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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pr 26. 2023

결혼은 투자다

결혼과 연애와 사랑에 대한 소고. 7편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가 있다. 맞다. 결혼은 결과론적으로 미친 짓일 수 있고, 요즘에 나오는 많은 예능들은 결혼은 무조건 미친 짓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결혼에 대해서 무조건 시니컬 해지는 경우가 있다. 본인의 경험과 편집된 사례들을 보면서.  


그런데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보자. 결혼이 정말 미친 짓이기만 하다면 인류는 왜 계속 결혼을 하는 걸까? 결혼생활이 주는 게 없다면 이혼한 사람들은 왜 재혼을 하는 것일까?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해 온 게 짝짓기를 해서 공동체를 만들고 사는 게 아닌가? 그게 인류에게 필요 없다면, 인간은 언젠가부터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고, 인류는 멸망했을 것이다. 진화론적으로 봤을 때는 그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진화론적 관점으로 봤을 때 결혼은 인간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다. 반대로 창조론적으로 본다면, 신은 인간을 사랑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은 결혼이 필요하다.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결혼을 해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개신교 신자인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비난을 하겠지만 나는 형식적인 틀의 측면에서 결혼은 반드시 필요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일부 국가들에 존재하는 동거하는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혜택이 우리나라에서도 부여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형식은 형식일 뿐이고, 두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신뢰한다면 그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거를 지속하는 것보단 결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은 신뢰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법적으로 구속되어 있지 않으면 순간의 판단으로 헤어지기로 결정할 수 있는데, 그렇게 충동적으로 한 결정으로 인해 그 사람은 더 깊고 넓은 세상을 알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때때로 틀에 갇히고 강제된 것들 덕분에 성장하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결혼이란 제도는 갑갑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성장하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해 줄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나도 주위에 고통스러운 결혼생활로 인해 상담을 받고 있는 지인들이 있고, 이혼한 후에 수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던 지인들도 있다. 결혼은 미친 짓과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아이를 낳는 것도 마찬가지. 결혼하면 모든 게 괜찮을 것이라고, 결혼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라고 하는 말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다 거짓말들이다. 그런 말을 하며 무조건 결혼을 강요하듯 말하는 세대의 분들이 황혼이혼이나 졸혼을 하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평생을 뒤에서 배우자에 대한 비판을 넘어 비난을 하는 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그런 모습을 보면서 결혼을 하고 싶어지지 않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것만 보고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결혼이 그렇게 무조건 나쁜 것이라면 인류는 더 이상 지구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불행하고 힘들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세상에는 꽤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잘 이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그들은 결혼생활 속에 몰입해서 다른 사람들과 많이 만나지 않거나 굳이 자신의 행복한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니지 않아서 많이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배우자 욕을 하고 결혼은 하지 말라면서도 가정을 지키는 사람들 중에는 행복하고 즐거운 얘기를 입 밖에 내는 건 민망하고, 힘든 건 지인들과 떠들어서 풀어야 하는 이들도 있다는 걸 기억하자.


결혼은 죄가 없다. 결혼생활은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싱글의 삶은 최악도 아니지만 최선도 아니다. 가장 행복한 삶은 서로에게 의지할 줄 아는 건강한 사람이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30대를 지나 40대에도 싱글인 사람들 중 상당수, 어쩌면 대부분은 이 사실에는 동의한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풀이 좁아지고 여러 경험을 하다 보니 사람을 신뢰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서 나이가 들수록 결혼을 하기가 힘들어질 뿐이다.


그런 마음과 현실도 이해한다. 나도 그런 나이가 되었고, 그러고 있으니까. 아주 가끔 한 번씩 주소록을 내려가며 지인 중에 아직 싱글인 괜찮은 사람인지를 볼 때가 있는데 그건 미련이 남는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지를 모르겠기 때문이다. 주변 지인들은 대부분이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다 보니 그 사람들 중에 적당한 사람이 있다면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맞을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 아주, 매우 가끔씩은 주소록을 한 번씩 들여다볼 때가 아직도 있다.


