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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un 26. 2023

소울메이트는 존재할까?

결혼과 연애와 사랑에 대한 소고. 13편

언젠가부터 '소울메이트'란 표현이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소울메이트'란 표현이 자세히 생각해 보면 개념이 모호하다. 영혼의 단짝이라면 어때야 할까? 만약 소울메이트가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알고 자연스러운,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관계를 의미한다면, 그런 관계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


이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주위에서 소울메이트를 만난 사람이 있거나 본인은 소울메이트를 만났다고 믿었다면서 말이다. 그런 입장의 사람에게는 몇 가지를 물어봐야 한다. 그 소울메이트인 커플이 만난 지 얼마나 지났나? 사람들은 사실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수년까지도 호르몬 작용이나 상대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맞춰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정말 모든 것이 처음부터 완벽하게, 모든 것이 맞는지 여부는 조금 더 긴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인생이 어느 한 시점에 상대가 소울메이트라고 믿었던 두 사람도 이별을 하거나 수년이 지난 후에 '소울메이트는 무슨 소울메이트'라며 비아냥거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겉으로는 소울메이트라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두 사람이 항상, 완벽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크게, 소리 지르고 이별을 고려할 정도로 다투지는 않을지 몰라도 크고 작은 갈등을 겪지만 그것을 말로, 타협과 협의를 통해 잘 맞춰나간다. 거기에 더해 쇼윈도 소울메이트도 적지 않게 존재하는 게 현실이 아닌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자신의 흠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완벽한 '척' 해 보이는 사람들 말이다. 


커플이든, 친구관계든 '소울메이트'란 표현을 붙이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사실 본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몇 가지가 잘 맞으면 그러한 표현을 붙인다. 같은 여행지를 좋아하거나, 음식이나 패션에 대한 취향 정도가 비슷하면 상대를 자신의 소울메이트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단 것이다. '이렇게 나랑 많은 게 맞는 사람은 처음 봤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건 어쩌면 그 사람이 만난 사람들이 그만큼 적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취향으로 여길 정도의 장소, 음식이나 패션이 존재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겠나? 그렇다면 그런 것들이 잘 맞는 사람은 세상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반드시 존재한다.


물론,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게 쉽거나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럴 확률보다는 여행지, 음식, 패션 중 한 두 가지만 잘 맞고 나머지는 맞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훨씬 많을 것이다. 다만, 그 정도가 잘 맞는다고 해서 '소울메이트'라고 하기 힘든 것은 세상에는 3-4가지 이상의 항목들이 존재하고, 그 모든 게 다 100% 맞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같은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같이 졸업한 형제, 자매나 남매도 다른 지점들이 있는데 어떻게 삶의 모든 면들이 다 맞을 수가 있을까? 


친구들의 경우 그 정도 수준으로 잘 맞아서 서로를 '소울메이트'라고 부르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친구들은 한 번씩 모임 때 보거나 자주 봐도 한 달에 3-4번 정도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런데 이게 연애를 넘어서 결혼까지 가게 되면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이는 만약 상대가 정말 자신의 소울메이트라고 믿고, 절대로 싸울 일이 없고 완벽한 부부가 될 것을 기대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실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매일 보면서 한 공간에 사는 두 사람이 모든 면이 '완벽하게' 맞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연애를 하면서 상대와 그런 느낌이 든다면 그건 아마도 두 사람이 서로에게 완벽하게 솔직하지는 않거나 아직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두 사람이 너무 잘 맞고, 결혼하면 완벽할 것 같아서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면 한 걸음 물러나서 두 사람의 관계를 돌아보길 권하고 싶다. 이는 두 사람이 그 정도로 완벽하다고 여기는 건 결혼 후에도 유지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 친구의 경우 5년을 연애하면서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서 상대가 완벽한 배우자감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단 하루도 싸우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친구는 결혼한 후에 나를 만날 때면 항상 '결혼 같은 건 하는 게 아니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만약 소울메이트를 '서로 맞춰나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는 관계'로 정의한다면 이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서로 다름이 있지만 두 사람이 모두 잘 타협하고 맞춰나갈 수 있는 사람들일 뿐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포용력이 있고 많은 면에서 결이 비슷하다면 두 사람은 큰 다툼이나 갈등을 경험하지 않을 수는 있다. 예를 들어 나와 까미노를 같이 걸었던 한 부부는 결혼한 지 몇 년이 되었는데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 간에 의견의 불일치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더라. 그들은 서로의 다름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존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갈등이 커지기 전에 한 걸음씩 물러나서 양보함과 동시에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 정도로 맞추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은 현실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는 '소울메이트'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의 함정은 그런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는지 여부는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느 정도까지 포용할 수 있냐'에 달려있단 것이다. 사람들은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싶단 말을 할 때 상대의 조건과 성향만 따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눈에 보이고 따질 수 있는 조건과 성향만 보고 상대를 골라도 본인이 상대와의 다름을 포용해 주고 타협할 줄 모른다면 그 관계는 절대로 '소울메이트'가 될 수 없다. 이는 아무리 비슷하고 닮은 사람들도 어느 정도의 다름은 있을 수밖에 없고, 그걸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받아주고 존중할 수 있어야 그 관계가 건강하고 지속가능하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당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완벽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상대가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당신과 만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연애하는 수준에서는 거기까지도 훌륭하지만, 결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를 넘어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상대를 '내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도 잘 맞는 소울메이트'로 여기고 있다면 결혼을 조금 미루고 연애를 더 해보기를 권한다. 결혼은 두 사람이 갈등도 경험하고, 서로 다른 면들을 어느 정도 이상 인식하고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두 사람이 모두 포용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서로 노력해서 맞춰지고 닮아가는 관계는 존재하지만, 처음부터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게 맞는 사람 같은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나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장하고 살아가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나? 두 사람이 결혼한 후에도 대화를 통해 상대의 직접경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를 반복하지 않는 이상 부부는 맞춰지거나 닮아갈 수도 없다. 그 과정도 노력이 필요한데, 너무 많은 사람들은 그런 노력을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한다. 소울메이트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노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냥 되어지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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