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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Oct 30. 2022

이태원 사고에 대한 반응에 분노하며

이태원에서 난 안타까운 사고에 대해 보이는 반응들에 화가 났다. 수많은 젊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와중에 대통령이 용산으로 이전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식의 말은 분노할 가치도 없고, 댓글에서 '그러길래 왜 다른 나라 문화를 그렇게까지 즐기려 하느냐'라거나 '그렇게 행사를 기획한 이태원 상인들이 문제다'라거나 '왜 경찰, 소방관들은 제대로 대응 못했냐'라는 식의 말이 쏟아지는 것에 대해 화가 났다.


10만 명이 몰렸다고 한다. 사고가 난 이태원 골목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 인파가 몰리면 이런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단 것을 알 것이다. 그 정도 인파가 몰린 상태에서 현장이 통제되기 힘든 게 현실이다. 2017년에는 20만 명이 몰렸다며 경찰이 준비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2017년 당시 사진과 영상을 보면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치고 통제한 곳은 사고가 난 곳이 아니라 이태원 차도다. 당시에는 지금은 이태원 차도와 인도 사이에 있는 경계 구조물이 설치되기 전이라 사람들이 차도로 밀려들어와 사고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폴리스라인을 설치한 것이고, 사고가 났던 골목의 2017년 영상(링크)들을 찾아보면 올해 상황처럼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경찰이 통제하지 않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2018년 영상(링크)과 2019년 영상(링크)을 보면 2017년과 같은 폴리스라인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는 '그 거리 안에 경찰을 배치했어야 한다'라는 주장까지 나오던데... 그건 말 그대로 '결과론'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경찰이 그 안쪽 골목에 있었다고 해서 통제가 됐을까? 경찰들이 그 안에 배치되어 통제를 하려 했다고 생각해보자, 그랬다면 사람들은 '마음 편히 놀지도 못하게 왜 감시하듯 여기까지 들어있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부터 그렇게 느꼈을 듯하다. 당신이 자주 놀러 가는 곳에 경찰이 곳곳에 서 있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삭막하고 답답하겠나? 지금까지 경찰이 그 골목에 배치되지 않았어도 지금까지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었다. 경찰이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게 경찰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경찰이 '안전' 때문에 필요하단 곳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경찰이 안전을 핑계로 일반 시민들을 통제하기 시작하는 경찰국가가 되어갈 수 있단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경찰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이태원 상인들이라고 사람이 그렇게 몰릴 줄 알았을까? 코로나를 거치면서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을 텐데 대목인 핼러윈에 문을 닫으란 말인가? 아니, 코로나를 거치지 않았다고 해도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핼러윈 같은 대목을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댓글들 중에 생각보다 많은 비난이나 비판이 '외국문화에 뭐 저렇게까지...'라며 이태원에 간 사람들을 향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크리스마스도, 밸런타인데이도 무시하고 지나가야 한다. 아니, 그런 논리를 길게 연장시키면 아예 한복을 입고 다녀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언제부터 외국문화라고 해서 즐기면 안 되고, 우리나라 것만 즐겨야 하는 세상이 되었나? 우리나라가 북한처럼 쇄국정책이라도 펼치고 있나?


본인은 그런 문화에 관심이 없을 수 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난 기본적으로 사람이 많이 몰리는 것을 싫어해서 출퇴근 시간에는 지하철을 타지 않고 따릉이를 타고 집에 오는 사람이다. 야구도 30년째 응원하는 팀이 있지만 어지간해서는 주말이나 포스트시즌에는 굳이 가지 않는다. 사람이 몰리는 게 싫어서.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나 같을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 것을 그렇게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2002년에 한국 경기가 열릴 때마다 거리응원에 나갔었다. 목청 높여 응원을 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 사이에 어울려서 그렇게 있는 것 또한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것을 그때 확실히 느꼈고, 어렸을 때는 그런 게 재미있었고, 또래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어제 이태원에 있었던 10대와 20대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핼러윈을 '기념하기 위해' 그렇게 나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즐기고 왁자지껄 떠드는 게 한창 재미있고 즐거울 나이에 핼러윈을 매개체로 삼아서 그렇게 즐기려 했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다.


