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고통이 약인 이유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이 원하는 것을 편하게, 고통 없이 갖기를 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왕이면' 고통을 느끼지 않고 쉽게, 편하게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 사람들은 그래서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 더 쉽게, 편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 사람들이 만든 원칙을 깨고,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말이다. 국가에서 직접 나서서 그런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임과 함께, 그와 같은 행위를 통해서 사회질서를 깨고 해악을 끼쳤으니 그에 상응하는 벌을 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과연 고통 없이, 쉽게 취득한 것을 사람들은 소중하게 여기게 될까? 고통 없이, 쉽게 얻은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갖게 되어도, 그것을 손에 넣게 되어도 자신이 힘들게 노력해서 취득한 것이 아니면 그 자체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일부 재벌 2세와 3세들을 보면, 자수성가하신 부모님들의 재산을 날려먹는 자녀들을 보면 그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좋은 집안과 환경에서 태어나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고 해서 그들이 그것에 감사하지는 않지 않나?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봤을 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가? 마약과 도박과 같이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흥청망청 소비하는 것은 많은 것을 가진 부모님의 자녀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패턴인 듯하다. 부모님의 성공을 이어받지 못하는 재벌 2세, 3세들이 어리석은 결정을 하는 이면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너무 쉽고, 편하고, 당연하게 주어졌다는 사실이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재벌가들은 2세, 3세들이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자신의 그룹사가 아닌 다른 회사에 취직하도록 하지 않나? 만약 그것이 단순히 경험을 쌓게 해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 경험은 어차피 그 사람이 물려받을 회사에서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경험을 다른 회사에서 쌓게 하는 것은 아마도 그 회사의 주인이 될 사람이 그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면 조직구조에서 오는 절실함을 몸으로 체험할 수는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너도 나도 잘 보이기 위해서 노력할 테니까. 힘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지만 자신이 물려받지 않을 회사에서 보통의 사람들의 삶을 같이 경험하고, 조직구조를 익히면 그 정도가 덜하고, 그나마 조금은 자신이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될 것이다. 재벌가들이 2세, 3세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몇 년 후에 다시 받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소유하거나 성취하게 된 것을 자신이 들인 노력만큼, 자신이 감내한 고통만큼 소중하게 여긴다. 상대적으로 별것이 아니게 보이는 것을 사람들이 엄청나게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건 그 사람이 자신이 그만큼 마음과 노력을 많이 들여서 그것을 이뤄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타고나게 몸매가 좋고,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것이 주어진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를 잘 모르지 않나? 다른 사람들이 몸매 관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 시간, 돈을 들이는 지를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니, 체질적으로 살이 잘 찌는 사람들이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사람들의 일상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는 나이가 들어서 신진대사가 느려짐에 따라 본인이 살이 붙기 시작하면서야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큰 노력과 고통을 느끼지 않고 무엇인가를 소유하거나 성취하게 되더라도 그 사람이 그걸 전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것을 이뤄낸 순간, 그리고 얼마 동안은 그것이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성취감과 자신이 이뤄낸 성과에 대한 소중함은 그 사람이 들인 노력, 그리고 그런 노력을 들이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에 비례하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서 스스로를 고통으로 내몰거나, 다른 사람을 일부로 고통스럽게 해야 한단 것은 아니다. 그건 사디스트나 마조히스트나 하는 짓이다. 다만 우리가 무엇인가를 목표로 할 때 수반되는 어느 정도의 고통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것이다. 만약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이, 노력을 하고 있는 방향이 본인이 느끼는 고통에 비례할 만큼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지혜로운 결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할 것이라면, 그만큼의 고통을 감당하며 노력해서 그 목표를 성취한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그 사람의 것을 빼앗을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건 본인이 조금 더 힘듬을 감당하고 더 노력을 해야 하는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좋아 보이는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들이 갖게 되거나 성취하면 그 열매만 보고, 그 이면에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렸는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당했는지는 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큰 노력을 하지 않고 뭔가를 편법으로 쉽게 취득하고 이루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을 넘어서 그렇게 편법으로 무엇인가를 쉽게 취득하기 위한 패턴을 반복한다. 그런 패턴이 반복되다 보면 그런 방법을 적용해서 취득하기 위한 대상물도 더 커지게 된다. 편법으로 무엇인가를 쉽게 취득하고 이루게 되면 그것이 그렇게 소중하게, 좋은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에. 그리고 그 대상물이 커지게 되면 그것을 둘러싼 이해관계자가 많아지면서 그것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비판의 대상이 되며 그 과정 어디에선가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계속해서 편법으로 성공한 결과일 것이다.
인간이 그렇지 않다면 참 좋을 것이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자신이 갖게 된 모든 것을, 작은 것까지 소중하게 여기고, 하나하나에 감사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참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자신이 들인 노력만큼, 그것을 갖거나 이루게 된 과정에서 느꼈던 힘듬과 고통만큼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그 상황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그래서 사실 인간이 무엇인가를 향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고통은 저주가 아니라 약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