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TC

결혼, 그놈이 그놈은 아니다

by Simon de Cyrene

나이가 없진 않은 만큼 몇 번의 연애를 했고, 또 그만큼의 이별을 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 만나고 헤어졌던 사람들과 결혼을 했으면 어땠을지를 상상해 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가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만났으면 어땠을까 싶은 사람도 있고, 더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어 미안한 마음이 드는 사람은 있지만 결혼을 그 사람과 했어야만 했다는 후회가 드는 연애와 이별은 없었다.


어떤 부모님들은 '그놈이 그 놈이니까 적당히 잡아서 결혼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건 부모님께서 한 사람과 만나 평생을 살아오셨고, 다른 사람과 만났을 때 어떨지를 모르시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다. 만나고 헤어졌던 사람들과 나이가 들어가는 걸 상상해 볼 때면 누구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했는지에 따라 나도, 그래서 내 일상도 달라졌을 것이란 게 선명하게 보인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고, 이별의 이유는 항상 달랐던 것처럼, 누구와 가정을 꾸렸는지에 따라 내 결혼생활과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돈, 외모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누구를 만나도 돈은 지금 많아도 나중에 없어질 수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쓰레드에서 자신보다 가난하고, 가진 것도 없었던 사람을 사람만 보고 결혼했는데 시간이 흘러 지금 본인은 경단녀가 되어있고, 전문직이 된 남편은 본인이 필요 없다고 하는데 고생하는 것을 볼 수 없다며 가사도우미까지 붙여주는, 본인은 상상도 한 적이 없던 삶을 살고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삼촌은 결혼할 때는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었는데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목회를 해야겠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대학원에 가서 지금은 작은 교회의 담임목사를 하고 있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들은 언제든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예측 가능하지 않다.


그와 달리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아예 변할 수 없단 것은 아니다. 사람은 엄청난 고통, 고난과 고뇌의 시간을 거치면 더 깊어질 수도 있고, 풍요로워지면 오만하거나 거만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향의 모습을 보일지는 의외로 작은 부분들을 봐도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 혹자는 SNS만 보고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다양한 사람을 관찰하고 만나면서 데이터가 쌓이면 작은 것만 봐도 큰 틀에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 아니다.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와 기본 태도, 특히 익명 뒤에서 하는 말과 보이는 모습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잘 바뀌지 않는다.


말이 많은 사람이 갑자기 말이 줄어들지 않고, 애교가 없던 사람이 애교가 늘지 않으며, 관심사가 넓었던 사람이 갑자기 좁고 깊은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인스타인지 브런치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글이 긴 나의 인스타 계정을 볼 때면 제발 이러지 않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생각이 많다 보니 학부시절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어떤 플랫폼에서든지 글을 쓰고 있었던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받아들여야 했다. 최근에는 학부 때 세계일주를 하고 나서 쓴 책으로 유명해졌던 친구가 대기업에 다니다, 사업을 했다 접은 뒤에 한동안 잠잠하더니 결혼해서 딸까지 낳은 상황에서 맨땅에 헤딩을 하듯이 온 가족이 인도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친구와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그래, 사람은 생긴 대로 살게 되어있어'란 생각이 들더라.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기에 상대도, 나도 잘 바뀌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감에 다듬어지는 면들은 일부 있지만, 절대로 바뀌지 않는 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같은 재료도 어떤 재료와 함께 요리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맛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같은 사람도 어떤 사람과 만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요리실력을 갖춘 상태에서 요리를 하는지에 따라 같은 재료로도 완전히 다른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처럼, 언제, 어디에서, 몇 살에 상대를 만났느냐에 따라 두 사람의 화학작용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같은 상대도, 타이밍에 따라 두 사람의 만남이 달라질 수 있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언제, 누구를 만나는지는 매우 중요하고, 사람들은 그런 변수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문제는 결혼 자체가 교회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는 우상, 일반적인 표현으로는 목표로 설정되면 사람들이 그 우상, 또는 목표에 매몰되어 상대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도 눈이 먼 상태에서 결정해서는 안되는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은 눈이 멀지도 않았음에도, 경고등이 수차례나 울려도 눈을 감고 상대와의 연애 또는 심지어 결혼까지도 결정한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그렇게 눈을 감고 연애에 뛰어들어도 만회할 기회가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한 번의 기회가 너무나도 소중해진 나이가 되어보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잘 모르겠단 결론만 반복해서 내게 된다. 만나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그 과정을 지나고 나면 결국은 만나봐야, 상대와 함께 할 때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경험해 봐야 알 수 있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중해야 하는 것은, 결혼에서 만큼은 어떤 상대를 고르는지에 따라 내 미래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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