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보는 세상. 15편.
세상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지속 가능한 안정과 행복'일 것이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이 자신을 정말 행복하게 하는 지를 모르다 보니 이 두 가지를 잡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안정'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지점들이 많은 듯하다.
'안정'은 크게 '현실적인 상황의 안정'과 '심리적 안정'으로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서 '현실적인 상황의 안정'은 많은 경우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된다. 그리고 이 문제가 사람들에게 가장 분명하게 와닿는 것은 역시나 '결혼 시장'에서다.
분명 '남녀평등'이 강조되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경제적인 부분이 남자들에게 많이 요구되는 듯하다. 여자분들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없지는 않지만 연애는 물론이고 결혼과 관련해서는 대부분 사람들은 '남자의 경제적 안정'을 중요시한다.
반대로 남자들은 '여자의 경제적 안정'을 바라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그 이면에는 '남자가 가정의 가장이고 책임을 져야지'라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남자들에게 '돈 잘 버는 여자 만나서 집안일하면서 살래? 아니면 집안일을 다 하는 전업주부와 살래?'라고 묻는다면 사당수가 전자보다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남자들이 '여자도 경제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물가와 집값을 고려했을 때 본인이 혼자 벌어서 책임질 자신이 없기 때문이지 여자의 경제적 안정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나처럼 집이 없고, 아직 일도 안정되지 않은 마흔의 프리랜서는 소개팅 시장에서 선호되는 상대는 아니다. 반대로 내 또래라고 해도 집이 있고, 회사를 다니거나 사업이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결혼시장에서 여전히 상대를 만나 볼 기회가 적지 않다. '안정'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소개팅을 잘 부탁하지도 않고, 누군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냐고 물어보면 내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해 드리고 그래도 상대가 만나보겠다고 하면 만나보겠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이렇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처음 이런 현실을 직면했을 때는 '회사에 가야 하나?'를 고민했을 때도 있었다. 기회는 있었으니까.
하지만 회사원의 아들로 태어나 회사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했던 내가 아는 한 회사원은 어떤 경우에도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회사원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특히 나이가 들수록 쉽게 정리된다는 것을 눈앞에서도, 회사 안에서도 봤다 보니 내게 회사원은 절대 '안정적인 삶'이 아니었다. 회사는 구조적으로 '그만두지 않을 수준의 돈'만 주는 곳일 수밖에 없고, 극소수를 제외하면 늦어도 50대 중반에는 회사에 나가야 하는데 평균 수명은 80이 넘어가고 있지 않나? 회사 안에서 20-30년을 지나고 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이 전 세계 1위라는 건 그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부모님 세대는 그나마 열심히 모으고 아끼면 집을 살 수 있었지만 20-30대는 금수저가 아닌 이상 돈을 모아서 집을 산다는 것은 꿈과 같은 이야기다. 지난 몇 년간 영끌해서 집을 산 회사원들은 본인이 평생 모을 수 없는 돈을 대출받아 집을 사야 했을 것이다.
내겐 그런 삶이 '안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하면 죽기 전까지 일할 수 있을지, 내가 일하는 게 경력으로 쌓이고 대체 불가능해질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그에 맞춰서 방향성을 잡았다. 그렇다 보니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에는 어렵고, 힘들면서도 일이 없을 때도 있었지만 버티고 버티다 보니 올해 하반기부터는 조금씩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이다.
경제적인 안정은 지금 수입이 어느 정도이고 자산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이는 지금의 수입과 자산은 언제든지 어떻게든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인 안정은 내가 일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이 나를 쫓아오는 구조가 만들어졌을 때 찾아온다.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수 십, 수 백억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닌 이상 그럴 수 있는 시스템을 아무리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도 10-20년 후에는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그 체계가 절대적으로 안정적일 수는 없다. 누가 모토롤라, 소니, 아이와 같은 회사들이 지금처럼 쇄락의 길을 걸을 줄 알았겠나...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 안정은 내가 다른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신뢰하고 돈을 주면서 일을 줄 수 있는, 그리고 그때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능력은 짧은 기간 안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능력과 환경, 관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할수록 좋다. 지금 당장은 돈이 되지 않더라도 시장이 있거나 생길 것으로 보인다면, 그 시장에 필요한 능력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 안정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심리적 안정'의 경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결혼 자체가 심리적 안정을 줄 것을 기대하거나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주면, 자신이 의지할 수 있으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이 역시 착각이다.
물론, 그러한 환경적인 변화가 심리적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절대적이지는 않다. 정말로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는 환경이나 사람도 그것을 그렇게 수용할 수 있게 되어야 안정될 수 있다. 심리적 안정의 시작은 '나'이다. 우리는 상황은 변한 게 없어도 시선의 방향만 돌려도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 경험을 종종 하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심리적 안정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무조건 비판하거나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결혼했을 때나 건강한 연애를 할 때 심리적 안정을 받는 것은 이 세상에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인간은 절대로 혼자서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관계를 통해서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다만, 그러할 때도 [의존]과 [의지]는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의존적인 것은 상대에게 존속되어 상대 없이는 독립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인 반면, 의지하는 것은 본인이 힘들 때 잠시 기대어 힘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의지하지 않으려는 것도 사실은 자아가 건강한 상태는 아닌 것이고, 자아가 건강한 사람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의지할 줄 안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리고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정신의학과나 심리상담을 통해서 심리적인 안정을 찾는 것을 꺼려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의 안정만 갖춰진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행복한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또 하루, 하루에도 소소한 행복이 있어야 하는 게 아이러니다.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의 현실적인 상황의 불안과 심리적 불안은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인생은 절대 행복하고 장밋빛으로만 가득할 수 없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 당연한 것은 없다. 이 사실만 알고 받아들일 수 있어도 우리는 사실 꽤나 행복하고 감사해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