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도 세상을 보고 있을까

마흔에 보는 세상. 19편.

by Simon de Cyrene

우선,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글을 빨리 발행해서 혹시라도 알림을 켜 놨다가 후회하신 분들께 죄송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다. 10개 정도로 시리즈를 10일 안에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생각하고, 쓰다 보니 쓸 내용이 많아졌고, 개인적으로는 밀려 있는 일들도 너무 많아서 서두르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빈틈들도 보이고, 정제되지 않은 내용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꽤 오랫동안, 꽤 열심히 달려왔다 보니 지치는 면도 있고, 내년 2월까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내년 2월까지는 기획하고, 목차를 쓰면서 글을 쓰는 과정은 쉬려고 한다. 중간에 한 번씩 여러 생각이 들면 글을 쓸 수는 있겠지만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순수하게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을 쓰기에는 지금 내게 생계와 커리어를 위해 일로, 미래에 대한 투자로 써야 할 글이 너무 많다.


우연히, 감사하게도(?) 카카오 서버가 꺼지면서 이 시리즈를 쓰게 되었지만, 그리고 구독자가 적지 않게 떨어져 나갈 정도로 어떤 분들에게는 귀찮게 느껴질 수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으로 마흔을 맞이하여 지금 내가 보는 세상과 나의 시선을 정리할 수 있어서 지난 8-9일 정도의 시간이 좋고, 감사했다. 그러면서 문득, 10년 후, 오십에는 나의 시선과 가치관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지금 내가 이 시리즈에서 쓴 생각과 시선, 가치관들이 10년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이 시리즈에서 썼듯이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큰 줄기는 유지되더라도 디테일들은 나의 40대를 통해 다듬어지기를 기대한다.


나의 20대는 찬란하고 화려했지만, 나의 30대는 어둡고 고통스럽기만 했다. 내가 통상적인 기준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것도, 가정을 꾸리지 못한 것도 실패만 가득했던 나의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30대의 결과물이다. 한창 세상을 좀 알고, 놀고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30대에 나는 방구석에 박혀 책만 봐야 했다 보니 그랬던 나의 선택이 후회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 터널을 이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아직 빛 속에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이제는 저 멀리 조그만 빛줄기가 보이는 정도의 위치에 와 보니 그 기나긴 터널을 지나온 것이 감사하다. 진심이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내가 어떤 모습일지를 과장 없이 수 백번은 더 돌아봤는데, 그 시간을 지나온 지금의 내 모습이 그러지 않았을 경우의 내 모습보다 좋고, 아직 가정을 꾸리지 못한 게 다행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터널에 들어가기를 추천하거나 내가 다시 그 터널에 들어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터널은,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면 들어가지 않는 게 낫다.


그래서 나의 40대는 조금 더 찬란하기를 바란다.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 오르막도 있고, 때로는 구덩이에도 빠질 수 있지만 조금 더 밝고 아름다운 길을 걷기를 바란다. 돌이켜 보면 이 시리즈는 그렇게 새로운 길을 걷기를 바라며, 그런 길을 어떤 마음을 가지고 걸어야 할지를 스스로 정리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마흔이 되어 엄청난 깨달음을 얻거나 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20대와 30대의 내가 몰랐던 것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그건 세상에 어느 것도 당연한 것은 없단 것이다. 내가 누린 것, 가진 것,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 중 어느 하나도 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것도 손에 쥘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고, 알기 때문에 어느 것도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오십이 되어서도 세상을 보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일은 없지만, 이 땅에 살아서 숨 쉬고 오늘처럼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컴퓨터 앞에서 글이나 쓰고 있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오십이 되었을 때의 목표를 세우진 않는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조심하고, 신중하게 지내다 보면 운이 좋으면 오십에도 세상을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러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보는 세상은 지금과 어떻게 같고, 또 다를 지도 기대되며 설렌다. 이는 세상은 생각보다 변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른 살에 내가 보던 세상과 지금 내가 보는 세상은 굉장히 다르기 때문이다.


정말 힘들었던 시절에 죽음은 부정적으로 무상했지만, 그 연장선에 서 있는 지금은 죽음을 다르게 묵상한다. 이제는 죽음을 묵상할 때면 내가 숨 쉬고 있는 것조차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더라.


예전 같지 않은 몸과 마음에 아쉽지만, 나는 서른의 나 보다는 지금의 내가 더 좋다. 오십에도 그럴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 시리즈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