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를 이 직전 글까지 쓰고 마무리 짓지 못했다. 직전 글을 무려 작년 3월 5일에 작성했으니, 이 글을 쓰기까지 거의 1년이 걸린 것이다. 왜 그랬을까?
3월에 개강을 했고, 작년 1학기엔 내가 졸업한 로스쿨에서 수업 하나를 맡았다. 부담이 됐고, 긴장이 됐다. 변호사시험에 불합격한 주제에, 자격증도 없는 주제에 로스쿨 수업을 맡게 된다니. 이게 맞는 건가. 학생들이 내를 존중하면서 수업을 들어줄까.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런 상태에서 개강을 했다 보니 이 글뿐 아니라 브런치에서 어떤 글도 쓸 수 없었다.
잘 마무리했다. 내가 졸업한 로스쿨 학생들의 특성상 굉장히 날이 서 있고, 시니컬하고 기준이 높을 확률이 높은데 강의평가도 잘 나왔고, 1학년 학생 중에서는 가장 우리 학교 로스쿨다운 수업이란 피드백도 보고서 제출을 받으면서 받았다. 시간강사일 뿐이고, 내게 잘 보여야 할 이유가 없는 학생이니 입발린 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나서 2학기엔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두 학교를 오가며 4과목을 맡았다. 나는 서울에 사는데, 두 학교 모두 다른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강의안이 모두 있다고 해도 겹치지 않는 4과목을 두 지역을 오가며 강의를 하니 몸과 마음이 다 망가졌다. 그 과정에서 이 시리즈를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이 시리즈를 쓸 때도, 상처가 많았고 인생에서 압박도 참 많이 받았단 것이 느껴졌다. 이 시리즈는, 이렇게 쓰려고 의도했던 시리즈가 아니었다. 그래서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앞두고도 마무리하지 않았고, 결국 브런치북 프로젝트에는 처음으로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는 내 안에 있던 상처들이 거의 다 치유된 것 같고, 이제는 조금 다른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하면 이 시리즈에 있는 글들, 유치하고 지우고 싶다. 하지만 학부시절, 내가 썼던 글들에서 느껴지는 나의 상태가 싫어서 술 몇 잔 마시고 전부 삭제한 이후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이 또한 나의 모습이고, 그 글을 쓸 때 나의 상태도 그때 나이기에 시간이 더 지나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대로 살려둘 생각이다. 그리고 프롤로그를 쓴 이후에 똑같은 제목의 시리즈를, 내가 의도한 대로 다시 풀어볼 생각이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이 제목의 글을 애초에 이 시리즈에 넣은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 목차를 잡을 때 뭔가 이 시리즈에서 답이 있는 것처럼, 내가 힘든 과정을 지나며 엄청난 걸 깨달았고 당신들이 모르는 걸 나는 안다는 식의 글을, 누군가 픽업해서 팔아줄 글을 쓰고 싶었던 건 아닐까?
사람마다 성공에 대한 정의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공에는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죽을 때 아쉬움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눈을 감을 때 아쉬움이 없고, 최선을 다해서 내가 이 땅에서 경험하고, 보고, 듣고, 느낄 것들을 다 해보고 떠나노라고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그리워할 것이란 것을 알 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떠날 수 있다면, 나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공했는지 여부는 내가 죽을 때야 비로소 결정될 것이다. 이제는 어쩌면 결혼은 몰라도 아이를 갖는 것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다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가져보고 싶단 소망이 있는 건, 아이를 가져보지 못한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있다는 걸 아는데 내가 부모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세상을 모르고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목소리를 높여 대들고,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며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네가 나를 이렇게 대해도 내가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여전히 네가 내게 준 기쁨과 행복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말을, 싱글인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 느낌과 감정, 경험을 하지 못하고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나는 여전히 소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돈을 많이 벌고, 명예와 권력을 누리는 것? 내가 가져본 적은 없지만, 그런 것들을 가졌던 사람들의 사례들은 그런 것들을 쟁취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경쟁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본인도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말로가 비참한 사람들이 찬란한 영광을 누리는 사람들보다 많다.
나는 내가 속한 영역에서 질서를 조금이라도 더 바로 세우고, 다양한 좋은 글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만들고 싶다. 글은 그 사람이 보고, 듣고, 느끼고, 고민한 만큼 나오는데, 나는 내가 죽을 때, 내게 더 이상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소재가 없고,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내가 속한 영역의 질서를 나보다 더 잘 세울 수 있는 사람들을 길러낸 상태여서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는 상태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이 세상에 남겨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그리워는 하지만 나를 잃음으로 인해 고통받거나 힘들지는 않을 수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나는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많이 안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길, 내 기준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둘러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올해는 최소한의 일만 남기고 내 일에 투자를 하는 해로 삼기로 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은 결국 과정이고, 그 인생의 결론을 죽을 때 난다. 아무리 유명하고, 잘 나가며 많은 것을 가졌던 사람도 말로가 비참하면, 그 사람의 인생은 비참한 것으로 끝난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나는 돌다리를 두드리고 확인하며, 지금 내게 주어진 일에 집중하며 살기로 했다. 설사 내가 믿는 신이 갑자기 나를 부르더라도, 그 앞에 가서 내가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아쉬움 없이 최선을 다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왔다고 말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그렇게 당당하고, 아쉬움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고, 벌써 세상을 떠나기에 난 아직은 아쉬움이 많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건강과 마음, 시간을 잘 관리하기 위해 노력한다. 죽을 때 억울하고 아쉽지 않기 위하여. 그래야 성공한 삶이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