그렇다. 결혼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사람들은 나름 최선을 다해 따지고, 검토해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주식을 사기 전에, 투자를 하기 전에 모든 정보와 수치를 확인해도 시장 상황의 변화나 중요 인사의 배신으로 인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것처럼 아무리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계산을 해도 그 사람의 결혼생활은 불행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돈, 외모, 집안만 보거나 일정 기간 이상 만났다는 이유로 결혼을 결심한다. 그건 지금 회사의 대표가 누구인지, 직원은 몇 명인지, 매출은 얼마인지만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대표는 괜찮아도 재무이사가 양아치일 수도 있고, 매출은 높아도 수익은 낮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디테일을 따져도 시장상황이 변할 수 있는 것처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아도 상황과 환경이 변하면 힘들어질 수 있는 게 결혼생활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함부로, 쉽게 결정할 부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잘 한 결혼은 대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서로 잘 맞춰갈 수 있고, 함께 의지할 수 있으며, 같이 노력할 수 있는 사람과 가정을 꾸린 삶은 그런 사람이 인생에 없는 삶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는 것을 나는 그런 삶을 사는 부부들을 보며 알게 됐다. 아무리 주식으로 돈을 잃어도 근로소득만으로는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안정이 안 되는 것을 알기에 투자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금은 괜찮고 행복해도 이게 이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결혼에 대한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대충, 막 일단 하고 보라는 것도 아니고 나도 그럴 생각은 없다. 다만 너무 쉽게 비혼을 얘기하고, 결혼을 부정적으로만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투자를 못한 사람은 쪽박을 차지만, 그 반대편에는 대박을 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결혼으로 인해 불행하고 힘들어진 사람들도 있지만 훨씬 행복해진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투자를 잘하기 위해서는 시장상황과 기업들을 공부하고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것처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과 본인과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도 잊지 말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많은 돈을 벌 수도 없는 것처럼 결혼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느끼고, 누릴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사람들은 너무 쉽게 결혼은 이렇거나 저렇다고 하는데, 심지어 결혼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들도 그러는 데 그건 마치 가보지도 않은 곳을 사진만 보고 '저기는 가 볼 가치가 없어'라고 하거나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맛이 없는 것으로 단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결혼을 해 봤던 사람들도 마찬가지. 본인의 결혼생활은 힘들기만 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의 결혼생활이 힘들었다고 해서 결혼생활이 모두 힘들고 고통스럽고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지 않나? 어렸을 때 맛이 없었던 음식이 나이가 들면서 맛있게 느껴지기도 하고, 익숙해지기 전에는 먹기 힘들었던 음식도 그 맛을 알게 되면 계속 찾게 되는 것처럼 결혼생활도 처음에 힘들어도 서로 맞춰지면서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남이 맛이 없다고 한다고 해서 그게 내게도 맛이 없는 건 아닌 것처럼 타인의 결혼생활이 힘들었다고 해서 자신의 결혼생활도 무조건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걸 다 계산하고 봐야 한다는 게 아니다. 기업에 투자를 할 때도 모든 정보를 다 봐야 하는 게 아니라 가장 핵심적인 요소들을 검토하면 되는 것처럼, 결혼도 상대에 대해서 핵심적인 부분들을 잘 확인하면 된다. 초기 스타트업들의 경우 거창한 프레젠테이션이나 그럴듯한 로드맵보다는 그 대표들의 이력이 투자에 가장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하는데 이는 그 사람들이 걸어온 길이 그가 회사를 어떻게 이끌지를 어느 정도는 알려주기 때문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이 갖춘 껍데기보다는 그 사람이 내린 결정들, 그리고 그 사람이 무의식 중에 하는 작은 행동과 말들이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걸 알려줄 수 있다. 그 사람이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포장하는 말과 스펙보다 그 [사람]을 더 잘 보여주는 작은 지점과 그 사람의 역사를 보는 게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을 결혼생활을 만들어나가는 시작점일 수 있단 것이다. 많은 결혼생활은 그 지점들을 무시하고, 간과함으로 인해 불행해진다. 사소한 디테일들을 놓쳐 실패하는 투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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