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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un 20. 2023

동거와 결혼

결혼과 연애와 사랑에 대한 소고. 10편

최근 몇 년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거를 해보면 서로를 잘 안 상태로 결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할 확률이 더 높다'라고 생각하는 느낌이다. 얼핏 들으면 분명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들린다. 연애를 할 때는 서로를 많아야 일주일에 2-3번, 많은 경우 일주일에 1번, 적으면 1달에 2-3번 보고, 통화나 문자, 카톡을 통한 연락도 정말 엄청나게 해야 평균적으로 하루에 1시간 이상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동거를 하면 서로에 대해서 분명히 많은 부분을 알게 될 것이다. 특히 상대의 삶의 패턴을 알 수 있으니 동거를 해보는 것이 조금 더 서로를 잘 알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동거를 하는 보수적인 환경과 분위기에서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어떻게 동거를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지금은 동거는 할 수도 있고 하지도 않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동거에 대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어찌 보면 우리 시대에 결혼은 형식적인 면이 강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가에 두 사람이 한 공동체임을 공식적으로 신고하고, 개인을 넘어 가족 간의 결합으로 나가는 것이 결혼이라면 동거는 두 사람 간의 결합적인 성격이 더 강하단 측면에서 동거와 결혼은 분명히 다를 수도 있지만 일상생활을 기준으로 본다면 동거와 결혼은 별반 다를 게 없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동거를 하는 것을 좋거나 결혼 전에 반드시 해 봐야 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아무리 동거를 해 봤다고 해도 두 사람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수록 서로에 대해 몰랐던 면들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거를 결혼의 전단계라고 한다면 동거는 어느 정도 기간 동안 할 것인가? 1년? 2년?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갖고도 사람은 1년 정도는 자신이 불편하거나 하고 싶지 않은 것을 1년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신혼부부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왜 1-2년은 마냥 행복하게 지내다 3-4년 차에 싸우겠나? 그건 첫 1-2년은 그들이 서로에게 여전히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배려했지만 그 후에 긴장감이 풀리면서 그들의 진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하기 전에 상대를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지를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단순히 그 사람에 대해 아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은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지게 되다 보니 두 사람은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상대도, 자신도 조금씩 변할 수밖에 없다. 그게 변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면에 내재되어 있던 무엇인가가 구현되고 발현되어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두 사람이 서로 느끼기에 '상대가 변했다'라고 느낄 정도의 변화는 두 사람이 오래 함께할수록 일어날 수밖에 없다. 


동거를 통해서 두 사람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상대가 치약을 어떻게 짜고, 정리를 어떻게 하며, 빨래와 청소는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하는지, 그리고 데이트를 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정도다. 그 외에 상대에 대한 나머지 것들은 사실 1-2년을 살아서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은 상대가 사는 집에 가거나 두 사람이 여행만 가도 알 게 되거나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에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대화를 통해 공유할 수도 있는 것들이다. 개인적으로 "결혼을 해도 될지를 판단하기 위한 동거"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동거를 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들은 사실 두 사람의 관계가 건강하고 서로에게 솔직하다면 동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는 왜 동거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을까? 나는 '결혼 전 단계로서의 동거', 즉 뭔가 목적이 있는 동거가 아니라 그냥 동거 그 자체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할지 여부는 아직 모르겠고, 명확한 목적은 없지만 일단 상대를 너무 사랑하고 더 많이 보고 싶기도 하고 경제적인 이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에 두 사람이 동의를 해서 동거를 한다면 그건 좋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연애를 하다 자연스럽게 상대와 같이 살고 싶어 져서 동거를 한다면 그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은 그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두 사람이 동거를 하다 보면 결혼까지 하고 싶을 수도 있고, 아이가 생겨서 아이에게 보호망을 주고 싶어서 결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또 반대로 동거를 하지 않고 서로에 대해 모르는 면들이 있지만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가정을 꾸리겠다고 결정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거와 결혼을 굳이 연결시켜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아니 그래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생각해 보자, 당신이 상대와 결혼을 해도 될지를 살펴보기 위해 동거를 한다면 상대에게 어떻게 대하겠는가? 동거가 결혼을 위한 실험실이라는 전제는 두 사람이 누군가와는 반드시 결혼하겠다는 의지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고,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 결혼을 염두에 두고 동거까지 한다는 것은 상대와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자리 잡고 있단 의미다. 그렇다면 당신과 상대는 동거생활을 어떻게 할까? 정말 편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다 보여주면서? 아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상대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이 평소에는 하지 못하는 것들을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지속가능하지는 않은 노력은 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교적인 가족 문화 때문에 그런 요소가 개입할 확률이 더 높은데, 이는 동거는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지만 결혼은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동거할 때는 양가의 가족들이 요구하지 않던 것들을 결혼 후에는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결혼 전에 상대가 하는 말은 믿지 않기를 바라는데, 이는 결혼을 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라도 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일 년에 제사를 12번씩 드리는 집의 장손이 '우리는 직접 음식을 하지 않고 사서 할 거고 너는 일 안 해도 된다'는 식의 말을 할 수도 있는데 그건 그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실현될 수가 없다. 


동거와 결혼을 엮어서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은 이해한다. 어떻게든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가 투자를 할 때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그런데 투자를 10년, 20년 하다 보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인해 한 회사의 주가가 갑자기 오를 때도 있고 잘 나가던 회사가 상장폐지되기도 하듯이 결혼생활은 두 사람의 관계와 더불어 두 사람을 둘러싼 외부요인들로 인해 다양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결혼은 '평생'을 하겠다는 약속이다. 10년 전, 아니 5년 전에 자신이 했던 생각과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때 했던 생각들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게 몇 가지가 될까? 부모님이나 선생님, 직장상사의 20년 전을 상상해 보자. 그분들은 20년 전에도 지금과 같은 생각을 갖고 지금의 모습을 갖고 있었을까? 40-50대에 꼰대인 사람들도 20대에는 매우 개방적인 사고를 가졌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운동, 미국에서는 시민운동을 했던 사람들 중에 그 마음과 삶이 변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직면하여 변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대부분 사람들은 환경과 상황의 영향을 받으며 어느 정도는 변하기 때문에 그들이 나쁘거나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결혼생활을 하면서 두 사람이 어느 정도는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 당장 상대를 얼마나 실제로 알거나 안다고 생각하는지는 결혼생활에 생각보다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상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알겠다는 건 헛된 수고일 수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상대가 어떤 기초 위에 서 있고, 어떠한 상황에 어떠한 방향으로 반응하며, 어떻게 듣고 말하는 사람인가'일 것이다. 이 얘기는 뒤에 쓸 글들에서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동거를 하게 된다면, 그 뒤에 결혼이라는 목적을 두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런 동거는 결혼생활 후 1-2년 정도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평생을 놓고 보면 그때 습득한 지식 자체는 생각보다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물론, 동거를 해 본 후에 행복하게 잘 사는 부부들이 있다. 하지만 동거를 하고 나서 결혼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한 사람들도 있고, 동거를 해보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동거를 해 본 후에 행복하게 사는 부부들은 동거를 안 했어도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다. 동거는 그냥 동거로 놓고 보자. 굳이 거기에 결혼을 엮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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