하지만 아이가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게 역전된단 얘기를 나는 결혼한 지인들에게 몇 년째 듣고 있다.
내가 그들의 감정과 경험을 알 수는 없지만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아이들은 어릴수록 부모가 자신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굉장히 크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직 세상 풍파를 경험하면서 상처와 아픔들을 많이 경험하지는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순수한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리면 어릴수록 부모에게 표현하는 사랑의 총량이 많을 수밖에 없고, 거칠고 험한 세상에서 수많은 상처와 아픔을 받으며 살아온 성인인 부모는 그런 사랑을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들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선물이 되어주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고, 부모들 중에 자신이 아이에게 무엇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큰 착각이 아닐까 싶다. 부모들은 사실 반대로 아이들이 주는 사랑 덕분에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다.
물론,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은 힘들고 많은 책임감을 갖게 된다. 그런데 세상에는 대가 없이 갖게 되는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대가를 치르더라도 더 큰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대가를 치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결혼은 물론이고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오는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기혼자들이 워낙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는 지인들에게 '행복하다'는 말을 많이 하나? 아니면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유의 정서상 좋은 얘기, 행복한 얘기보다 힘든 얘기나 다른 사람 험담을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한다. 이는 아마도 좋은 얘기, 힘든 얘기를 하면 '자랑한다'면서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 비춰봤을 때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한 부분도 사실은 좋은 부분보다는 힘든 부분들이 훨씬 더 부각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그렇다면 아이가 부모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가?'라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아이가 부모에게 사랑과 기쁨을 주고, 부모가 아이를 정말 사랑으로 양육한다면 그 관계를 부모가 아이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용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아이가 그렇게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면 그 아이는 살아가면서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라는 생각을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와 아이의 건강한 관계'는 일차적으로는 부모에게 큰 선물을 주지만, 동시에 아이에게도 행복과 사랑을 주는 관계라고 해석해야지 그걸 '아이를 도구로 이용한다'라고 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 '세상이 악하고 힘들기 때문에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는 것이 죄'라고 말하는 사람도 만난 적이 있는데, 사실 세상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자아를 가지고 태어나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지옥일 수도 있고 천국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망가져 있지만 그 안에서도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이는 어떤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에 따라 같은 세상도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 힘든 세상에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 부모가 충분히 사랑을 주고, 아이에게 좋은 대화 상대가 되어준다면 그 아이는 이 험한 속에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내게 그런 주장들은 사실 어떻게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정당화시키려는 시도들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런 이유들보다는 차라리 솔직하게 경제적인 이유나 본인이 자신이 없다고 하는 게 멋있게 보인다.
결혼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듯이 아이를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갖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부부들도 내 주위에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런 부부들만큼이나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을 넘어 지루해지고, 인생에 새로움을 찾다가 외도를 하거나 상대에게 소홀히 해서 갈라서거나 결혼하지 않은 것만 못한 부부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그런데 아이는 자라남에 따라 가정에 새로움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고, 아이들 덕분에 부부관계가 회복되는 경우에 대한 이야기들도 종종 접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갖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시술이나 수술을 해서라도 아이를 가져야만 한단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어쩌다 보니 지인 두 사람이 동시에 시술을 하는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는데, 여성의 몸을 임신할 수 있는 상태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착상을 시도하는 과정에는 엄청난 고통이 따르더라. 본인이 그 과정을 겪겠다면 축복하고 그 과정을 위해 기도하겠지만 누구도 그 과정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인생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가질 수도 있고, 갖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아이를 갖는 것이 줄 수 있는 선물이 그 과정에서 치르는 대가보다 훨씬 크고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이야기만 듣고, 본인이 경험해보지도 않고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