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많았다. 학기가 시작되면, 강의 준비를 하고 강의를 하기 위해 오가느라 글을 쓸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할 텐데 방학이 다 끝나가는 지금까지 글이 나오지 않아서 힘들었다. 브런치에서의 글들도 그렇고, 써야 하는 다른 글들도 많은데 컴퓨터 앞에 앉아도 글이 나오지 않았다. 브런치에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매일 브런치에 글 3-4개를 쓰면서 학위논문까지 썼는데 왜 지금은 글이 나오지를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신체와 뇌가 늙었다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었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분들도 계속 글을 써내시지 않나?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계엄과 관련된 헌법재판 영상들과 양 정당의 반응들이 내게 깨달음을 줬다.
난 정치에 관심이 전혀 없다. 특히나 국내정치에는 더더욱. 오죽하면 학부 전공이 정치외교학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정치와 관련된 과목은 거의 안 들었을까? 나는 정치경제나 국제정치에 관심이 있었고, 국내정치를 보면 화가 나서 관심 자체를 두지 않았었다. 오죽하면 야당이 수십 차례 탄핵을 이어갔다는 사실을 계엄 이후에 알았을까? 그리고 나는 대선에서 단 한 번도 1-2번 후보에게 표를 준 적이 없을 정도로 지지하는 정당도 없다. 나는 항상 정책토론회와 공약들을 보고 상대적으로 포퓰리스트적이지 않고 일관성을 보이는 후보에게 표를 줬다.
그런데 이번 계엄은, 아무래도 헌법을 전공했다 보니 재판 영상들과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보게 되더라. 헌재 결정이 예측가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변수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양측의 의견을 듣고 내 나름대로 발언을 어떻게 듣고 평가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도 한다. 계엄과 관련된 주제로 논문을 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달 이상 정치권의 이야기를 follow up 하면서 느껴지는 갑갑함이 있다. 나는 평소에 수업에서 '정치인들은 사익을 추구하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민주주의 시스템은 그런 정치인들의 그런 성향을 국민들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방식으로 궁극적으로 공익이 실현되도록 만들어져 있다'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왔다. 그런데 그런 정치인들의 행태와 발언들을 계속해서 듣다 보니 화도 나고 분노도 치밀어 오르더라. 어쩌면 양쪽이 다 그렇게 내로남불의 극단을 달릴 수 있을까? 어떻게 양쪽 모두 상대에 대해서는 그렇게 객관적이고 맞는 말을 하면서 자신들의 이야기에는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게 아닌가 싶더라.
그들이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 고민해 봤다. 그들 대부분은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를까?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유독 편향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의 내로남불을 시전하고 있는 지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
어떤 형태로든지 자신의 욕구와 욕망에 사로잡혀 있고, 그 욕구와 욕망에 잡어 먹혔기 때문이다. 내 자리를 보존하고, 내가 더 영향력을 발휘하고, 내가 살아남아서 더 많은 것을 내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 내가 칼을 휘두르는 위치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그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음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서 본다. 정치판에서는 권력욕이 사람들을 자신의 노예로 부리고 있고, 그 욕구와 욕망이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음을 거의 모든 쟁점에서 발견한다.
그 지점에서 글이 써지지 않는 나 자신을 돌아봤다. 나는 과연 다른가. 내가 언제부터 글이 써지지 않기 시작했는 지를 돌아봤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가장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부터 글을 쓰지 못하고 있더라. 브런치에서는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아 책이 출판된 이후, 논문은 실적을 쌓아서 학교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후, 드라마 대본은 이제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가지 않고 내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된 이후에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글로 무엇인가를 이뤄야 한다는 마음을 먹은 뒤부터는 그 마음이 너무 커져 욕구와 욕망으로 변질되어 그것들이 나를 지배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글을 쓰고 있지 못하고 있단 것을 깨달았다.
그전까지 내게 글은 순수하게 나의 생각, 나의 일부를 정리해서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글로 뭔가를 이뤄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글들이 변질되는 것을 느꼈고, 그 변질된 글들을 보면 '이건 너무 남을 의식했고 자의식이 과잉인 글인데'라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자기 검열을 하기 시작하자 글을 남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넘어 쓰지도 못하는 상태가 됐다. 글 자체를 쓰고 싶은 게 아니라 글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려 하면서 내 안에서 본말이 전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과연 내가 그렇게 비판적으로 봤던 정치인들과 내가 얼마나 다른 지를 돌아봤다.
그 욕구와 욕망을 내려놓기 위한 노력을 하기로 시작했다. 조금 더 힘을 빼고, 글 자체에만 집중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고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땀, 한 땀 편하게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 글이 그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