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보는 세상. 14편.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을 무조건, 이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때부터 그런 문화가 싫었고, 그래서 SKY에는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자기 색이 분명한 한 지방대에 진학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우리나라에서는 SKY는 나와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며 재수를 권하셨고, 그렇게 재수를 해서 대학을 갔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편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순순히 재수를 선택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두 분이 모두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매우 잘하셔서 좋은 고등학교를 나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두 분 모두 서울대만 목표로 하셨다 재수할 때도 실패하셨던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단한 효자는 아니고, 지금이라면 조금 다르게 반응했을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두 분의 꿈을 이뤄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더.
정말 중요한 건 두 번째 이유인데, 나는 아버지께서 SKY를 나오지 않으심으로 인해 특정 대학 출신들에게 사회생활에서 손해를 보고 계신단 느낌을 받았었다. 일도 잘하시고, 대기업에서 정년까지 채우셨지만 아버지는 여러 가지 회사 내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임원이 되지 못하셨었다. 그런 상황까지 벌어지기 전이긴 했지만 특정 대학 출신들이 서로 끌어주는 것에 대해 아버지께서 쉽지 않아 하셨던 기억이 있었고, 그래서 단호하게 재수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크게 대들지 않고 재수를 택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대학에 가야 할까?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다고, 학벌을 중심으로 차별을 하는 건 잘못되었다며 멀쩡하게 입학한 대학을 자퇴하는 사람들을 가끔씩 직간접적으로 접한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그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는데, 30대 중반 정도 들어선 이후부터는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물론, [학벌만]으로 차별을 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객관적인 능력'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환상에 불과하더라. 누가 사회생활, 특히 회사생활을 잘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지원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을 편집해서 온통 자화자찬을 자기소개서에 늘어놓고, 대부분 회사들은 15분에서 30분 정도 면접을 보는데 무엇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지원자는 항상 많고 좋은 대학을 졸업했다고 무조건 더 탁월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상 수준의 대학을 졸업했으면 최소한 '바보는 아니겠지'라는 그림은 그려지기 때문에 출신 대학을 의식하지 않기가 힘들다.
이러한 문화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대부분 회사가 학벌을 보는 것을 넘어서 내부 직원들이 지인을 추천할 수 있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내부 직원들이 추천해서 채용이 되면 그 직원에게 보너스를 주는 제도들도 있는데, 이는 그 사람이 페이퍼 상으로 자화자찬하고 포장한 것보다 이미 회사 안에서 잘 생활하고 있는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을 더 신뢰하기 때문에 도입할 수 있는 제도다. 이처럼 누군가를 채용할 때는 그 사람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표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학벌이 어느 정도는 사회생활에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줄 세워서 학벌에 따라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는 듯한 우리나라의 문화는 바뀔 필요가 있다. 이는 좋은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 그 나라의 입시 시스템에는 더 잘 맞는 사람일지는 몰라도 그게 곧 그 사람이 모든 면에서 더 낫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학력과 학벌이 높은 사람일수록 세상을 보는 시야는 더 좁은 경우가 많고, 공감능력도 떨어지는 사람들이 적지는 않다. 이는 아마도 그들은 20대 때까지 큰 실패는 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경험이 다양하지 않다 보니 사고도 유연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학력과 학벌로 사람 자체를 평가하거나 판단하고 줄 세우는 건 매우, 매우 잘못된 문화다.
이런 말을 하는 내게 지인이 '그러면 너는 자식이 생기면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노력 안 할 거야?'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있고 교육시스템 안에서 경쟁하는 게 잘 안 맞고 싫다면 나는 기꺼이 아이가 하겠다고 하는 방향을 밀어주겠다고 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다만, 사회성을 기르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다른 또래들과 어울리는 학교는 다니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에 최소한 고등학교 까지는, 성적과 무관하게 본인이 할 수 있는 한 성실하게 다니고 공부하고 시험도 보라고 할 것이다. 결과가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을 경험하고 성실하게 사는 습관을 익히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하지만 아이가 그렇게 결정하기 전에 냉정한 현실은 말해 줄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학력도, 학벌도, 첫 사회생활도 좋은 곳에서 시작한 편이다. 사람들이 나를 그런 레이블로 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 편인데, 이는 사람들이 내가 졸업한 학교를 듣는 순간 갖는 긍정적인 편견과 부정적인 편견들이 나와 딱 맞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었고, 그래서 누가 물어보기 전에는 굳이 내 학력이나 경력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지금도 누가 물어보기 전에 굳이 먼저 말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우리나라는 워낙 학력과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이다 보니 내가 말하기 전에 상대가 물어보거나 같이 일하는 사람이 나의 이력과 경력을 먼저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나의 이력과 경력을 알기 전에는 나를 함부로 대하고 깔보던 사람이 나의 이력과 경력을 듣고 나를 대하는 말투와 행동, 시선이 180도 바뀌는 것을 굉장히 자주 경험했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과거를 돌아보니 나의 이력은 많은 경우 내게 방패가 되어줘서 사람들이 내게 어렵지 않게 일을 맡기고 신뢰하게 만들어줬더라.
언젠가부터 그런 현실은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이력과 경력을 남을 죽이거나 잘라내고 무시하는 칼로 사용하지 않고, 지금까지 그랬듯이 방어막이 되어주면 그 정도를 감사히 여기며 부담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나의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나는 본인이 좋든, 싫든 현실은 이렇고 바뀌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는 해주고 본인이 선택하게 해 주겠다.
'엘리트'들은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일부 사회적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아서 자신의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을 보장받은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회의 중요한 부분들이 결정되고 이끌어져 가는 '엘리트주의'는 나쁜 게 아니다. 엘리트주의는 특정한 능력들은 현실적인 문제들로부터 보호되어야 길러질 수 있고, 그러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엘리트를 만드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인데 이게 왜 나쁜 것인가? 엘리트들이 욕을 먹는 것은 자신들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배려와 보호를 받았는지를 모르고 오롯이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성취를 달성했다고 믿기 때문인데, 그건 잘못된 엘리트 의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엘리트'가 부정적으로 쓰이는 것은 사람들은 조선시대처럼 '사농공상'처럼 생각하며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높은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엘리트는 '높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현실적인 문제들로부터 많이 보호되었음을 알고 사회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이 속한 사회를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곳으로 만들지를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 그게 진정한 의미의 엘리트다.
만약 내 아이가 대학에 가겠다고 한다면,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더 구체적으로 어떤 배려와 보호를 받고 있는 지를 설명해주면서. 그게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이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