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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pr 13. 2023

결혼, 반드시 해야 할까?

결혼과 연애와 사랑에 대한 소고. 2편

먼저 양해를 구할 것은 프롤로그에서도 밝혔듯이 이번 시리즈는 철저히 이성적으로, 완전히 차갑게 쓸 예정이고 그렇기 때문에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양해를 구하는 것은 나는 개인적으로 '결혼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만큼 어리석은 질문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이제 그만 제기되어도 된다. 아니, 이런 질문은 애초에 제기될 필요도,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이는 세상에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생존을 위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섬유질을 섭취하는 것밖에 없다. 그 외에 모든 것은 모두 선택의 영역에 있다. 


우리는 대학에 '반드시' 가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초반까지 대학진학률이 50%도 되지 않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 성공하고 잘 먹고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는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SKY 출신들이라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SKY출신들 중에 백수도 적지 않다. 


우리는 영어를 잘해야'만' 하는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창한 영어실력을 현실에서 사용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나마 무역업이나 해외기업의 국내지사, 국내기업의 해외지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영어를 어느 정도 사용하겠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영어는 대부분 어느 정도 정형화 되어있다. 그렇다 보니 영어를 처음에 잘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그런 환경에서 몇 년 일하다 보면 일하는데 필요한 영어는 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유창한' 영어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나마도 그러한 환경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일상에서 거의 영어를 쓸 일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대학에, 그것도 가능하면 좋은 대학에 진학할 것을 권하고 영어를 공부하길 권하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은 '확률'의 싸움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절대로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않지만 진학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밥벌이를 하지 못할 정도의 상황까지 내몰리지는 않는데 도움이 될 확률이 높고,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하는 게 새로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게 해 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가능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조건을 갖춘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성공할 확률이 99%라고 하더라도 나머지 1%의 경우에 해당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듯이 확률을 아무리 높인다고 해도 우리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대한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성공할, 자리 잡을, 안정적이 될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그런 노력은 절대로 헛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한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최대한 잘 알아야 한다. 그 첫 번째는 본인에 대한 이해고, 두 번째는 시장상황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람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데, 사람이 모두 다르다는 것은 각자에게 맞는 것이 다르단 것이다. 누군가는 숫자를 보는 게 자신에게 더 잘 맞을 것이고, 누군가는 글 쓰는 게 자신에게 더 잘 맞을 것이며, 누군가는 조직 안에서 일하는 게 편하겠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일하는 게 답답할 수 있다. 인간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일과 환경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분야와 환경을 찾아야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아무리 특정한 분야와 환경이 잘 맞는다고 해도 그 시장이 치열하다면 이야기는 또 다르다. 만약 100명이 들어가서 50명이 성공할 수 있는 시장이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100명이 들어가면 1명만 살아남는 시장에는 뛰어들기 전에 자신의 경쟁자들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후자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단 것이 아니다. 자신이 정말 그 1명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50명이 성공할 수 있지만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어쩌면 대부분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실패를 경험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자신과 시장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 자신을 모름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자신감이나 욕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뛰어들었다 실패를 맛보곤 한다. 그리고 그 후에는 '그 시장은 안 되는 판이었다'라고 말하거나 '나는 이것밖에 안되나 봐'라고 말한다.


아니다. 그 시장은 본인에게 맞지 않았을 뿐이지 누군가에게는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시장이었을 수 있고, 본인도 본인에게 맞는 시장에 뛰어들었다면 성공했을 수 있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못하고 있거나 이혼한 사람들 중에 '결혼하지 마, 혼자 사는 게 훨씬 행복해'라는 말을 쉽게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게 단언했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린 후에 행복하게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은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본인의 결혼생활은 불행할 수 있고, 실패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이 곧 결혼 자체가 필요 없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란 뜻은 아니다. 본인이 본인과 상대를 잘 모르고 결혼했기 때문에 불행해졌을 뿐이다. 


