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내겐 쉼의 공간

by Simon de Cyrene

제주도가 난리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난리인 지점을 넘어갔는지도 모른다. 그 난리가 나기 전부터, 게스트하우스가 처음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부터 제주를 종종 찾았다. 제주가 이렇게 핫해질 줄 알았다면 지금처럼 가격이 올라가기 전에 명의만 내 것으로 하고, 그 실질은 은행 것인 형태로라도 제주에 내 거처를 마련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왜 제주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에 대한 답이 어디 분명하게 있겠나? 그런데 제주에서 관광지들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 나와 다른 이유로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내가 제주를 좋아하는 것은 그 느림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재료가 다 떨어졌다는 이유로 가게가 문을 닫는 게 말이 되냐고 묻지만, 난 제주의 그런 면들이 좋다. 자본이 밀려들어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제주 안에는 자본주의에 찌들지 않은 느림이 있다. 그리고 제주의 저녁은 서울의 밤과 달리 칠흑 같이 어둡다. 헤드라이트를 켠 상태에서도 다음 출구를 알기 위해서는 내비게이션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난 제주의 그런 면이 좋다.


그래서 제주에 오면 제주시나 서귀포시, 중문에는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난 절대로 성수기에 제주를 찾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나마 덜 올 때, 사람들이 덜 찾는 조용한 마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며 천천히 걷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제주에 내려와 있다. 제주에 혼자 올 때는 항상 조용히, 혼자 있거나 기껏해야 게스트하우스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게 전부였는데 이번에는 세미나를 겸해서 내려왔다. 그게 너무나도 싫어서 세미나 전후로 하루씩 굳이 내 일정을 확보하면서 내려왔다.


많이 지쳤었다. 논문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매일 새벽 3-4시, 때로는 밤샘 작업을 하기를 몇 달째. 서울에서는 아무리 쉬어도, 이제는 마음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 도시에서는 온전히 쉬기가 힘들었다. 아니, 쉬려고 해도 문 밖을 나서면 내 삶에 몰려드는 그 도시의 분주함이 숨을 쉬기 힘들게 했단 것이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하는 것 또한, 그 때문이었다.


항상 그렇듯이 작은 마을에서, 다른 작은 마을로 자리를 옮기며, 자연 속에서 천천히 움직이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이런 제주의 느림이 좋다. 자본이 제주를 잡아먹는다 해도, 그 힘이 거대해도 제주 안에는 여전히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살아있다. 그 공간이 줄어들고 있는 게 안타깝지만 사람에, 자본에 완전히 점령되기에는 제주가 너무 크다. 다행이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이제 거의 끝나긴 했지만, 2월이 아닌 8월 졸업으로 밀렸다. 그렇게 밀리고 늦어지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적응이 되는 사람은 없는가 보다. 그래도 제주가 있어서, 이대로 있어줘서 다행이다. 그리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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