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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pr 26. 2023

아이, 반드시 가져야만 할까?

결혼과 연애와 사랑에 대한 소고. 6편

결혼, 연애와 사랑에 대한 글을 다시, 어느 때보다 차갑게 머리로만 쓰기로 했고 지금까지 다룬 주제들은 그게 어렵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고, 나의 연애와 지인들의 연애와 결혼생활들을 보면서 정리한 나름 확신이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 주제는 조금 다르다. 조심스럽다. 결론만 말하자면 '가능하다면' 아이를 갖는 게 여러모로 좋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다른 주제만큼 단호하게 말하진 못하겠다. 


아이가 생기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딛는 아이는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고, 성인보다 훨씬 질병에 취약하기 때문에 아이를 갖는다는 건 어마어마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과거에는 그래도 이웃들 간에 교류도 있고, 친척들이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상부상조하며 돕고 같이 아이를 볼 수도 있었지만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 수준으로 개인화가 아니라 파편화가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건 매우,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런 현실에 더해서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데는 상당한 수준의 돈이 들게 됐다. 이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영어유치원을 보내서 그렇다, 모든 걸 너무 돈을 써서 좋은 거, 좋은 거로 하면서 과소비를 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이도 사실이 아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극성스러운 사람들이 상당한 수준으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해서라도 그렇게까지 하지 못한다.


이 부분이 아이를 갖기를 힘들게, 또는 불가능하게 하는 지점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상 대부분 사람들은 아이에게 평균적인 것들만 해줘도 하루, 하루를 버티기가 힘들다. 그게 현실이다. 물가도, 집값도 오르는데 연봉은 오르지 않는 현실에서 혼자 살기에도 버거운데, 혼자 살아도 앞이 보이지 않는데 거기에 아이를 책임감 갖고 건강하게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지속가능하게 그러하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하다.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에서 연봉을 가장 많이 주는 13개 회사의 '평균' 연봉은 모두 1억 원을 넘는데, 이는 '평균'이기 때문에 30대 초중반까지는 이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도 연봉이 1억은 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이 회사에 다니는 20-30대가 전국에 몇이나 될까? 13개 회사다. 아무리 많아도 5%? 아니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20-30대 중에 극소수만 연봉이 7-8천만 원이 넘을 것이다. 만약 '내 주위에는 다 그 정도 되는데?'라고 생각된다면 그건 당신이 속한 업종이 연봉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그 정도 연봉의 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아래에서 별도로 하겠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30대의 평균연봉은 4200만 원 정도다. 평균 월급은 남자 362만 원, 여자 294만 원. 게산을 해보자. 요즘 밥값이 많이 오르기도 했고, 1만 원이 안 되는 식당도 있고 집에서 더 저렴하게 밥을 먹을 때도 있지만 외식 등을 할 때도 있으니 평균적으로 한 끼에 1만 원 정도를 쓴다고 치면 밥값만 한 달에 90만 원이다. 아무리 아껴도 먹는 용으로만 70만 원 이상은 누구나 쓰면서 산다. 거기에 월세를 살면 50-100만 원은 나가고, 통신비 등 최소한의 여유에 필요한 돈도 이것저것 따져보면 쥐어짜지 않는 이상 20만 원은 든다. 그러면 정말 아끼고, 아끼고, 아껴서 살아도 한 달에 160만 원은 기본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조금은 숨을 쉬고 살려면 한 달에 200만 원은 넘는 지출이 일어나게 된다. 


중간점을 잡아서 200만 원의 지출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남자는 한 달에 160만 원, 여자는 90만 원 정도를 모을 수 있게 되는데 이걸 1년으로 환산하면 남자는 1,920만 원, 여자는 1,080만 원을 모으게 되는데 그렇게 모은 남녀가 20-30대에 모을 수 있는 돈은 잘해야 3억이다. 혹자는 나이가 들수록 더 버니 더 많이 모을 수 있지 않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 연봉은 '30대 평균'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이 얘기는 30대 초반의 사람들은 이렇게 모을 수가 없단 얘기고, '평균'은 절반 정도는 이 정도 수입과 저축을 할 수 없단 뜻이다. 그리고 이 정도 금액은 정말 알뜰살뜰 아끼고 아끼는 경우고 대부분 사람들은 이 정도 돈을 모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여행 한 번만 다녀와서 이 계산은 틀어지게 되지 않나? 


