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선택을 ‘덜’ 하는 법

마흔에 보는 세상. 17편.

by Simon de Cyrene

책이나 영상 중에 믿고 거르면 되는 제목들이 있다. '성공하는 법'에 대한 내용이나 '빨리' 뭔가를 이루게 해 준다는 내용을 다루는 콘텐츠는 믿고 거르면 된다. 이는 성공과 실패에도 답이나 공식은 없고, 성공은 절대로 빨리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당장은 빨리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런 성공들 중 대부분은 기초나 기반이 부실하다 보니 그만큼 빨리 망할 확률이 높아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성공하는 법'은 사람에 따라서, 어느 분야에서의 성공이냐에 따라, 또 어떤 시기와 환경에서의 성공인지에 따라 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성공하는 비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는 맞는 방법도 본인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고, 성공을 하려는 영역이 어느 정도의 블루오션이나 레드오션이냐에 따라 접근 방법이 달라져야 하며, 어떤 성공을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원하는지에 따라 접근법이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다 똑같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확률도 매우 높기 때문에 '성공하는 확률'을 특정 분야에서 높이는 방법들은 있을 수 있지만 누군가의 성공하는 법이 본인에게도 유효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성공하는 법은 알 수 없지만 '잘못된 선택을 덜 하는 법'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 "내가 겨우 잘못된 선택을 '안'하는 것도 아니고 '덜'하기 위한 법을 알아야 하냐?"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의문을 갖는다면 이렇게 질문을 하고 싶다. '당신은 10%의 확률로 행복할 수 있는 선택과 90%의 확률로 불행하지는 않을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나?'


하나의 선택을 놓고 이 질문을 던지면 전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수많은 선택이 쌓여가면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우리가 계속 10%의 확률로 가는 선택을 하다 보면 우리가 행복할 확률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고, 90%의 확률로 불행하지는 않을 수 있는 선택을 한다면 불행하지는 않을 확률은 그보다는 천천히 줄어들 것이다. 이 사실을 염두에 뒀을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렇게 질문하는 게 사실 모순적이기는 하다. 이는 우리가 10%의 확률로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한다고 해도 그게 현실화되면 확률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택을 할 때 10%의 확률에 대한 확신을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한 노력을 해서 그 확률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덜 불행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확률도 높을 것이다.


그런 비법이 있냐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비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건 '선택을 하기 전에 최대한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이다. 뭐라고?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무것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나... 싶은 마음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은 의심의 끝이 있단 것을 경험하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의심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무엇인가를 놓고 의심하고, 의심하면서 체크리스트를 줄여나가다 보면 의심하는 대상을 놓고 더 이상 의심할 지점이 없단 것을 알게 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서 본인이 의심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 목록을 기억하거나 기록해 놓다 보면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선택에서 실수를 확률을 낮추고 잘못된 선택을 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단 것이다. '모든 것'에는 본인도 포함된다. 우리는 선택을 하거나 주장을 하기 전에 '내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게 아니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어'라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그러한 전제 하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상황을 분석하다 보면 우리는 점점 더 객관화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맥락에서 왜 특정한 방향으로 생각하는 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라며 받아넘기거나 그 생각에 대해 감정이 아니라 논리로 반박할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놀랍게도 상대에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인상을 남기게 될 수도 있다.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 '의심하는 법'을 적용해 보자. 연애는 대부분 감정에서 시작된다. 그래야 한다. 연애할 때 문제는 대부분 두 사람이 감정에 빠져 보이지 않았던 상대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생기는데, 그때 우리는 내가 감정에 빠져서 봤던 상대가 정말 상대의 모습인지를 의심하고, 상대가 한 행동에 대해 내가 보이는 모습이 정말 상대만 잘못한 것 때문인지를 의심하고, 상대의 말도 의심하고, 상대가 무의식 중에 한 행동을 돌이켜보다 보면 우리는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이러한 과정을 반복할수록 우리 안에는 데이터가 쌓이게 되고, 그 데이터가 쌓이다 보면 결혼을 해도 될지 여부에 대한 결론은 도출되게 되어 있다.


