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평등'에 대하여
'고통'에 대한 글을 쓰고 나서 계속 찜찜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모든 고통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누구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상황들이 말이다. 그래서 뭔가 그 글만 남겨 놓는 게 편하지 않았고, 어차피 개인적인 상황으로 인해 오늘은 해야 할 다른 게 없으니 이 주제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기회의 평등. 좋은 말이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서 보장되고 있지는 못한 가치 같다. 앞선 글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과정에서는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러한 고통은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노력을 할 여건이 형성이 되어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노력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당장 생계의 문제가, 가족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구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국가는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로버트 노직의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자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면, 사람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생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의 생계의 문제는 국가에서 해결을 해주는 것이 맞다.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모든 것은 시장에 의해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현실이 입증을 해줬고,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실패가 일어날 때만 정부의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했지만 그건 다른 사회적 변수들을 감안하지 못한 나이브한 생각이었다는 것이 각종 사회현상들을 통해서 입증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누군가가 현실에 구속되어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느끼는 고통은 누구도 그 사람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부모님이 앓아누우셔서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장 입에 풀칠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꿈을 찾겠다고 가족을 유기해 버리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 잠시만 생각해 봐도, 무엇인가를 이루거나 취득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생계'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에 대해서 '그러면 사람이 나태해진다'라는 반박이 있을 수 있는데 과연 그럴까? 어느 인간이 '최소한의 생계'가 해결되는 상황에 만족을 하며 그 자리에 눌러앉으려고 할까? 아니 그러려는 사람들이 있긴 하겠지만, 자신이 노력을 하면 꿈을 꿀 수 있고 더 좋은 상황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상황에서 그 단계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것은 경쟁을 통해서 자신이 뒤처지게 되면 그 결과를 갖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리스크를 갖고 자신이 시도를 했다가 실패를 하면 그건 국가나 사회의 잘못이 아니고 본인보다 더 열심히 노력을 한 사람이 있거나, 본인보다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까지 국가가 보장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서 본인의 진로가 가로막혔다고, 자신은 꿈꿀 환경도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정당한 불평이나 불만의 표출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이 위험을 감수하고 시도한 것이고, 그 결과 실패했다면 그 위험은 본인이 감당하는 것이 맞다. 다만 그러할 경우에도 그의 기본적인 생계 정도는 국가가 해결할 수 있도록 보조할 필요가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준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데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회'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능력을 키우는 데는 돈의 역할이 크기에... 사실 대학들의 여러 가지 특별전형은 그러한 환경의 차이를 고려했을 때 이 정도의 능력을 갖췄다면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선발한다는 것이기도 한데, 문제는 그러한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이고, 그와 같은 제도를 통해 입학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을 판단하고 폄하하는 졸부나 천박한 자본주의자 같은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데 있다.
이처럼 기회를 평등하게 한다는 말은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현실에서 그걸 실현시키는 것만큼 어렵고 복잡한 문제도 드물다. 분명한 것은 평등한 기회를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수준으로 먹고사는 생계는 해결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의 고통은 그 사람이 기회를 제공받기 위한 첫걸음도 할 수가 없기에... 엄연히 국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특히나 지금의 대한민국 정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에서는 그러한 상황으로 인해 누군가가 느끼게 되는 고통은, 어떠한 경우에도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도 없으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기회의 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그와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회는 계급제 없는 계급사회를 만들어낼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