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딸, 그리고 또 내 딸.

by 레메디오스

아이의 울음소리는 유난히도 섧다. 아직 말을 모르는 아이는 온몸으로 울어야만 말할 수 있다. 아-. 마-. 바-. ‘아’ 모음으로만 전해지는 아이의 서러움은 옆을 지키는 어미에게는 비명처럼 울린다.


딸이 밤새도록 울어댔다. 새벽 3시가 넘어가도록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품에 딸을 안고 다독이는 나 역시 지쳐있었다. 그냥 제발 좀, 이대로 잠들어주었으면. 차라리 기절이라도. 복통에 못 이겨 버둥거리는 아이의 작은 두 다리에 나의 바람은 닿지 않는다. 아이 이마를 가득 적신 땀과, 통통한 볼에 난 눈물 자국이 못내 서럽다.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나의 무력함에 지쳤다. 몇 시간째 아이의 울음소리가 수면부족으로 멍한 내 머리를 광광 때려왔다.


생후 225일째, 딸이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장염이었다. 받으라는 접종은 모두 다 받았는데도 결국 병은 피할 수 없었다. 어느새 딸의 몸을 파고 든 바이러스는 딸아이뿐 아니라 나조차 병들게 했다. 하루에도 스무 번 이상 기저귀를 갈고 엉덩이를 닦아주었다. 새빨갛게 짓물린 딸의 엉덩이는 보기에도 쓰라렸다. 딸은 엉덩이에 물수건이 닿을 때마다 몸을 비틀며 자지러지게 울었다.


이렇게 며칠만 더 버티면 내가 먼저 죽겠구나. 그렇게 생각할 때쯤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까. 거울 너머 내 얼굴 위로 오돌토돌 징그러운 열꽃이 비친다. 홍역에 걸려 일주일 가까이 학교를 쉬던 때였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내 얼굴이 너무도 추해 엉엉 울다가 열이 오르기를 여러 번, 입맛도 없어 내 방 침대에 드러누워 이불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따뜻한 미음을 끓여 내 침대 머리맡에 앉아오던 엄마 모습이 떠오른다. 내 머리 위까지 올라와있던 이불을 조심스레 걷어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손길도. 수건을 물에 적셔 팔과 다리를 닦아주던 엄마의 사려 깊은 다정함이 그 기억 속에 있었다. 내가 타지에서 눈길에 굴러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극심한 빈혈로 병원에 갇혀 온갖 짜증을 토해낼 때도.


엄마. 엄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가끔 나조차도 견디기 힘들었던 나를, 엄마는 어떻게 그토록이나 견뎌주셨을까. 무엇으로 그 고단함과 외로움을 이겨내셨을까.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해마다 5월 8일이면 영혼 없이 부르던 그 노래 가사 하나하나가, 내가 어미가 되고 나서야 마음에 박힌다. 하늘 아래 무엇보다 높다고 했던가. 아니, 헤아릴 수 없는 그 마음은 바다 아래 그 무엇보다 깊다고 해야 옳다.


그리고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내 딸의 고통을 함께 견디며 비로소 당시 엄마의 마음을 떠올리는 것이다. 정의할 수도 형언할 수도 없을 만큼 기이한 애정과 인내심에 대하여. 내 딸의 아픔을 통해 겨우 닿아보는 것이다.


딸을 다독이다가 잠시 잠이 들었다. 문득 눈을 뜨니 평온하게 잠든 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작은 가슴과 배를 다독이다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와 엄마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엄마 목소리가 간절히도 듣고 싶었다.


서른이 훌쩍 넘어 나 역시 어머니가 되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내 엄마에게 어리광 피우며 울고 싶은 걸까. 그 가슴에 얼굴을 부비며 애정을 갈구하고 싶은 걸까. 다정하게 위로 받고 싶은 걸까.


“우리 공주, 잠은 좀 잤어?”


그 다정한 말에, 코끝으로 시큼함이 올라왔다.


아니, 나 거의 못 잤어. 엄만 잘 잤어요? 나 간밤에 너무 힘들었어요.

나의 투정에 작게 터져 나오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간밤의 모든 고단함과 괴로움을 지우개처럼 서서히 지워나갔다.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는 포근한 온기가 되어 내 이마 위에 내려앉는다. 기이한 공감각이다. 수화기 너머로 어린 날 내 머리를 쓸어주던 엄마의 진짜 손길이 몹시도 그리워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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