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분명히 하자
지금 돌아간다면...
26에 취업에 성공했고, 27에 첫 직장을 가졌지만 29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냥 그만둔 것은 아니었고, 대학원에 합격했기 때문에 내릴 수 있었던 결정이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학교에 머물러 있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어서 난 계속 학교에 있다. 사실 일반대학원의 경우 교수님께서 연구를 많이 하시는 분이라면 아주 작은 회사에 다니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회사와 학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일단 수입부터 다르고, 회사는 퇴근하면 끝이지만 대학원은 잠을 잘 때 외에는 항상 공부나 학교 일과 관련된 사안이 내 머리를 맴돈다는 점이 그렇다.
그런데 퇴사한 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갖고 돌아간다면 난 그냥 회사를 다녔을 것 같단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가 몇 가지가 있었는데, 지금 그에 대한 내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기 때문이다.
내가 퇴사한 이유
내가 회사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가 바보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생각하는 법도 잊어버리고, 책을 5장 이상 보기도 힘들어 하기 시작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내가 발전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선배들이 말한 '입사할 때는 눈빛이 똘망똘망하다가 5년이 지나면 생선 눈과 같은 모습'을 한 사람과 같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이유는 10년 선배들을 봤을 때 내가 그들과 같은 모습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일은 욕먹지 않을 정도로 하고 사적인 것을 더 챙기는 선배들을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그러하는 것이 이해가 되었고, 계속 남아 있으면 나도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나는 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이유는 남을 짓밟고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는 과장 정도까지는 어떻게든 달겠지만, 아니 내 회사 동기들을 보면 과정 승진부터 시기가 갈라지기 시작하더라. 그 이후에는 결국 점점 승진에서 누락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을 봤고, 그렇게 승진에서 누락된 선배들이 회사 안에서 지내는 모습들을 봤다. 그런 모습이고 싶지 않았고, 그런 모습이 되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노력을 한다고 해서 회사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란 것은 평생을 회사원으로 사신 아버지를 보면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경쟁을 하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네 번째 이유는 나이가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남자만 군대에 가는 것에 대해서 크게 불만을 가진 적이 많지는 않았는데, 퇴사를 준비하는 시점에서는 남자만 군대에 가는 것이 엄청나게 억울했었다. 2년이란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그 2년이란 기간을 군대에서 보냄으로 인해서 내가 진로를 한 번 더 틀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내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질 것이고, 그렇다면 방향을 틀려면 빨리 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몸도 무거워지기 마련이니까.
퇴사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부모님께서 생활비랑 학비를 대주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가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일 테다. 만약 상황이 그랬다면 나도 퇴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퇴사하지 않을 이유
그런데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결정한 퇴사 결정을, 지금 돌아간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란 건 왜일까? 지금 돌아보면 그때는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했을 때 내가 훨씬 더 보람 있고, 생산적이며,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대학원에 합격한 이후에 찰나의 고민도 없이 퇴사를 결정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사람이 속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배우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크게 다르다면, 그만큼 그 사람에게 부여되는 책임과 무게감도 같이 무거워지기 마련이라는 사실도 함께.
그래서 사실 지금 회사로 돌아간다면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고, 남을 해치는 것이 아닌 선의 일들을 해 나가며 회사에 머물렀을 것 같다. 대신 그때 받은 월급을 잘 모아서 노후를 대비하고, 가정을 꾸렸다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시간을 최대한으로 쓰면서, 회사에 있지 않은 시간들에 정말 보람을 느끼는 일들을 틈틈이 해 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걸음이 이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종종한다.
퇴사를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의 끝에서 내가 깨닫는 것은, 내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내가 퇴사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대학원생의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다. 논문을 쓰고 공부를 할 때는 머리가 깨질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하루에 12시간씩 공부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연구를 하지 않을 때는 이런저런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이 많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생기는 것이지 내가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아마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현실에 쫓기면서 승진에 벌벌 떨면서 똑같이 살았을 것이다. 내가 회사원들을 존경하는 것은, 그 삶이 얼마나 힘든지는 회사원이셨던 아버지를 둬서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어떤 일들로 인해 힘들어하셨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 지금 회사로 돌아간다면 퇴사를 하지 않을 것 같지만, 내가 퇴사를 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퇴사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실 지난 몇 년간 수도 없이 퇴사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그런 마음들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퇴사를 한 이유들이 분명했고, 그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했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수십 번, 아니 어쩌면 수백 번도 더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난 결국 그런 결정을 했을 성질의 놈이란 사실을 말이다.
왜 퇴사하려는가?
퇴사를 생각하는 후배들과 만나면 항상 똑같은 질문을 한다. 왜 퇴사하고 싶냐고 말이다. 만약 기업문화, 직장상사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그걸 이유로 그만두지는 말라고 한다. 그건 퇴사를 한다고, 이직을 한다고 해서 나아질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문화가 좋은 것으로 소문난 회사에 입사했지만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기업문화에 질려서 퇴사를 한 내 동생의 사례가 그걸 잘 보여준다.
연봉을 조금 더 받기 위해서 이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조금 때문에 반복적으로 이직을 하다가는 언젠가는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하는 사람'으로 분류되어 어느 순간부턴가 이직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두 번 정도면 몰라도, 엄청나게 큰 폭의 인상이 아니라면 오로지 연봉 때문에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하는 것 또한 개인적으로는 반대한다. 그것보다 내가 하는 경험의 폭을 넓히고 능력을 입증한 이후에 한방에 옮기는 것이 훨씬 몸값을 올리기에 좋을 것이다. 물론 그런 경험을 할 수 없는 직장이라면 그런 곳을 찾아 옮길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퇴사를 하지 말라고, 취업시장도 어려운데 그대로 머물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대한 불만족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목표지점이 분명하게 생기면, 그리고 그렇게 건너갈 수 있게 되면 퇴사를 하라고 한다. 사실 내가 퇴사한 직후에는 이렇게 조언을 하다가, 또 그렇지 않게 퇴사하고도 잘 지내는 듯한 동생을 보면서 내가 틀렸다고 생각했다가, 그 동생이 퇴사한 지 5-6년이 지나고 나서 그 친구의 삶을 보니 역시나 그렇게 퇴사하는 것이 맞겠단 생각이 들었다. 목표지점이 없이, 방향성 없이 퇴사를 하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생은 방향성을 상실한 상태로 여기저기로 흘러가게 되더라. 그래서 나는 요즘에 다시 누군가 퇴사 얘기를 하면, 다음 목표가 명확해지고 그에 대한 준비가 되었을 때 퇴사를 하라고 조언을 한다.
내가 신중하게,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퇴사를 하면 내가 흔들릴 때 그렇게 고민했던 시간들이 나를 다시 잡아주지만, 그러한 고민이 없었던 사람은 여기저기로 떠돌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퇴사를 신중하게 고민해 보고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다들 하는 말이지만 회사 안이 전쟁터라면 회사 밖은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들판 같은 지옥이다. 그러한 들판에 발을 내딛고,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은 분명히 알고 가야 하지 않을까? 거센 바람에 흔들릴 때 붙들 수 있는 땅에 깊게 뿌리박은 무엇인가가 있어야 버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