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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pr 15. 2023

결혼에 감정이 중요할까?

결혼과 연애와 사랑에 대한 소고. 4편

결혼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한 가지는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것이다. 내가 앞의 글에서 결혼을 할 때는 자신을 알고, 상대를 알아야 하며 상대의 말을 들을 줄 알고, 정직하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다름이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한 것 역시 결혼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분명 현실이고,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결혼하기 전과 결혼하는 시점에는 상대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호감이 있어야만 한다. 이는 그런 감정이 없으면 두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보다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전제를 기억하자.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그렇게 자기중심적인 두 사람이 하나의 가정을 꾸리고, 서로 맞춰갈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높지 않다. 결혼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한 가지는 '큰 조건'만 보고 결정을 한다는 것인데 사실 '큰 조건'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지금 상대가 좋은 직장에 다니더라도 언제든지 그만두거나 해고당할 수도 있고, 상대의 사업이 지금은 잘 되어도 언제든지 망할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 상대의 외모는 노화가 찾아옴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건 일상의 생활습관들이다. 신혼 초에 치약 짜는 법 때문에 다툰다는 얘기는 그냥 넘어갈 얘기가 아니다. 수건을 어떻게 개고, 책을 어떻게 정리하고, 설거지를 어떻게 하며, 아침식사를 어떻게 하는 지와 같은 문제들은 아주 작은 문제들이지만 우리가 매일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일들이다. 그렇다 보니 그런 면에서 존재하는 차이는 일상에 미묘한 불편함을 주고, 그런 것들이 누적되다 보면 두 사람은 크게 다투게 된다. 어느 부부나 이런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다툼과 부딪힘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한 불편함은 노력으로 극복되지 않는다. 심지어 타협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그럴 때 그걸 넘어서게 해주는 것이 상대에 대한 사랑, 상대에 대한 감정이다. 연애할 때를 생각해 보자. 연애 초기에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데도 사랑하는 사람과 통화를 하다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상대를 집에 바래다주고 집에 돌아오려면 몇 시간이 걸리거나 택시를 타야 하는 시간에도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상대를 집에 바래다주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을 하게 해주는 것은 결국 우리의 감정이다. 


사랑이 위대한 것은, 그 감정이 중요한 것은 상대를 사랑한다는 감정만이 우리의 자기 중심성을 마비시키고 이타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연인이, 부부가 다른 관계와 다른 것은, 구분되는 것은, 그럴 수 있는 것은 그런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정은 두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쌓지 못하는 경험과 추억을 쌓게 해 주고, 그렇게 서로 이타적이고 배려하던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서 우리가 상대를 좋게 기억하게 만든다. 헤어진 연인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상대의 좋은 점만 기억나는 것은 상대와의 관계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하지만 사랑으로 인해 할 수 있었던 것들은 다른 관계에서는 거의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결정하는 과정에는 두 사람 간에 특별한, 사랑이라고 분류하는 감정이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호르몬을 언급하며 사랑의 유효기간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자신의 호르몬작용에 대한 인간의 인지능력을 과대평가한 의견이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18개월에서 30개월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뜨겁고, 열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도파민, 엔도르핀, 페닐에틸아민 등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처음만큼 분비되지 않기 때문인데,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음, 도파민이 분비되고 있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상대를 사랑한다고 느끼고, 사랑이란 감정은 때로는 불타오르듯 뜨겁지만 때로는 아련하고, 때로는 평안하다. 사랑은 하나의 감정 상태와 호르몬 작용으로 설명될 수 없단 것이다. 


그러한 사랑의 감정은 서로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옥시토신과 평안하고 안정감을 주는 세로토닌의 분비로 유지된다.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옥시토신 수치가 높은 부부는 의식적으로 눈을 맞추고 스킨십도 자주 하는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이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감정적 상태'이지 특정 호르몬의 작용이 아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의 감정적 상태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정의하지 못한다. 우리가 상대에게 분노하면서도 사랑하는 것 같은 감정을 느낄 때도, 화가 나는 건지 힘든 건지 모를 때도 있지 않나? 우리는 이처럼 감정적인 상태를 기준으로 상대와의 관계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때문에 특정 호르몬 작용이 일정 기간 이후에 약해진다는 이유로 사랑의 유효기간을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만약 서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만 사랑이라면 사랑에는 스킨십 밖에 없단 말인가? 그런 논리에 의하면 상대와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아파하는 건 사랑하는 마음이 아닌가? 


'사랑'은 정의하기가 어렵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사랑을 에로스, 스토르게, 필리아, 프래그마, 루두시아, 필로시아, 아가페와 같은 방식으로 분류하겠나? 물론, 오래된 연인과 부부가 상호 간에 매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새로움을 갱신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굉장히 바람직하고 긍정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사랑하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는 둘이 함께 한 경험과 추억, 신뢰를 바탕으로 생기는 감정은 두 사람 간에 존재하고 지속가능하다. 이 사실은 60-70대가 넘어서도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들이 입증해주고 있지 않나?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면 그분들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결혼을 결정할 때 두 사람이 상호 간에 어떠한 감정적인 상태를 갖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최소한 다른 누구와의 관계에서도 갖고 있지 않은 뜨거움, 평안함이나 안정은 두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한단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그래야만 두 사람이 일상에서 반복되는 작은 불편함들에 대해서 넘어가지거나 타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의 도움 없이는 자신이 갖는 한계를 넘어서서 타협할 수 없다. 


물론, 사랑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결혼은 현실이기 때문에 다른 조건들도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은 '이상형의 허와 실'을 다루는 내용에서 다룰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당신이 만났던 연인이나 배우자가 이상형에 딱 들어맞는 존재인가? 그랬던 사람들도 있고 아니거나 아닌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상형이 아닌 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은 항상 불행했나? 이상형을 만났을 때는 모든 것이 완벽했나? 아니었을 것이다. 이상형이 아닌 사람을 만났을 때도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고, 이상형을 만났을 때도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완벽하지 않은 상대와의 만남을 지속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상대에 대한 감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랑이 동반하는 감정은 우리의 이성과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정의되는 감정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결혼을 할 때는 두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 존재해야만 한다. 두 사람은 그래야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다. 그러한 감정의 존재는 행복한 결혼생활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그러한 감정이 없는 결혼생활은 두 사람의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언젠가는 망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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