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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pr 19. 2023

결혼에 필요한 조건

결혼과 연애와 사랑에 대한 소고. 5편

이 글의 제목을 보고 클릭을 하신 분들은 이런 조건은 보고, 이런 조건은 볼 필요가 없다는 내용을 예상하실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기대하거나 생각하셨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셨다.


나이가 있는 싱글로, 과거의 기준으로는 분명 '노총각'의 범주에 들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 어느 순간 사람들이 결혼 이야기를 꺼내기를 미안해하는 나이 즈음 되면 지겹게 들어온 말들 중 한 가지는 '눈을 낮춰라'라거나 '너무 많은 걸 보지 마라' 또는 '000는 중요한 게 아니야' 심할 경우엔 '네가 00 하면서 어떻게 00 하냐'라는 식의 말들이다. 그런 식의 말들, 다양한 버전으로 들어봤다.


안다. 행복한 연애와 결혼생활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1위부터 30위까지 순위를 매긴다면 매길 수 있다. 어떤 게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도 너무 잘 안다. 결혼이 현실이라는 것도 안다. 남자들이 여자에게, 여자들이 남자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에 대한 '평균치'도 잘 인지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주위에 소개팅 부탁을 하지 않게 되었다. '평균적인' 이성의 시선에서 내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를 너무 잘 알고, 그걸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런데 여기에서 묻고 싶은 건, 정말 무엇인가를 보거나 보지 않는 게 우리 마음대로 되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결혼과 관련된 상대의 조건을 1위부터 30위까지 매긴다면, 수많은 연애나 결혼 관련 프로그램들에서 지겹게 시키는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라는 질문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꼽으면 나머지는 다 포기할 수 있나?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우리가 지금 상대에 대해서 어떠한 조건을 보거나 의식하게 되는 건 우리에게 그러한 게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그 부분은 인정하고 넘어가줘야 한다. 지금 눈이 까다로운 사람에게, 높은 사람에게 낮추라고, 까다롭게 굴지 말라고 하는 건 마치 학교에서 전교 100등 하는 학생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면 1등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부하는 습관도 들어있지 않고, 지금까지 공부한 게 없는 학생이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아침에 1위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지금 상대의 특정한 조건들이 의식되는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그게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바뀌기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조금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잔소리를 하지 말고. 우리가 상대를 보는 조건이 바뀌기 위해서는 그 조건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게 의미가 없거나 있다면 어느 정도 있는지를 스스로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더 쉽게 그걸 배우거나 깨닫는 방법은 없다. 그런 게 있다고 주장하는 건 마치 운동을 하지 않고 먹는 것을 조절하지 않고도 몸짱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먹는 것을 조절하지 않고 다이어트가 가능하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


그리고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을 하자. 그런 조건들이 '전혀' 의미가 없나? 아니다. 사람들이 결혼과 관련해서 대표적으로 '볼 필요 없다'라고 하는 것은 외모인데, 외모가 정말 결혼생활에 아무 의미도 없는가? 물론, 결혼생활을 할 때 외모는 큰 부분을 차지하진 않는다. 외모만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수준의 외모가 아니라면 외모는 결혼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아주 작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집에서 출입문이나 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나? 사람들은 집을 사러 갈 때 그 집의 대문이 어떤 재질이고, 어떤 모양인지를 그렇게 눈여겨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문이 없는 집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당신은 그 집을 사겠는가? 그 내부는 모든 게 당신이 생각하는 그대로인데 출입하는 문이 없어서 집에 들어갈 때는 항상 창문을 넘어 다녀야 한다면, 그래서 외출할 때는 항상 창문을 열어놓고 나가야 한다면 당신은 그 집을 사겠나?


외모는 결혼에서 큰 부분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기혼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건 부부싸움을 한 후에 상대를 봤을 때 상대가 잘생기거나 예쁘거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면 자신의 감정이 먼저 사그라들고, 그 사그라드는 것이 화해의 시작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단 것이다. 반대로 상대가 외모적으로 엄청 매력적이었는데 결혼한 후에 어떠한 형태로든지 망가진 경우에는 싸운 후에 상대를 보면 상대의 변한 외모에 화가 더 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외모는 큰 변수인가? 작은 변수인가?


하나, 하나 다 따지는 게 무조건 의미가 있다는 게 아니다. 그런 조건이 갖는 의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혼하는 시점에 사람들이 따지는 상대의 조건이나 상황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정말 잘 생기거나 예뻤는데 나이가 들면서 운동도 안 하고 신진대사가 느려지는데 회사 일 때문에 매일 술을 마셔서, 아이를 낳고 나서 가정을 챙기느라 관리할 여력이 안되어서 외모가 망가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좋은 직장에 다니거나 사업을 통해 돈을 잘 벌던 사람이 회사에서 해고되거나, 그만두거나, 사업이 갑자기 안되기 시작하면 어떨 것인가?


