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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ug 06. 2024

안세영 선수의 인터뷰를 보며 든 생각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스포츠를 좋아하는 편이다. 어느 정도냐면 나는 고3 때 여름방학 내내 올림픽을 보다가 대학입시를 망쳤고, 재수를 해서야 대학을 갔을 정도로 나는 종목을 크게 가리지 않고 스포츠를 좋아한다. 어느 스포츠에도 마니아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모든 스포츠를 보는 잡식성이라는 표현이 내게 맞지 않을까 싶다.


이번 올림픽도, 특히 초반에 우리나라 선수들 성적이 예상보다 잘 나오면서 내 일상을 망치고 있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금메달을 꼭 땄으면 했던 선수가 안세영 선수. 옆으로 눈을 돌릴 수도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하는데 앞만 보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안세영 선수만은 꼭 금메달을 땄으면 했다. 어제는 휴대폰으로 결승전을 보느라 헬스장에서 정작 내 운동은 하지 못했을 정도로 나는 안세영 선수를 응원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소식이 얼마 지나지 않아 폭탄발언으로 가리어지는 것을 보며 개인적으로 매우, 매우 안타까웠다. 그리고 안세영 선수의 인터뷰 안에서 나의 사회초년생 시절이 보여서 여러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회사에 입사했던 해에 경영지원부문 전체 체육대회가 있었고, 당연히 막내인 내가 홍보실의 실무를 담당했는데 체육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느끼기에 부당한 내용이 있었고 나는 체육대회를 총괄하는 회계팀 선배에게 '이건 잘못된 것 아니냐'면서 따져 물었다. 그러자 그 선배는 일면식도 없는 나를 1층으로 불러서 커피를 사주면서 내 말이 다 맞는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모든 게 원리원칙대로 될 수는 없다는 말을 해주셨었다. 그 사실이 알려진 후 팀선배는 내게 난리난리를 치더라. 회계팀에 잘못보이면 예산을 받을 때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데 개념 없이 굴었다면서.


안세영 선수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나는 정확히 모른다. 귀국해서 자세한 얘기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수년간 안에 쌓인 게 많은 것은 분명하지 않을까 싶고, 안세영 선수의 성향을 봤을 때 그 생각이 부당하거나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더군다나 다른 협회들이 운영되는 방식도 보면서 비교가 되는 부분들에 대해 여러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하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어림짐작되는 부분들이 있다. 최근에 축구협회에서 발생한 문제들처럼 소통은 안되고, 목표지향적으로 결과만 잘 나오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어르신들이 뭔가를 밀어붙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안세영 선수의 성취와 위치가 내가 신입사원일 때와 다르기 때문에 그 파장이 다를 뿐, 내가 회계팀 선배에게 따졌던 것과 안세영 선수의 발언은 그 뿌리가 같을 확률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차이가 한 가지 있다면, 나는 그런 나를 이해해 주고 커피를 사주면서 설명해 줄 선배가 있었고, 안세영 선수는 주위에 그런 사람이 없어 보인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안세영 선수 주위에는 내게 난리를 쳤던 팀선배와 같은 사람들만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흘러나오는 기사들을 보면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건, 처음에 안세영 선수가 부상을 당했다고 했을 때 협회에서는 '운동선수가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며 공백기를 갖지 말고 대회에 출전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결과중심적인 우리 사회의 특성상 그런 사람들은 어느 조직에나 있으니까. 축구협회가 감사를 받게 된 것도 사실 그 이면에 '과정은 어떻게 되든지 결과만 나면 되고 이 풍파는 다 지나갈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로 배드민턴 협회에도 '결국 올림픽 금메달 따고 나면 불만은 사라질 거야'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을 수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반대로 안세영 선수의 올림픽 성적과는 무관하게 ‘그렇게 아프다면 올림픽 전에 나가지 마라’고만 말했을지도 모른다. 안세영 선수가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1위로 올림픽에 나가고 싶었다고 하는 걸 보면 무릎을 관리하는 지원은 없이 방치했을 가능성도 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배드민턴 협회에도 그럴만한 사정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정이 없었다면 이 글의 모든 내용들은 말하나마나이고...). 뉴스들을 보면, 국제배드민턴협회에서 세계랭킹 1-16위인 선수는 대회에 출전하지 않으면 협회에서 벌금을 5천 불 내도록 정하고 있다는데 그 지점과 함께 '우리 선수가 우승을 많이 해야 배드민턴이 대중들에게 인기도 많아진다'는 생각이 안세영 선수와 대립각을 세우게 만들지 않았을까? 한 번에 600만 원 정도(5천 불)이면 그 자체로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또 엄청나게 큰돈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배드민턴 협회에 뭐 그리 돈이 많겠나? 그리고 한 명에게 예외를 허락해 주면 다른 선수들도 같은 요구를 할 것이고, 운동선수들은 보통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에 협회에서 무리한 요구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은 분명히 있다. 상식적으로 부상을 당하거나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으면 랭킹이 1-16위 사이여도 출전을 못하는 경우가 있을 텐데 국제배드민턴협회에 관련 조항에 예외가 없었을까?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배드민턴을 비롯한 비인기종목들에 관심을 갖는 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정도인데, 다른 대회에 우승하는 게 배드민턴의 인기와 관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을까?