그런 사람들의 말이 틀린 또 다른 이유는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이 아예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아가 건강하고, 관계보다 일중심적이고, 감정적으로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은 삶이 결혼한 삶보다 훨씬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자아가 완벽하게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힘들 때 부축해 줄 사람이 필요하고, 정서적인 교감과 교류가 조금이라도 필요한 사람은 관계를 형성해야 하고, 감정의 영역은 사람이 없이 충족되지 못한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자아가 완벽하게 건강하진 않고, 관계가 인생에서 일정 부분을 차지하며, 정서적 교감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옆에서 그러한 기능과 역할을 해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평생 연애를 할 수도 있고, 좋은 친구들이 있다면 그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며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점에서 이 시리즈의 전제가 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법적으로 구속되지 않은 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런 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확률적으로' 따져보자는 것이다. 연인과 이별을 하면 두 사람은 상대의 공백으로 인해 한동안 힘들긴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잃는 것은 없다. 이는 연인은 자신과 상대의 상황이 변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연인보다 연결고리가 더 약한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다. 평생 결혼하지 말고 같이 지내지는 약속을 깨고 결혼하는 친구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도 완벽하게 신뢰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정말 신뢰하는 지인들끼리 사업을 같이 했다가 평생을 보지 않는 원수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대부분 서로를 믿기 때문에 적당히 합의하고, 적당히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여기고 계약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두 사람이 계약을 통해 서로의 이해관계를 완전히 엮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아도 '상호 간에' 확실하게 이해관계를 엮을 수 있는 상대가 있는 사람은 결혼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연인과 동거를 하면서 사실혼 상태로 지내도 되고, 친구와 사생활도 존중하고 경제적인 요소도 어느 정도 결합하면서 공동체처럼 지내면서 잘 지낼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기에 앞서해야 하는 질문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되는가?'일 것이다. 그럴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매우 낮다. 이는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비혼으로 살겠다는 사람들은 결국은 자유롭게,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상대와 이해관계를 일정 수준으로 엮으려고 할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 모든 것이 좋고 원활할 때는 그럴 의사가 있어 보이겠지만 상황이 변하고, 그에 따라 각자의 이해관계가 달라지면 마음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엮는 수준에 대한 생각이 다르면 그 관계는 절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결혼이 그런 관계와 다른, 혹은 달라야 하는 지점은 두 가지 있는데 두 사람 간의 감정과 그 이해관계가 법적으로 구속된단 것이다. 친구들과의 관계나 공동체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이성의 영역을 뛰어넘게 해주는 호르몬작용으로 인해 생기는 감정이 없으면 사람은 누구도 '자기 중심성'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감정의 부분은 연인과 부부가 다르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연인의 경우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할 때 상호 간에 공유하는 감정이 이성적으로는 하지 않을 희생과 행동을 하게 해 준다는 점은 같지만 이 지점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상호 간의 이해관계가 연결되는 순간 두 사람은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생각해 보자. 당신의 연인의 부모님이 사업이 부도가 났거나 암에 걸렸다면 당신이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리고 그 상황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낄까? 물론, 그때도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게 되고 상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해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연인에게 해줄 수 있는, 해주게 되는 것은 당신이 상대의 배우자일 때와 다를 것이다. 이는 두 사람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이해관계를 현실적으로 공유하면 상대의 일이 나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에 부부는 연인과 달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부들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적당한 나이가 됐으니까, 적당한 스펙을 갖춘 사람이니까, 오래 연애했으니까 결혼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결혼을 하면 결혼 후에도 상대 가족과 자신의 가족은 남남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결혼생활은 사실 연애와 다를 바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은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은 본인이 결혼의 사회적, 현실적 의미를 충분히 인지하고, 준비와 각오를 하지 않거나 못한 상태로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결혼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결혼은 철저히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하는데 이는 결혼은 서로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구속되겠다는 약속, 혹은 계약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A라는 회사를 다니면 그 회사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일이나 사업을 하는 게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결혼을 한다는 것은 서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기꺼이 상대의 편이 되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에 부부간의 부정행위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결혼을 결심할 때는 이러한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한 상태여야 한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공유되면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인 두 사람은 상대에게 일어나는 일이 본인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상대와 많은 것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대와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공유하면 할수록 두 사람은 상대와 감정적으로 공유하는 영역도 넓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결혼관계'는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와 휴식처를 만들어 줄 수 있다. 결혼생활이 불행한 사람들은 그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은 왜 결혼생활이 불행해질까? 그건 두 사람이 결혼을 결심할 때 자신과 상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결혼한 후에도 서로의 이해관계를 엮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워낙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시리즈에서 앞으로 다루겠다. 


결혼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결혼이 무조건 보장해 주는 것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혼을 '잘' 할 경우 우리는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라도 '서로' 배려하고, 희생하는 파트너를 통해 삶이 나아질 수 있단 것이다. 모든 것은 결국 확률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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