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피는 꽃이 가장 화려하다
지옥 같았던 6년의 시간
2012년 초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완전히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긴장감을 놓을 수 있었던 순간은 없었고, 주위 사람들이 어찌할 줄 모를 정도로 힘든 일들도 어림잡아 7-8회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여자 친구와 헤어질 때보다 몇 배는 힘든 순간들이. 그 사이에 연인과 이별한 것은 그 안에 포함시키지 않고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별을 결정했을 때도 이별 후에 한동안 꽤나 많이 힘들어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 정도로 힘들단 건 정말 힘든 거다.
내가 믿는 신을 원망했다. 저주하기도 했고, 다른 종교로 바꾸려고도 해봤으며, 신이란 작자가 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내 인생에서 내가 믿는 신을 가장 멀리 떠나봤다. 한... 2주 정도의 기간 동안... 찬양팀을 했기에 예배에는 갖지만 찬양은 하지 않았고, 설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러던 나의 분노와 원망은 '하나님 난 당신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라는 기도로 봉인해제되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서 하나님한테 기도를 하는 나의 꼬락서니가 참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 기도를 한 이후 나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난 나 자신을 한번 '피식' 비웃어 준 이후에 펑펑 울었다.
고통이 축복이라고?
누구도 고통을 경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덜 힘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우리가 돈을 많이 가진 사람, 자유롭게 놀러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나라고 다르겠나? 브런치 안에서 거룩한 척하면서 한국교회를 비판하고, 통일이 되어야 한단 주장을 할 뿐 아니라 사랑과 연애에 대한 생각을 (지가 뭐라고...) 고지식하게 풀어내고 있지만 나도 그런 것들이 부럽다. 나도 편하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으며, 고통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난 한국교회에서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은 축복이니까 참아'라는 말을 세상에서 가장 혐오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은 지적질할 소재가 아니라 같이 보듬어주고 안고 가야 하는 감정이기에.
하지만 누군가가 내게 '고통이 축복이냐'라고 물어본다면, 난 이젠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있다. 물론 고통 자체가 축복은 아니다. 나는 고통 자체를 축복이라고 생각할 만큼 자학적인 사람은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고통은 축복으로 가는 통로, 그 사람 안에 있는 아름다운 것을 끄집어낼 수 있는 통로인 것은 분명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내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해 내고 기존에 자신 안에 형성되어 있던 질서를 깨고 나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떤 예술가들은 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일부로 스스로를 고통스러운 상황에 몰아넣는다고 하지 않나? 더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그렇게 인위적인 고통은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끌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그런 극단적인 행위를 하는 이면에는 그들이 고통스러움을 극복해 냈을 때만 나올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잘 견뎌내면 오는 것들
우리가 언제 고통을 느끼나? 우리는 보통 세상 일이 마음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내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지금 내가 하기 싫은 것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때 고통을 느낀다. 아주 간단한 예시를 들면 우리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운동을 하지 않고서는 살을 빼지 못하고, 고통스러울 정도의 허기를 참지 못하면 살을 빼지 못한다. 하지만 그 고통 뒤에는 아름다운 몸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 이는 몸의 경우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고통의 과정을 통해 인생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생각하기 시작할 때 창의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고 습관이 되면 사람들은 그때부터 고통을 겪게 될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요령이 생긴다. 헬스를 제대로 하면 할수록 근육이 자리를 잡아서 더 무거운 무게를 들 수 있듯이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고통은 좋은 거니까 그냥 버텨!'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시간을 잘 버텨내고,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한 노력과 고민을 하게 되면, 그 시간은 언젠가는 지나가게 되어있단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몰랐던 우리 만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아름다움은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것들인 경우가 많다. 예술가들이 더 아름답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은 너무나도 예민해서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에서도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의 작품은 그걸 극복해 내기 위한 과정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고통은 완전히 그 반대의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고, 고통으로 인해서 건강이 망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대부분 인간들은 극단적인 고통을 혼자서는 이겨내지 못한다. 나도 내 지인들과 가족이 없었다면 이미 이 글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통에 대해서는 누구도 함부로 쉽게 판단하거나 평가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 계신 분들에게 조금만 힘내라고, 버티시라고, 너무 힘들면 지인의 손을 잡고서라도 이 시간을 잘 보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이, 이런 일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도 그 부분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되어 있고, 그 과정을 잘 통과하고 나면 그 뒤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담을 바탕으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