다 그렇다고 치고, 배드민턴협회에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치자.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는 건 세상에 말이 안 되어 보이는 것들 중에 적지 않은 경우에는 그 이면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드민턴협회의 현실에 비춰봤을 때 정말 피치 못할 상황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배드민턴협회가 잘못된 것은, 그런 사정이 있다면 최소한 누군가는 그런 사정을 안세영 선수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잘, 친절하게 설명하고 설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가 하고픈 이야기들에 대해 한 번은 고민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봅니다]라는 안세영 선수의 인스타 스토리에 올라온 글은 누구도 안세영 선수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단 것을  보여준다. 2년 전에 다친 무릎이 올해 상반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 정도의 부상이라면 얼마나 심각한 부상인가? 그런 상황에서 안세영 선수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설명과 설득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단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잘못되어 보이는 것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단 것도 알게 된다. 그렇다  보니 나는 어느 협회나 집단, 개인이 완벽하지 않단 사실에 분노하지도 않고, 그걸 적극적으로 바꾸려고 노력도 하지 않게 되더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길을 가기 위해선 누군가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설명해서 납득을 시키는 노력은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가장 부족한 게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는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댓글을 달고, SNS에서 감정을 배설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관점에서만 말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 이건 분명히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축구협회가 지난 수개월간 시끄러운 것도, 안세영 선수가 이번에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사람은 없고 권위와 예전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고 강압적으로 끌고 가려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안세영 선수는, 자신이 그렇게 평생 바라보고 달려온 올림픽 금메달을 딴 느낌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즐기고 한국에 돌아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자세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지금은 너무 이 이야기만 부각되는 게 안타까운 것 같더라. 그렇게 금메달만 보며 달려온 선수가 인생의 목표를 달성한 뒤에 그 성취를 오롯이 누리지는 못하는 것 같아서 그 인터뷰와 인스타 스토리를 보고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안세영 선수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경기가 끝나자마자 한 것은 주위에 어른다운 어른이, 정말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그 이야기는 귀국 인터뷰나 본인이 지금 이 순간을 어느 정도 누린 뒤에 하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금메달을 딴 직후에 이  이야기를 하면 초점은 당연히 이 이슈에 머물 수밖에 없는데, 세상은 원래 그런데 아직 나이가 어린 안세영 선수는 이런 흐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게 안세영 선수의 잘못은 절대로 아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이었던 박주호 선수와는 다르게 아직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았고, 경험이 적으며, 어리기 때문에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흐름으로까지 이어지고 본인의 어떤 말이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가져올지를 본인이 예상하지는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 키를 옆에서 잡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없다는 게 이 상황과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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