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헬조선이라는 말에 대하여

by Simon de Cyrene
헬조선에 대하여

헬조선이라는 말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사실 세상에 완벽한 사회와 국가는 없는데 헬조선이라는 말은 너무 시니컬하고 비아냥거리는 뉘앙스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헬조선이라는 말을 쓰는 것에 대해서 '너희가 그런 말 자격이 있어?'식으로 따지고 드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난 그렇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더 싫어한다. 그건 전형적인 '너희가 한 게 뭐가 있다고'라는 식의 꼰대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인이 겪은 힘듬만이 힘듬이라는 전제를 하고 있어야 나올 수 있는 반응이기 때문에 난 그런 반응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알레르기 반응이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어느 시대에나 힘듬은 있다. 그리고 힘듬에는 다름이 있을 뿐 더 힘들고 덜 힘들다고 비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지금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 감동한 적이 있는데, 60이 넘으신 목사님께서 '나는 한 때 요즘 애들이 힘든 게 뭐가 있냐? 우리 때는 굶는 사람도 얼마나 많았는데라고 생각했었는데, 애들이랑 대화를 해보니 우리 시대가 더 힘들었다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 우리 때는 힘들어도 다 같이 힘들었고, 아무리 힘들어도 옆집 삼촌네 가서 놀거나 속을 털어놓을 수가 있었는데 요즘 애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 모르지만 어디에도 마음을 털어놓거나 놀라갈 수가 없는 구조에서 살더라. 그걸 보니 내가 살던 시절이 과연 더 힘들었다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씀하시더라. 맞는 말씀이지만, 보통은 나이가 들수록 사고가 굳고 본인의 틀에서만 세상을 보게 되기 때문에 그 말 몇 마디가 큰 감동으로 다가왔었다. 그렇다. 힘듬에는 다른 종료의 힘듬이 있을 뿐, 더 힘들고 덜 힘들다고 함부로 판단하기는 힘들다. 헬조선이라는 표현에 분노하면서 '너희가 한 게 뭐 있다고 우리가 이룬 과거를 비하하느냐!'라고 반응하는 것은 전형적인 꼰대질이다.


정말 그렇게 힘든가?

그렇다면 요즘 사람(?)들은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 걸까? 이에 대해서는 정말 친한 형이 미국에서 유학 중일 때 해줬던 말로 설명이 가능할 듯하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심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게 크게 부각되지 않는 이유를 이 형이 두 가지로 설명했는데, 그 첫 번째는 미국에서는 저렴한 골프장과 비싼 골프장이 있는 것처럼 돈이 없어도 부자인 사람들이 즐기는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미국은 땅이 넓다 보니 정말 부자인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갈 일도, 그들과 마주칠 일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부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넓고, 우리는 그들의 삶을 지하철 몇 정거장만 가면 볼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빈부격차를 체감하는 정도가 훨씬 심하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다 나는 70-80년대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비슷하게 가난했던 점, 한국 사람들이 조금은 유난히 평등의식이 강하다는 점, 마지막으로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함으로 인해서 재분배에 대한 고민이 우리 사회에 없었다는 점이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헬조선'이라는 말을 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정말 그렇게 '헬'스러운지는 사실 복지의 차원에서 살펴보면 그 답이 굉장히 쉽게 나온다. 우리나라는 공공사회지출에서 조사대상이었던 OECD 30개 회원국 중에 꼴찌를 기록했다. 그것도 OECD 회원국의 절반도 안 되는 GDP 대비 10.4%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는 아동 및 가족 분야의 공공지출, 장애인 복지 부부 네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임금격차는 상위 10%와 하위 10%가 4.8배로 OECD 국가들 중 뒤에서 3번째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보다 그 격차가 더 심한 국가는 미국과 이스라엘밖에 없었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 1위, 자살시도에서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헬'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는 왜?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나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첫 번째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너무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은 또 두 가지를 의미하는데 이는 첫 번째로 우리나라에서는 분명 열심히 노력을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에서는 기회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에서 손가락을 빨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로 게으르기 때문에 그러할 확률이 비율이 느리게 성장하는 국가들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더 이상 그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가 아니다. 작년 경제성장률은 북한이 우리나라보다 높다고 한다면 그 점이 와 닿을까? 그리고 우리나라가 빠르게 성장하는 바람에(?) 우리나라는 재분배와 복지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경제성장이 둔화된 지금도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가 이러한 상황에 처한 두 번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가 분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남북한으로 분단되어 있고, 그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빨갱이'라는 진영논리가 '먹히는' 나라다. 그런데 '빨갱이'는 사회주의를 의미하고, 그에 따라 정부에서 복지를 제공하는 것은 '빨갱이 정책'으로 낙인이 찍혀버린다. 여론이 복지를 확대 및 확장하는 입장들이 완강하다 보니 정치인들도 그런 흐름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그런 패턴이 반복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재화의 재분배나 복지에 대한 지출이 충분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어려움만이 존재할 뿐

사실 생각해 보면 젊은 사람들이 꼰대라고 부르는 어르신들의 입장도,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젊은 사람들의 생각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지금 이와 같은 갈등은 어쩌면 우리나라의 사회. 경제체제가 안정이 되면서 찾아오는 일종의 과도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존에는 성장과 발전이 주된 화두였다면, 이제는 삶의 질과 분배가 화두로 등장하는 일종의 인식과 가치의 전환기에 우리가 서 있기 때문에 이런 갈등이 발생하고 있단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갈등은 누구의 탓도 아니고 시대와 사회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나라가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흑인에 대한 분리정책을 폐기하던 때만큼이나 인식과 가치의 전환이 빠르고 큰 폭으로 이뤄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서로 손가락질하기보다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게 맞지 않을까? '헬조선'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특정한 시대를 부정하는게 아니라 그저 지금 이 시대가 버겁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어른인 분들은 '어른답게' 그런 그들의 마음을 헤어려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너희가 뭘 안다고'라는 식으로 대립각을 세울게 아니라 말이다.


어떤 시대에나 어려움이 있고, 다른 종류의 어려움은 있지만 누구도 누군가의 어려움이 더 크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굳이 누가 더 어려운지를 경쟁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리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고 해서 그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물질적인 풍요가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시기에 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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