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작년 상반기에 법을 영호남을 오가며 가르쳤습니다. 헌법도 가르쳤죠. 매우 조심스럽더군요. 고향이 서울인 사람의 입장에서는 헌법 수업의 내용 중 정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는 부분에 대해 오해를 받지 않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대선에서 표를 준 사람은 대통령이 된 적이 없다고. 사실입니다.
이 얘기를 들은 지인은 놀라며 제게 묻더군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도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표를 안 줬냐고. 안 줬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내놓은 정책과 토론회에서 토론하는 모습에서 신뢰가 느껴지지 않아서 저는 1, 2번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들 중에 일관성이 느껴지는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그 분의 아버지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5년을 보내야 할 지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고,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을 때는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었기에 촛불집회에 나가 있지는 못하고 잠시 군중 뒤에 머물렀다 당시에 혼자 살던 원룸으로 돌아와 시험준비를 하기 위해 책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취방에서 헌재의 결정을 들으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조기대선이 현실화 될 경우 현재 국회의 과반을 차지하지 않고 있는 정당에서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특정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거나, 특정인에 대한 호감이나 악감정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권력과 권한을 한 집단이 독점하면, 그 공동체는 언제든지 망가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정부기관들이 상호 간에 견제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는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정당이 입법부와 행정부를 장악하여 권력분립이 의미가 없어질텐데, 그렇게 되면 견제나 토론, 고민과 타협 없이 한 정당이 일방적으로 법과 정책을 마련함으로 인해 다음 총선까지 우리가 실질적인 독재와 같은 상황을 경험할 수도 있단 사실이 두렵기 때문에 저는 균형이 맞춰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늘 그러했듯이 후보들의 공약을 보고 가장 현실성 있는 공약을 내세운 후보 개인에게 투표할 겁니다.
여기까지만 말씀드리면 '그러면 대통령 탄핵심판이 기각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묻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번에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는다면, 그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그건 대통령이 야당에 경고를 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하는 것이 앞으로 규범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단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 탄핵심판에서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았다고 칩시다. 그리고 다음 대선에서 현재 야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번에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는다면, 우린 대통령이 된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엄을 선포해 버리는 국가에서 살게 될 수 있습니다. 탄핵에 반대하시는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지지하는 정당이 아닌 다른 정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들이 계엄에 대한 권한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나요? 그 정도로 지금 거론되는 유력 대통령 후보들을 신뢰하십니까?
탄핵심판과 관련된 여러 논란이 많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제 개인적인 생각들이 있지만, 그 지점들에 대해서는 서로 생각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법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말들도 많지만 그것 역시 현실에선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건 다 법기술적인 얘기고 사람마다 그에 대한 생각 역시 다를 수 있으니까요.
정쟁으로 인해 이번 탄핵심판에서 간과되는 사실 중 한 가지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선례'를 남긴다는데 있습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과 이번 탄핵심판이 다른 지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의 두 탄핵심판은 두 전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해서 제기된 게 아니었습니다. 이와 달리 이번 탄핵심판은 대통령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언제, 어떻게,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는 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번 탄핵심판은 단순히 현직 대통령 개인에 대한 심판이 아닙니다. 이는 탄핵심판은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대한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탄핵심판은 앞으로 개인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결정할 수 있는 권한범위를 결정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가장 싫어하거나 대통령이 절대로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을 한 명만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이번 탄핵심판이 기각된 이후에 그 사람이, 아니면 그 사람과 같은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은, 그 사람이 계엄을 선포하지 않을 것을, 계엄을 선포한 뒤 실질적인 독재를 하지 않을 것을 신뢰할 수 있나요?
탄핵심판에 반대하실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탄핵심판은 어느 개인이나 정당을 심판하는 문제를 넘어, 앞으로 우리가 어떤 나라에서 살 것인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염두에 두고 인용과 기각에 대한 입장을 취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