여기에 더해서 우리나라에서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회사에 오래 다니면 50대까지라는 게 공식처럼 되어있다. 그 후에는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확실한 건 회사에 다닐 때보다는 수입이 적을 확률이 높단 것이다. 그런데 30대에 결혼을 하면 아이들은 50대에 대학에 간다. '평균적인 수입'을 버는 남녀가 결혼해서 알뜰하게 모아도 50대 초반까지 6억을 모으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 후에 노후는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데, 국민연금은 아무래도 못 받을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물론, 평균은 말 그대로 '평균'이니까 절반 정도는 경제적으로 더 여유가 있을 것이다. A라는 사람이 평균적인 사람보다 연봉도 2배고, 2배로 모은다고 치자. 배우자도 그 정도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면 두 사람은 50대 초반까지 12억 이상의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 정도면 큰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아이를 키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수준의 돈도 아니다. 서울에서 4인 가족이 살만한 집은 어지간하면 10억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12억 이상을 모을 수 있다고 해서 그 연봉 수준이 '아이를 키우기에 충분한 수입'은 아닐 수 있다. 


그렇게 버는 사람들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건 보통 연봉이 높은 사람들은 그만큼 많이 일해야 한단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짜로 돈을 많이 주는 회사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연봉을 많이 버는 사람들은 정작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고, 그 결과 아이들과의 관계는 어느 정도 소원해질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회사 일에 더해서 집에서도 스트레스를 받게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위에서 10억 이상의 저축은 이상적인 수치이고 사실 인간은 돈을 많이 벌면 지금 당장도 어느 정도는 누리고 싶어 지기 때문에 지출은 그보다 늘어날 수밖에 없고, 부부가 모두 평균의 2배가 넘는 수입을 유지하지 않는 이상 10억은 50대까지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수치다. 


이기적이어서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아이를 갖는 게 망설여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우리나라는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최소한 돈은 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국가가 만들어줘야 한다. 왜 국가가 그걸 해줘야 하냐고? 이걸 '지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건 지원이 아니라 투자다. 국가적인 관점에서 인구가 많은 건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이는 인구가 늘어나면 그만큼 수요가 늘어나서 내수시장이 커지게 되고, 인구가 많으면 경쟁도 치열해지기 때문에 개인들이 경쟁을 통해 능력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가적인 이익을 위해 인구를 늘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아이를 낳기만 하면 최소한 성인이 될 때까지는 큰돈이 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지원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필요한 조치다. 


이런 말을 하면 '왜 돈 있는 사람에게도 지원을 해줘야 하냐?'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건 '돈이 없는 사람'에게만 지원을 하는 건 결국 사람들이 자신의 가난을 입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환경에서 자란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낙인이 찍혀서 건강하지 못한 자아를 갖고 살아가게 된다. 그게 사회적으로 손해가 아닐까? 당신의 자녀가 사는 사회에 1/10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자. 당신의 자녀는 행복할까? 그런 사람들이 생길 '확률'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가난을 온몸으로 느끼지는 않을 수 있도록 해주는 조치들이 우리 사회에는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그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여기에 더해서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그렇게 지원을 받는 것보다 내는 세금도 많을 것이고, 세금을 많이 내는 게 아깝다가도 아이를 기르는데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면 세금을 내는 마음도 조금은 편해질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 국가가 아이를 낳도록 투자하는 건 국가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리고 그게 된다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것이다. 이는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주거를 안정시켜줘야 하고 결혼을 한 후에 주거만 안정될 수 있어도 사람들은 결혼을 조금 더 편하게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아이를 낳지 않게 되는 현실적인 이유였다면, 아이를 낳아야 할 이유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건 대부분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최소한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지금의 20-30대보다 취업을 하기 쉬운 환경에 있을 것이란 것을 의미한다. 생각해 보자. 지금의 회사들은 역피라미드 구조로 50-60대가 많은 연봉을 받고 많이 버티고 있는데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그들이 모두 퇴직을 했거나 세상을 떠난 후에 대학교에 진학한다. 그렇다면 그때는 지금처럼 취업이 큰 문제가 아니다. 이건 이론이 아니라 현실인 것은 일본의 상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90년대에 우리나라와 유사한 상황을 경험한 일본은 취업률이 올라가고 있다. 참고로 90년대에 일본의 출산율은 지금 우리나라의 1.5배 정도를 기록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집도 마찬가지. 서울, 경기지역 외 다른 지역에는 이미 빈집이 많아서 골치가 아플 지경인데 이러한 20년 후에는 현상이 서울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다. 이는 지금의 30-40대들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결혼을 해도 딩크족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주택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의 30-40대들은 20년 후면 상당수가 수입이 없어서 지금 노후가 힘들다는 60대 이상의 어르신들보다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서 집값은 모든 사람들이 선호하는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20년 후에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30-40대들은 20년 후에도 일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서울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집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집을 사는 것에 대한 현실적으로 수요는 지금보다 훨씬 낮아질 것이고,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 지역의 집값은 지금보다 높아질 수가 없다. 