반대로 상대가 이목구비적으로 잘 생기거나 예쁜 건 아닌데 엄청 자기 관리를 잘하고, 꾸준히 가꾸는 편이어서 외모가 크게 변하지 않고 동안처럼 유지가 되면 어떨까? 지금 당장은 경제적으로 힘들더라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게 10년 후에 엄청나게 터져서 꾸준히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전자와 후자 중에 어떤 게 더 행복한 결혼생활인가? 당연히 후자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볼 때는 상대의 현재보다 그 사람의 태도와 시선을 보는 게 훨씬 중요하다. 상대가 지금은 좋은 직장에 다니는데 임원은 되지 못할 것 같고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정년까지 뭉개고 나서는 (이미 포화상태이기도 하고 만만치 않은 일은) 카페나 치킨집을 하겠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면 그 사람과 결혼하는 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돈을 어떤 방식으로 벌고 있고 어떻게, 왜 하는지에 대해서는 최소한 알아야 한다. 그런 것엔 관심을 두지 않고 일단 사업이 잘된단 사실만 보고 결혼했다가 알고 보니 사기꾼이나 양아치와 결혼을 한 것으로 밝혀져 이미지가 나락으로 간 연예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장 이상적이기로는 모아 놓은 돈도 있고, 집도 있는 사람이 미래에 대한 비전도 분명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사업을 물려받았거나 빚 없는 건물주가 아닌 이상 그런 사람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결혼적령기'에 어느 정도 돈을 번 회사원은 연봉 수준이 높기 때문에 회사를 쉽게 그만두지 못할 텐데 회사에 오래 있다 보면 자신의 일을 하기는 힘들어지고, 동기들 중에 한두 명만 임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30대에 잘 나가는 것으로 보이는 사업가들은 매출은 높지만 대출과 투자금을 갚아야 해서 아직 실익은 없을 가능성이 높고, 30대에 잘 나간다는 건 실패를 한 적이 많지 않다는 의미이다 보니 한 번 위기가 오면 곧바로 꺾일 수도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완벽한 사람들도 있다. 내 주위에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할까? 그 사람들은 선택의 폭이 매우, 매우 넓기 때문에 굳이 무리해서 자신을 좋다는 사람과 만날 필요가 없고, 자신이 꽂히는 사람을 선택해서 결혼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래야 상대가 본인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으로든지 당신은 가진 게 없는데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만난다면 당신은 평생 행복할까? 그럴리가 없다. 당신이 상대를 조건에 맞춰서 선택했다면, 상대도 그걸 이미 알거나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결혼생활에서 당신은 을이 될 수밖에 없다. 더 원하는 사람은 언제나 을이 되게 되어있기 때문에. 상대의 돈[만] 보고 결혼하면 상대는 돈으로 당신을 노예로 삼을 것이고, 상대를 외모[만] 보고 선택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조건이 나쁜 것이라거나 볼 필요가 없단 게 아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인간은 모두 자신의 한계가 있고, 그 한계 속에서 조건을 어느 정도는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상대를 물건처럼 취급하며 조건[만] 보고 따져서 선택한다면, 당신이 상대를 자신의 노예나 도구처럼 이용하기 위해서, 상대가 가진 것을 편하게 손에 넣고 이용하기 위해 상대와 결혼을 한다면 상대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당신의 욕구와 욕망을 이용해서 당신을 손아귀에 쥐고 이용할 것이다. 당신이 상대를 이용하려고 했던 것처럼. 당신이 그런 마음으로 상대를 선택한다면 그건 어느 순간 드러날 것이고, 그걸 알게 된 상대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본인이 상대의 스펙과 조건[만] 보는 게 아니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는 눈이 생겨야 한다. 좋은 스펙을 가진 상대가 그로 인해 오만방자하고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자신이 가진 것은 노력과 운이 같이 결합했기 때문임을 인정하고 자신보다 여러모로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상대가 어쩌다 연봉을 많이 준 회사에 들어갔거나 운이 좋아서 사업을 잘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소신과 경제관이 분명한 사람인지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고, 여러 면에서 지속가능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사람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본인이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당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 그런 걸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을 할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이 갖는 특징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성숙하고 좋은 사람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느낄 것이고, 당신이 아직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면 다른 지점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상대 탓을 하는데, 사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게 된 건 본인 탓이 가장 크다. 본인이 결혼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못하고, 본인이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본인이 상대를 선택해서 결혼을 한 것인데 그에 대해서 어떻게 다른 사람 탓만 하고 있을 수 있나?


최근에 참여한 한 작품이 편집까지 마쳐져서 감독님, 작가님과 배우들이 모였고, 그 자리에는 주연인 젊은 여배우도 함께 했다. 그분이 자신의 남편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기준에 대해 듣고, 그분이 하시는 얘기들을 통해 그분의 남편이 그분의 작품선택과 세상을 보는 시선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는 보면서, 그리고 그분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대화를 통해 알게 되면서 이 글에서 쓴 내용에 더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분의 남편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하지만 그분의 결혼생활은 돈 많고 잘 나가는 것으로 보였던 사업가들과 결혼한 연예인들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고, 그 남편 분이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결혼은 현실이기 때문에 조건만, 스펙만, 외모만 봐서는 안된다. 결혼은 현실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과 해야 행복한 결혼생활이 지속가능하다. 그게 어떤 조건, 스펙, 외모보다 우선이다. 나의 한 지인은 지금의 남편이 너무 좋은 사람인 것은 분명한데 경제관념이 없는 것 같아서 본인 인생의 10주년 계획을 짜서 보여달라고 했단다. 지금 당장 금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스펙, 외모가 좋은 사람보다는 미래에 함께 만들어가고 커갈 수 있는 기초가, 토대가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더 중요하고,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본인이 먼저 그렇게 되어야 한다.


물론, 다 가진 사람들은 존재하고 그런 사람과 가정을 꾸릴 수 있다면 완벽하겠지만, 그런 사람과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당신도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한다. 그보다는 조금 부족하지만 같이 만들어갈 만한 기초가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본인이 그런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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