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탐독(耽讀)의 기억들은 어디로 갔을까.
로맹 가리의 소설, 『흰 개』를 읽었다.
약 10여 년 전, 아마도 내가 대학생이었을 시절 처음 읽었던 책이다. 당시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알고 보니 동일인물이었던-의 엄청난 팬이었던 과 선배의 추천으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부터 『자기 앞의 생』까지 시중에 나온 작품들은 모두 사들였는데, 『흰 개』 역시 그 때 구입한 것이다. 한 동안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것을,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집 책장에서 발견했다.
‘타(他)’보다 ‘자(自)'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클지언정, 자타공인(自他共認) 다독(多讀)인이자 지독한 책 수집가인 나다. 초등학교부터 대학 시절까지 사들인 책들은 고향집의 방 두 칸을 가득 채웠으며, 현재 살고 있는 집 역시 방 하나를 통째로 서재로 꾸렸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만 봐도 배가 부르고 으쓱해지는 기분, 나와 같은 책 수집가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정일 것이다.
다만 내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책장에 꽂힌 책들 중 내용을 기억 못하는 것들이 태반이라는 것. 목차를 훑어봐도 도대체 내용이 뭔지 아리송하고, 어떤 책들은-내가 산 책임이 분명한데도-아예 제목조차 생소하다는 것이다.
『흰 개』는 굳이 말하자면, 전자의 경우였다. 흑인만 무는 흰 개가 등장하는,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 이를 소재로 어떤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다시 붙잡고 읽는 동안, 시놉시스만 알고 있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다른 책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데카메론』, 『오딧세이아』 등 분명 재미있게 읽었던 고전들은 물론이거니와 현대 소설, 인문학 서적들까지, 기억하는 것들보다 못 하는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너무도 좋아했던 나머지 기자회견까지 찾아갔었던 오르한 파묵의 『검은 책』, 『내 이름은 빨강』마저 기억 속 내용들이 희미함을 깨달았을 때는 조금 울고 싶었다.
수천 권의 책을 읽어도 모든 내용과 구절들을 세세히 기억하고 있는 천재는 되지 못할지언정 읽었다는 기억마저 묘연한 상태라니,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내 독서 방식이 틀렸던가. 깊이 있는 독서를 안 했다는 방증인가. 그간 독서에 쏟아 부은 시간들, 책을 사랑했던 마음들, 책을 읽으며 행복했던 순간들이 하나 둘 떠오르자 더욱 억울했다. 이러려고 기를 쓰고 독서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딱 이 한 줄이 내 심정이었다.
좌절감에 더 깊이 침전하기 전, 그러나 십수 년 전 읽었던 책들 중에도 세세히 기억하고 있는 책들 또한 있음을 생각해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레미제라블』 등 고전은 물론이거니와, 신경숙 작가의 『외딴 방』 속 희재 언니의 삶을 보며 밤새 오열했던 감정, 야간학교에 다니며 주인공이 꿈꿨던 희망, 모멸의 순간에 대한 공감 등을 차례로 떠올렸다. 『거미 여인의 키스』를 읽으며 몰리나의 사랑을 함께 꿈꾸고, 『광염 소나타』를 읽고 또 읽으며 예술의 광기를 논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기억의 총량을 결정짓는 조건을 되짚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하나하나 펼쳐보고, 공책들과 블로그, SNS들을 헤집었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작품들 대다수는 밑줄이 가득 그어져 있었으며, 읽는 내내 어찌나 궁금한 점들이 많았는지 각 장마다 메모들이 빼곡했다. 어떤 것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손때가 가득했다. 부끄러울 정도로 감성적인 감상들, 나만의 해석들이 공책들과 SNS 세계에서 부유하고 있기도 했다.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되새기고, 주인공들과 이야기하고, 비판하고, 공감하는 것. 허무할 정도로 단순한 이 과정이야말로, 내가 찾던 ‘기억의 조건’이었다.
나는 그간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조금 허기진 독서를 해 왔음을 깨달았다.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하여 제대로 읽을 생각보다는, 보다 더 많은 책들을 읽고 더 많은 정보들을 흡수하기를 기대했다. 그저 한 번 읽기만 하면 저절로 기억 속 어딘가에 남으리라 확신했다. 이 얼마나 무모하고 오만하며, 무책임한 사고방식인지.
‘다른 사람이 한 번 읽어서 알면 나는 백 번을 읽고, 다른 사람이 열 번 읽어서 알면 나는 천 번을 읽는다.’ 중국 송대의 대학자, 주자마저도 독서에 대하여 이토록 겸손했음을 떠올리며 나는 부끄러웠다. 그리고 독서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더 이상 인스턴트 같은 독서는 하지 않겠다. 한 권을 읽더라도 한 줄 한 줄 제대로 읽고, 이해가 될 때까지 몇 번이고 되새기고, 생각하겠다. ‘독서하는 나’에 취해, 책을 읽는 척 대충 시간을 낭비하는 독서는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그래서, 다시 읽은 『흰 개』는 어땠느냐고?
저자이자 주인공인 로맹 가리의 감정에 일차원적으로 공감하며,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그 때 그 감정을 다시 한 번,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키스, 이 개자식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