이는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대한민국 보다는 여유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을 것이란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세상에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게 미안하다'라는 걱정은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할 필요는 없다. 지난 10년 간 우리나라가 기록한 출산율, 노년층의 빈곤과 30-40대들의 팍팍한 삶을 종합해 보면 20-30년 후에 경제활동을 하고 있을 20-30대들은 지금의 20-40대보단 숨 쉴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나아질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하는 게 아니라, 수치적으로 봤을 때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현실의 벽은 아이를 낳아서 기를 수 없게 만든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서 단호하게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좋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도 그걸 너무 잘 알고, 나 역시 이 문제를 생각하면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내가 여전히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건 인간은 자기중심적임과 동시에 '새로운 자극'이 항상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20-30대에 비혼을 말하는 사람들은 취미도 많고, 현실에서 즐겁고 재미있는 게 많아서 좋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20-30대에는 새로운 자극이 모든 곳에 있으니까. 그런데 그 자극이 얼마나 '지속가능'할까? '취미부자'인 게 나쁠 건 없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취미가 많은 사람은 그만큼 다른 것으로 시간을 채우지 못하다 보니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면서 취미가 많아진 경우가 적지 않은 듯하고, 한 취미에서 느껴지는 극성이 약해지다 보니 다른 취미에서 그런 지점을 보완하는 경우도 많다. 


그 패턴이 50대, 60대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람들이 사랑의 유통기한에 그렇게 들이대기 좋아하는 '도파민' 등의 호르몬 분비는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기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관계에서는 두 사람이 노력해서 새로움을 더할 수 있지만 취미는 그게 일로 전환되지 않는 이상 5년 정도하고 나면 그 안에서 새로움을 느끼지는 못하게 된다. 


이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20-30대에는 일이 당연히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게 새롭기 때문에. 하지만 정말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사람들은 30대 후반에서 40대로 넘어가는 기점부터 일에서 느끼는 흥미나 보람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이는 일에서 느낄 수 있는 새로움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일에도 빨리 적응하기 때문에 새롭게 느껴졌던 일도 2-3년 정도하고 나면 익숙해지고 지겨워지기 마련이다. '이게 내 적성에 안 맞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건 그저 일에서 느껴지는 새로움이 사라졌기 때문일 확률이 매우 높고 그 패턴은 다른 일을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회사 안에서의 일은 더더욱 그런데 이는 회사 안에서의 일은 정형화되어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취미에서 느껴지는 재미와 즐거움이 지속되는 사람도 있고, 일에서 느끼는 보람과 의미와 흥분이 줄어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축하드린다. 그렇다면 당신은 결혼도, 아이도 필요 없는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장담하지는 말자. 그렇게 워커홀릭인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그렇게 일을 하다 건강에 이상이 오고 나서야 후회하기도 한다.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한 걸음 물러나서 본인이 너무 일에 매몰되어서 그런 건 아닌지, 본인이 무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계속 의심하며 스스로를 돌아봐야 우리는 우리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일과 취미가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정서적으로 기댈 곳이 필요하고, 일과 취미가 익숙해지면 그에 실증을 느낀다. 인간은 모두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해관계가 공유되어야 전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결혼이 필요하다면, 아이를 갖는 건 후자 때문에 필요하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냉정하고 드라이하게 말하는 건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고, 아이를 도구화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지점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정서적인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결혼한 부부에게 아이가 줄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효과는 두 사람이 확실하게 공유할 수 있는 이해관계의 지점이 생긴다는 것이고, 아이가 부모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새로움'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겪게 되는 힘듦이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아이의 존재는 그 힘듦만큼이나 부모에게 새로움을 선물해 준다. 그리고 그 새로움 중에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부분들도 있지만, 부모가 된 지인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아이들이 주는 좋은 새로움은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것들이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이 쉽거나 별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머리로 아는 것보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건 훨씬, 어쩌면 몇십, 몇 백 배 이상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인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해보면 자아가 망가지거나 미숙하고 이기적이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이에게 받을 수 있는 즐거움과 행복도 그만큼 크고 많더라. 