어제의 사고가 가장 마음 아픈 부분은 그 사고가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것도 아니란 것이다. 나도 그런 인파 속에 있었던 경험이 있지만 환경이 그렇게 되면 꼭 누가 밀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답답해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조금씩만 움직여도 그 움직임들이 파도처럼 밀려서 그 끝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힘이 가해지게 되어있다. 10만 명이 그렇게 좁은 공간에 모이면 경찰이나 소방관이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상인들은 먹고살기 위해 장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한창 사람들과 어울리고 노는 게 즐거운 나이에 그러지 말라고 강요하는 건 공산권 국가들의 집단주의적인 사고방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러니까 그 사람이...'라며 누군가의 잘못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데 어느 개인에게 잘못을 전가할 수 없는 상황들은 생각보다 많이 발생한다. 이 글을 쓰면서 2017년에서부터 2021년까지 이태원에서 핼로윈을 즐기는 사람들의 영상(링크)을 찾아봤는데, 사고가 난 골목의 모습은 항상 비슷했다. 사람들이 밀고 밀렸던 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는데, 그 안에서 어디에선가 시작된 작은 차이가 나비효과를 내서 비극적인 상황을 만들었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싶다면, 돌려야 한다면 그건 아마도 여전히 일제강점기와 60-70년대와 별반 다를 바 없이 틀에 박힌 교실에 가둬놓고 공부하는 기계가 되도록 강요하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하기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일 것이다. 그런 교육 시스템 속에 갇혀 있다 보면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풀고 즐기는 본인만의 방식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상황에서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강요받는 사회에 나오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 시대와 사회가 말하는 '쿨함'과 '즐거움'을 따라가고 싶어 지게 되어있다. 이는 아직 본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 더 정확히는 자신을 알아갈 시간을 가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억눌렸던 경험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때는 더더욱 오랫동안, 많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방식대로 분출하게 만든다. 내가 왜 유흥에, 이런 문화에 큰 감흥이 없는 지를 생각해 봤던 적이 있는데 그건 나는 아버지께서 해외지사로 발령을 나가셔서 미국인학교에서 구조적인 억눌림은 받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더라. 어렸을 때부터 핼로윈을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익히고, trick or treat을 다니고, 댄스파티도, prom도 항상 경험했다 보니 그런 문화를 즐길 수는 있게 됐지만 그에 집착하지는 않을 수 있게 된 듯하다. 이와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억눌리며 큰 학생들은 자신이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을 때 더 집착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집단주의적인 문화에서 자랐다 보니 또래 집단에 속해있단 느낌을 받고 싶다 보니 남들이 가는 곳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유행이 불면 비슷한 옷, 화장,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는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이태원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고의 뿌리에는 그러한 문화가 있다. 세상을 떠난 20-30대들은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의 또 다른 피해자다.  


생각보다 많은 불행, 고난과 실패는 누군가의 탓을 할 수 없다. 이번 사고도 마찬가지로 현상만 놓고 원인을 찾거나 누군가의 잘못으로 돌리기가 힘들다. 이는 이번 사고는 우리 사회 안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여러 흐름과 문화, 특징들이 결합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뿌리에는 '집단주의적 문화'와 '입시학원으로 전락한 교육체계'가 있다. 이는 이태원 사고와 같은 압사 사고들이 '집단'을 중시하는 종교, 스포츠 행사에서 많이 일어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한 집단주의적인 문화는 사람들을 한 곳으로 많이 모이게 만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질서가 조금만 어긋나도 큰 사고가 나게 되는데, 핼로윈에 주로 10-20대가 10만 명이나 모이게 되는 건 (그리고 한 때는 20만 명까지도 모였던 건...) 우리나라에 '쿨하고 재미있는 것'에 대한 것에서도 집단주의적인 문화가 있단 것을 보여준다.


이번 사고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 가치'의 잘못이지 어느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다.


* 쏟아지는 뉴스와 댓글들을 보며 너무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마음이 힘들어 일도 잡히지 않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그 가족과 지인들의 마음이 너무 아프지 않을 수 있기를, 그 마음에 위로가 닿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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