결혼을 해야 하는지,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거나 하지 말라는 말도, 아이를 낳거나 낳지 말라고 하는 말도 자신의 마음대로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본인의 생각과 마음을 의심하며 자신과 다른 생각과 마음을 가진 사람의 말을 곱씹다 보면 우리는 조금 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나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결혼도, 아이를 낳는 것도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런 결론에 이른 것은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의 경험에만 기반해서 '자신의 배우자'에만 해당되는 경험을 기반으로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허점이 있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거나 낳지 말라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아이를 낳고 길러 본 경험이 없다는 맹점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말을 의심하면서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고,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좋은 부모들의 말도 들어봤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본인이 본인을 잘 알고, 서로 맞춰갈 수 있을 정도의 다름이 있는 사람과 가정을 꾸려서 서로 노력하며 살 수 있다면 결혼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경우 낳아서 기르는 과정에 힘도 들고 금전적인 부담도 들지만 아이가 있기 때문에 누리게 되는 행복과 기쁨도 있고 많은 경우 사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아이를 싫어하던 사람들 중에 아이가 생긴 후에는 아이를 좋아하게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사람들은 책을 읽으라고 하면서 책을 읽는 게 무조건 좋은 것처럼 말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책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책을 읽으면서도 그 내용과 저자,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 안에 드는 생각과 마음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내용은 잘못된 것으로, 맞는 것은 무조건 옳은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책은 저자의 주관과 시선, 그리고 현실에서의 사실과 현상들로 구성되는 데 후자의 경우 의심할 필요가 없지만 전자는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고전'이라고 하는 책들은 우상시하고 무조건 좋은 것을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람들은 우리처럼 많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없는 시대에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들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전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처리해야 하는 정보가 너무 많다 보니 깊게 고민하고 분석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는 것과 달리 고전작품들이 쓰여진 시대에는 정보가 많지 않다 보니 고전에는 생각과 시선, 분석에 깊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전을 읽을 때 그러한 배경을 고려하면서 저자의 시선과 주장을 의심해야 그 내용 중 유용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취사선택할 수 있다. 유명한 사람의 생각이라고 해서 그게 다 맞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공식은 모든 것에 적용된다. 사업을 하기 전에 그 사업이 어느 정도로 커질 수 있는 지를 의심하고, 중고차를 사기 전에도 딜러나 전 차주의 말을 의심하고, 그러한 의심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다 보면 그 의심의 목록은 어디에 선가는 멈추게 되어 있다.


그렇게 의심하고, 의심하더라도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이는 우리의 '의심하는 능력'도 경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고려하지 못한 요소나 지점들이 있을 수도 있고, 아무리 신중하게 의심하며 선택을 했어도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그 선택이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실수나 실패들을 바탕으로 조금 더 세밀하고 정교하게 의심하고, 의심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다 보면 우리는 실수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확률을 낮출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의심해야 하는 말은 '나 믿지?'라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그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상대가 본인을 믿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말로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를 믿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 말을 굳이 상대에게 하지 않지 않을까?


의심을 끝없이, 무한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의심만 하게 되면 세상과 사람이 무서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의심은 철저하게 근거를 가지고, 사실을 확인해 나가면서 해야 하고 더 이상 의심할 지점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면 그 시점에는 과감하게 결정을 할 수 있어야 우리는 건설적인 선택을 해 나갈 수 있다.


근거도 없이 감정적으로 무한히 의심하는 것은 병이다. 하지만 아직 충분한 정보와 데이터가 쌓이지 않은 것에 대해 의심하며 돌다리를 두드리는 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잘못된 선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자세다. '오빠 믿지?'라는 말에는 과감히 '내가 널 어떻게, 무슨 근거로 믿을 수 있냐?'라고 되물어도 된다. 상대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 질문에 화를 낼 것이고,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면 상대는 믿을 수 있는 근거를 댈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