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신의 아들로 믿는 이유] 27편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한 프로그램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이단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넷플릭스에서 다룰 정도의 기독계열의 이단이 그 정도라면 그보다 덜한 이단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이단'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단의 사전적 의미는 아래와 같다.
이단 : 어떤 종교집단의 내부에서 정통교리에서 크게 벗어나는 주장에 대하여 정통자측에서 부르는 배타적 호칭
이 정의에 의하면 종교집단에서 정통교리에서 크게 벗어나는 주장이라고 인정을 받아야 이단으로 분류되게 된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교리가 '크게' 벗어나지만 않으면 그 교회는 이단이 아닌 게 되고, 아무리 이단적인 교리를 갖고 있어도 종교집단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이단이 아니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반대로 생각하면 '교회'로 불리는 곳들 중에서도 정통교리에서 '조금' 벗어난 교회들도 존재하고, '많이' 벗어난 교회들도 종교집단에서 이단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가능성이 높단 것을 의미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다큐를 보면서 쉽게 분노하지 못했다. 그런 이단이 생겨나는 뿌리에는 한국 특유의 기복주의적인 신앙이 있다는 게 보였고, 오늘날 한국에 존재하는 교회들 중 적지 않은 교회들도 그런 문화를 갖고 있단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최근에 지인과 오랜만에 연락을 하던 중에 한 교회에 등록을 하려고 갔더니 그 교회에서는 주거 형태가 아파트인지 주택인지 어느 동네에 사는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고 한다. 그게 교회에 등록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성도를 성추행한 목사가 나가서 새로운 교회를 차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목사를 따라 그 교회에 가는 행태는 그 다큐에 나온 이단들과 얼마나 다른가? 그 목사가 새로 교회를 연 지역 인근에 회사생활을 하는 지인은 그 근처에 있는 고급식당이나 뷔페에 회식으로 가면 종종 그 목사가 식사를 하고 있는 걸 봤다고 한다. 그 교회는 청년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목회자가 그들의 헌금으로 호의호식하는 건 성경적일까?
이런 사람들도 '그러려니...' 싶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일정 규모가 되는 교회들의 경우 세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교회의 경우 교회 세습이 문제가 되자 꼼수로 아들을 담임목사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나? 그 교회가 만약 회사라면 문제가 덜 될 수 있다. 아버지가 주식을 다 갖고 있는 걸 아들한테 준다면 자신의 소유를 아들에게 넘겨준 것이니까. 하지만 교회는 사업체도 아니고, 주식회사도 아니다.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란 것이다. 그런데 그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편법을 통해서 자식에게 넘겨주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나? 더군다나 교회는 성도들의 헌금으로 운영되지 않나?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교회들도 냉정하게, 개신교적인 교리에 따르면 '이단'에 속한다. 이는 그러한 방식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삶을 통해 보여주신 것과 완전히 반대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어떠한 집단이나 조직도 소유하지 않으셨고, 이곳저곳을 떠도시면서 기득권 세력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힘들고 약한 자들과 밥 먹고, 대화하셨다. 예수님은 힘 있는 자나 돈 많은 자들을 따라가고 자신의 세력을 키우지 않으셨다. 오히려 돈이 많은 청년에게 재산을 다 포기하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목회자가 자신의 성적욕구를 제어하지 못해 성추행을 한 뒤에 다른 교회를 만들어 호의호식하는 것도 모자라서 성도들의 헌금으로 만들어진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행태가 어떻게 성경적이고, 개신교적 교리에 맞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많이 듣는, 넷플릭스에서 나온 수많은 이단들은 사실 교회들이 바로 섰다면 생기지 않았을 조직들이다. 이단은 완전히 새로운, 개신교나 기독교, 교회를 모르는 사람보다는 교회에서 상처받고 배신당한, 교회에서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말씀에 대한 갈급한 사람들을 타깃으로 세력을 키워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 교회들이 성경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셨던 것처럼 사역을 하고 공동체를 만들어 나갔다면 그 사람들은 이단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신교 신자와 목회자들은 사람들이 왜 '정통'이라고 불리는 교회들을 빠져나가 이단에 합류하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그들이 그런 집단에 빠지는 것은 결국 우리나라에서 스스로를 '정통'이라고 부르는 교회들이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고, 제대로 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단이 생기는 것은 이단의 탓이 아니라 이 땅에서, 우리나라에서 교회들이 교회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개신교 신자나 목회자라면 이단을 비판하고 잡아내기도 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서 '내가 있는 영역에서는 말씀이 얼마나 제대로 선포, 해석, 공부되고 있고 공동체가 얼마나 건강하게 형성 및 유지되고 있는가?'를 고민하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단들의 뿌리 또는 시작점은 우리나라 교회들의 '기복주의적인 신앙'의 영향이 작지 않다. 우리나라 교회들 중 적지 않은 교회들은 껍데기만 교회와 성경을 가져오고 실질적으로는 샤머니즘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건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되고 형통하며 복을 받을 것이다'와 같은 내용의 설교나 이야기를 성도들은 물론이고 목회자들을 통해서도 적지 않게 들을 수 있는데서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주장이야말로 성경을 기준점으로 잡으면 '이단'이다. 성경에서는 어디에서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성경의 대부분 내용은 오히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해 고통받고 핍박받으며 울부짖는 자들의 이야기다. 그런 성경을 앞세우고, 그런 성경을 읽고 믿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교회에서 구하면 받을 것이고, 헌금을 내면 잘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성경과 개신교 교리에 맞지 않지 않은가? [예수천당, 불신지옥]과 같은 주장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그런 식의 서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그렇게 단순화해서 가르치는 것 자체가 엄연히 말하면 이단적인 입장이다.
한국교회들이 개신교적인 관점을 그런 방식으로 왜곡해 놓다 보니 사람들은 '우리를 따르면 잘 먹고 잘 살 거야.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성경에서 말해주고 있어'라면서 성경을 왜곡해서 해석하는 이단들의 꾐에 넘어간다. 만약 우리나라 교회들이 그러한 기복주의적인 신앙적 기초를 형성해 놓지 않았다면 사실 사람들은 이단의 그러한 유혹에 넘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나라 교회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성경해석, 그리고 교회를 '경영'하려는 행태들이 이단들이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단은 연구하고, 배척하고, 사람들이 분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정말 한국교회를 위한다면, 진심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와 함께 현재 한국교회의 문화와 가르침을 바로잡기 위해 비판하고 싸우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교계 안에서는 그러한 자성의 목소리보다는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필요 때문에 대형교회들에 의지하는 모습을 더 쉽게,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젊은 목회자들은 '나도 현실적으로 먹고살아야지'라면서 '대형교회에 취업하는 것이 목표'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기도 한다.
그게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삶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