나는 그런 행복과 즐거움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걸 내가 모른다는 건 확실히 아는데, 이는 내가 어머니께 엄청나게 심하게 대든 후에 화해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마음으로는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주관이 강한 편이고, 그렇다 보니 부모님께도 많이 대들었는데 어머니께서 그때 내게 "네가 나를 이렇게 대해도 내가 너를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네가 내게 준 행복과 즐거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더라. 나는 내가 부모님께 뭘 얼마나 드렸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두 분이 나로 인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잘 안다. 내가 했던 행동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내가 그보다 더 큰 행복과 즐거움을 드렸다니... 난 이 말에 그 행복과 즐거움은 내가 아이를 갖지 않은 이상 모를 수밖에 없단 사실만 확실하게 안다. 


지인들 중에 결혼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결혼해서 아이를 갖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아이를 가져도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강하게만 키우겠다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 같이 내게 '아이를 갖지 않을 것이라면 결혼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고, 나는 아들을 강하게만 키우는 아버지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와 어머니의 이야기에 대해서 '내가 그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럴 수 있을 거는 같다'라고 하더라. 내 기준에서 정상적이고 괜찮은 사람들은 모두,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그런 이야기들이 자주 회자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고, 행복한 이야기를 입 밖에 내는 걸 민망해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게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내가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받지는 못한다. 인간은 모두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그나마 그에 가장 가까운 건 부모님의 사랑일 텐데 부모님도 어느 순간서부 턴가는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이에게 요구하는 게 생기다 보니 우린 100% 순수한 사랑을 경험하진 못한다. 하지만 아이는 일정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부모에게 맡기는데, 이게 우리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부담의 다른 측면은 그 아이가 오롯이 그 부모에게만 사랑을 주고 있단 것이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순도 100%의 사랑은 어쩌면 아이가 어렸을 때 부모에게 주는 것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지인들이, 비혼주의자나 딩크족으로 살겠다던 지인들이 아이를 낳은 걸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하는 건 그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은 아닐까?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태자면, 사실 나는 더 열심히, 많이 일하고 싶어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있고, 그러면서 나 혼자 먹고 살기에는 차고 넘치는 수입을 벌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피곤함과 지루함이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정도의 수입만 평생 벌 수 있으면 물가상승률을 고려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단 걸 나는 안다. 이는 계속 변하는 사회 속에서 내가 같은 수준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춰서 계속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현재의 수입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가 되니 그 노력을 하고 싶지가 않아 졌다. 이젠 생물학적 노화가 온 게 느껴지고, 그저 멍 때리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단 생각이 자주 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이 꽤나 괜찮기 때문에. 이런 내게 더 노력하고 열심히 일할 동력이 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 지에 대해 꽤나 오랫동안 고민을 해 봤는데, 나의 배우자와 아이가 있으면 내가 조금 더 일할 이유가 생기겠더라.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더 열심히 일해서 많은 돈을 벌고 싶겠더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오래,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겠더라. 받는 것보다 줄 수 있는 사랑이 더 행복하기 때문에. 


그 외에는 내가 더 열심히 살 유인을 찾기 힘들었다. 내가 돈을 엄청 많이 벌고 유명해지면 뭘 할 것인가? 결국 언젠가는 죽을 텐데. 그렇지 않더라도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서 내 주머니로 옮기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은 고통을 수반한다. 유명해진 삶은 좋은 면도 있지만 피곤해지고 삶의 범위가 제약되는 것도 현실이다. 이처럼 모든 건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게 현실이 아닌가? 내가 잘 나가서 이름을 남길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내가 죽은 다음에 이름이 알려지는 게 내게 무슨 유익을 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리게 되는 결론은, 그 과정에서 행복해야 한단 것이고 그 과정이 행복하기 위해서 나는 내가 좋아하고 의미가 부여되는 일들을 찾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게 있더라. 그것만 하면 나는 결국 소진되고 지쳐가더라. 과거를 돌아보면 그걸 회복시켜 줬던 건 결국 사랑과 위로였다. 내가 사람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결혼도 아이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삶은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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